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tomie d'une chute」 73/100
그러나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됩니다.
Absence of evidence however, should not be taken as evidence of absence.
마이클 파파기아니스 (Michael Papagiannis, 1932 – 1997) - 보스턴대 교수
남자가 죽었다. 3층 다락방 창문은 열려 있었고, 50센트가 부른 P.I.M.P.의 비트가 계속해서 시끄럽게 반복되며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다. 그 아래에서 그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것을 목격한 것은 산책에서 돌아온 아들 다니엘. 죽은 사무엘과 함께 집에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 산드라 보이터 뿐. 그의 죽음은 과연 자살인가, 사고인가, 아니면 살인인가. 이제 산드라는 자신이 남편을 죽이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한다.
악마의 증명이라는 용어가 있다. 중세 유럽에서 사용되었다는 이 용어는,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으면 그냥 악마 한 마리를 잡아오면 되지만, 내가 악마를 잡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해서 어딘가에 악마가 존재할 수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마치 귀납적 증명에 있어 내가 평생 동안 보아온 까마귀가 검다고 해서 모든 까마귀가 검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모든 사례에 대해 반박해야 하기에 그 입증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
그러나 악마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할 수 없다 할지언정, 그것이 악마가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어떠한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거만을 가지고 그것의 참이나 거짓을 판단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호소(argumentum ad ignorantiam)로, 논증에서는 주장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필요함을 망각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오류이다.
재판은 사회적인 규율을 유지하고 분쟁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렇기에 재판은 항상 증거와 밝혀진 사실들에 입각하여 진행되어야 하며, 재판장은 이러한 소송관계를 명료하게 하기 위하여 사실상과 법률상의 석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석명권에 대한 내용이 형사소송규칙 제141조에 기술되어 있으며, 대법원 1953. 3. 5. 선고 4285민상146 판결을 통해 석명의 의무가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제출된 양측의 증거와 진술을 통해 법관은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법률의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고, 이러한 방식은 법 집행에 대한 사회적인 신뢰와 안정 유지에 기여한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석명의 요구가 모든 이들에게 있어 평등한 수준의 어려움으로 와닿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어떠한 것을 입증하는 것은 다른 것들을 입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악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입증에 대한 부담을 안아야 한다면, 그 부담이 적은 쪽에 부담을 부과하는 것이 옳을 것이기에, 대부분의 경우에서 입증책임은 어떠한 사건의 발생을 주장하는 이에게 지워지게 된다.
검시 과정에서 부검의는 시체를 해부하며, 현재 시신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통해 과거에 그 시체에 일어났을 일을 재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원이기에, 복원된 사실이 실제와 동일하기란 퍽 어려운 일이다.
한때, 대부분의 공룡들은 악어와 같은 파충류의 피부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복원도는 어떠한가? 많은 공룡들은 화려한 깃털로 덮여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뿐인가? 어떤 공룡 화석은 정강이뼈를 팔에, 팔뼈를 정강이에 붙여두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때, 그것들은 모두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사건을 담당하는 이들에 의해 재구성된 사건 또한 그렇다. 그들은 실제로 그 사건을 목격한 것이 아닌, 남아있는 증거들만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해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정강이뼈와 팔뼈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어제 먹다 버린 치킨 뼈다귀를 공룡 손가락에 냅다 붙여버리는 일 또한 분명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그러한 재구성 과정에 있어서의 오류에 대해 석명하고, 다른 증거들을 제시하며 지난 사건들을 제대로 이어붙여 하나의 완벽한 공룡 화석을 만드는 과정, 그것이 법정에서 사건이 해부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법정에서 한 발짝 멀어질 때마다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사람들이 《All Yesterdays》 속에 등장하는 거대 공작새처럼 보이는 공룡들보다 「쥬라기 공원 (1993)」 속 사람들을 덥석덥석 잡아먹는 흉포한 폭군 티라노사우루스에 더욱 큰 흥미를 보이는 것처럼, 대중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는 오늘 하루의 가십거리가 될만한지의 여부이며, 그러한 수요층들에게 있어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말들은 그저 고리타분한 원리원칙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의 해부는