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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그로우 Jul 13. 2024

퇴사동료 1. 떠나는 자의 뒷모습에 대한 첫 기억

23년 차 직장생활 중,

내 기억에서 첫 번째 퇴사한 선배는 지금의 남편이다.

사원 시절, 강한 여자 사수 밑에서  조직과 사회에 대해 나름 혹독하게 생활하던 중

지금의 남편은 바로 윗 선임으로 세상의 쓴맛을 보고 있는 신입사원을 이래저래 챙겨줬었다.


새롭게 시행되는 KPI 지표 설정으로 끙끙대고 있을 때

조언해주고, 내가 이해 못 하자 본인이 대신 작성해서

메일로 툭 보내줘서 난 그걸로 칭찬받았다.

그 일로 나한테는 키는 작지만 멋진 선배로 각인됐다.


알고 보니 입사 동기 중, 나만 챙겨주고 있었고

왜 그런지 여자의 육감으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굳이 호의를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호감을 가지고 동료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그때부터 알았나?


그런 그가 퇴사한다고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인적인 가정사로 인한 거였다)

생각보다 많이 낙심되는 내 마음에 깜짝 놀랐던 것도 기억난다. 요즘 말로 그에게 나도 모르게 스며들고 있었나 보다.

결국 그가 퇴사하고 선배에서 다른 관계로 발전해서 지금의 남편이 되었지만, 공유하고 싶은 사실은 그의 마지막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던 내 다짐이다. 20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사진처럼 생생하게 그 순간이 기억난다.


우리 회사 본사 정문은 언덕에 있었다.

그의 퇴사 마지막 날, 왜인지 우리 팀 전원은 본사에 왔다. 퇴사자인 그는 본부장과 대표님께 인사드리고 나왔고 우리 팀은 정문을 같이 나왔다. 경비계장님께 그는 잘 계시라며 인사드리고 앞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기억난다.

 앞으로 이렇게 선후배들을
떠나보내는 역할을 할거 같다.
나는 오래 남아 떠난 선후배들을
기억하는 자로 남을 거 같다

 지금 난, 그 역할을 20번 넘게 해 왔고

지금 그 선후배들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쓰려한다.

그 뒷모습이 준비된 선배도 있고, 한 순간의 격정으로 떠난 후배도 있고, 한 단계 발전을 위해 용기 낸 후배도 있다.

퇴사를 한 번도 안 해본 내가 남은 자의 시선으로

퇴사한 동료들의 뒷모습을 기록하는 건

나처럼 퇴사가 두려운 누군가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그 스스로 뒷모습을 결정하는데 한 스푼 기여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이 기록으로 나 스스로의 23년간 직장생활의 끝은 어떻게 돼야 하는지 정리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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