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 「립세의 사계 (2023)」

by 전율산
8-9708.jpg

「Chłopi」 43/100


무지한 이들은 언제나 희생양을 찾는다.

Unintelligent people always look for a scapegoat.

어니스트 베빈 (Ernerst Bevin, 1881-1951) - 前 영국 하원 의원


「립세의 사계」는 조금 독특한 영화다. 얼핏 보면 마치 현실과도 같은 아름다운 장면들이 사실은 유화 작품들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그려진 그림들은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관객들은 이를 보며 자신이 마치 영화의 배경인 20세기 초 폴란드의 한 시골마을인 립세를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 같은 몽롱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미적인 아름다움은 잠시, 영화의 서사가 진행되며 관객들이 목격하게 되는 것은 당대 빈농들의 잔인한 현실상이었다. 질투와 시기, 욕심이 가득하고, 타성에 젖어 자아가 묵살되고 개인의 삶이 짓밟히는 장면들을 보며,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당초 예상했던 분위기인 목가적인 시골의 환상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다.


이야기는 가을부터 시작된다. 아름다운 소녀 야그나 파체시우브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시기의 대상이다. 그녀의 뒤에서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험담을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는 안테크 보리나라는 청년과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안테크는 야그나에게 그녀가 흙 같다고 한다. 야그나가 자신이 진흙 같다는 것이냐며 묻지만 안테크는 그런 것이 아닌 위대한 대지와도 같은 것이라며 답한다. 그러나 안테크는 유부남일뿐더러, 아버지인 마치에이 보리나와 땅을 상속하는 문제로 다투는 사이이다.

마치에이 보리나는 립세에서 제일가는 지주로, 얼마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 재혼할 상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눈에 들어온 것이 야그나로, 보리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6에이커의 땅을 약속하고 그녀와 결혼하기로 한다. 야그나는 보리나와 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못하고, 결국 보리나와 결혼한다. 이를 들은 안테크는 다시금 아버지와 싸우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혼식의 날은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웃고 춤춘다. 그 속에서 야그나는 계속해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겨지며 춤을 춘다. 빠른 장면 전환과 야그나를 낚아채듯 끌고 가는 사람들의 손길, 야그나는 핀볼 게임 속 공처럼 이리저리 잡아당겨지고 밀쳐진다. 그저 단순한 무도회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야그나가 한 사람이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그들의 춤사위는 더할 나위 없이 폭력적으로 비추어진다.


겨울이 찾아오고 립세는 흰 눈으로 덧씌워진다. 쫓겨난 안테크는 립세의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지 않다며 멍하니 앉아만 있고, 그의 아내 한카는 그런 생활을 견딜 수 없다며 몰래 안테크의 아버지 보리나로부터 음식을 받아온다. 이를 알아챈 안테크는 분노에 차 음식들을 돌려주고 오라며 보리나에게 폭력적으로 대한다.

한편 강요된 결혼생활은 만족스럽지 않고, 야그나는 일을 하기는커녕 그저 종이공예만을 할 뿐이었다. 안테크와의 밀회는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구이며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둘이 움집 속에서 사랑을 나누던 중, 아버지 보리나가 이를 눈치채게 된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혹은 정말로 야그나를 사랑해서 그랬을까. 그는 슬픈 눈빛으로 눈물을 흘리며 움집에 불을 지르고, 둘이 도망가자 불이 났다고 소리를 지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원은 지주가 마을의 숲을 벌채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해 지주 측 사람들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를 노린 안테크는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몰래 총으로 겨누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공격당하는 것을 보자 총을 버리고 아버지를 공격하던 남자와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던 중 운 나쁘게도 남자의 머리를 나무 그루터기에 찍어 그를 죽이게 되고, 다친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며 둘은 화해한다. 이후 경찰이 개입해 마을 사람들과 안테크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봄이 되자 야그나는 안테크를 감옥에서 꺼내주겠다는 촌장의 꾐에 그와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한 그녀를 강간하려는 촌장을 사람들은 못 본 체하고 지나가버린다. 야그나는 저항하고, 다행히도 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이 소문나며 야그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판은 더욱 나빠지게 된다.

아버지 보리나는 침대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한카는 야그나에게 종이 공예 말고 일을 하라고 독촉하고, 그녀의 침대 위에 도축된 돼지를 걸어두기도 한다. 그 일로 야그나와 한카가 싸우자 보리나는 마침내 입을 열어 한카만 남고 모두에게 나가라 명령한다. 모두들 집에서 나가자 보리나는 한카에게 보리 무더기 속에 돈을 숨겨두었다며 그것을 한카에게 주겠노라 말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안개 깔린 날, 보리나는 이제 씨를 뿌릴 때라며 밖으로 걸어나가고 흙무더기를 앞섶에 담아 씨를 뿌리듯 뿌리다가 쓰러져 숨을 거둔다. 이후 출소한 안테크는 보리나의 재산을 차지하고, 야그나를 강간한다. 강간당하는 야그나의 눈에는 빛이 없다.


그리고 여름, 야그나는 마테우시의 청혼을 거절한다. 그리고 잠시 마을로 돌아온 야시오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마을 사람들은 목격하게 되고, 야그나에 대한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다. 이제 그녀에 대한 적개심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는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추방하자며 입을 모으고, 마을 최고의 유력자인 안테크마저 자신이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마을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 무서운지 그들을 말리지 않는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야그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으며 옷을 찢어 발가벗겨진 그녀를 마을 밖에 던져버렸고, 그러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진흙투성이가 된 그녀는 태아처럼 웅크려 있다가 서서히 일어서 비를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림체는 하이퍼 리얼리즘의 것으로 바뀌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예수는 사람들의 죄를 쓰고 죽었고, 고대 유대교에서는 속죄일에 사람의 죄를 염소에게 씌워 황야로 내쫓으며 아자젤에게 바쳐 이것이 단어 희생양의 기원이 되었으며, 그리스에서는 추한 이들로 인해 도시에 액운이 깃든다며 그들을 때리고 쫓아내는 파르마코스라는 문화가 있었다.

인간 사회에서 따돌림은 늘 존재해 왔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1978년 자신의 저서 《세계의 창조부터 은폐된 것들에 대하여 (Des choses cachées depuis la fondation du monde)》에서 인간이 서로의 행동은 물론 감정 상태마저 모방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모방은 긍정적인 것들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부정적인 것들마저 모방하는 것으로, 이러한 모방으로 인해 분노와 복수가 순환하며, 이는 사회 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갈등을 억제하는 역할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부정적인 모방의 순환으로 인해 모두가 모두에게 적대하는 (all against all) 상황을 "모방 위기(mimetic crisis)"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모방 위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무리의 구성원들은 자발적으로 단일한 개인에 대한 적대감을 조성하고, 해당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추방하거나 살해함으로써 이를 해결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방 위기 상황은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그리고 야그나는 그저 하나의 운 나쁜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립세의 사람들은 야그나를 더러운 여자로 매도하며 분노의 화살을 돌렸고, 야그나는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모이는, 시쳇말로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적대감을 조성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녀를 추방함으로 립세 마을이라는 무리를 하나로 단결시키며, 공동체의 균열이라는 위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희생제의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는 흉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희생제의 문화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동양 철학에는 상제천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늘의 뜻이 왕의 내면에 깃들어 있다는 사상으로, 이에 기반해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거나 흉년이 든다면 그것은 왕의 덕이 부족한 탓이고 주장하며 왕을 쫓아내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부여에서는 왕을 산 제물로 삼는 경우가 그러했듯이.

희생양이 된 야그나가 마을 밖으로 쫓겨나자 가뭄이 들었던 마을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 또한 이러한 희생제의적 기우제 의식이라는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는 기존의 가치관들이 붕괴되는 혼란의 시기였다. 사람들은 살던 고향 땅을 버리고 도시로 이주했으며, 농업의 중요성은 점점 하락하고 있었다. 대지는 재산적인 대상이 되었다. 누군가는 고전적인 삶의 방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아버지 보리나가 씨를 뿌리며 자신의 농지에 몸을 맡긴 채 운명을 다 했듯이. 그러나 사회는 불가역적으로 흘러가고 땅은 과거처럼 누군가에게 빌려 평생에 걸쳐 경작하던 자신의 일부가 아닌 소유권을 가져 언제나 거래될 수 있는 자산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한 시대 속에 사는 야그나는 땅에 비유된다. 안테크는 야그나에게 위대한 대지 같은 것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야그나는 한 사람이 아닌 하나의 대상이 되어 보리나에게 팔려가게 된다. 그러나 도시화가 가속될수록 땅의 가치는 하락한다. 보리나처럼 전통을 지키려던 이들은 죽었고, 죽은 이의 땅을 두고 사람들은 이권을 위해 다투고, 계속해 경작하며 전통을 이어나가기보다는 처분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위대한 대지인 야그나를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내쫓아버린다.


내쫓긴 야그나는 비를 맞으며 태아처럼 누워있다. 마을 사람들이 떠나자 야그나는 서서히 일어나 비를 맞으며 진흙을 씻어내리고 하늘을 바라보고, 인상주의 풍의 그림체는 점차 극사실주의의 것으로 바뀌어나간다. 마치 식물이 자라는 것 처럼도 보이는 이 장면은 야그나가 가진 파괴되지 않은 씨앗 속 생명력을, 그리고 그녀가 그 모든 역경을 이겨냈음을, 모든 것이 물질적 가치로 치환되는 속세를 씻겨내고 있음을, 그리고 나아가 지금까지 타성에 의해 누군가에 의해 그려지기만 하던 인생을 자신이 스스로 써 내려가기 시작할 것임을 은유하는 것이 아닐까.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유화 작품을 감상하며 그때 그 시절에 서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점이 매력적이었으며, 명화를 오마주한 부분들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였다. 아무래도 옛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보니 구시대적이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그런 올드한 부분들이 오히려 유화와는 잘 어울린다.


관람 일자


2024/01/11 - 롯데시네마 인천아시아드 5관

keyword
작가의 이전글#10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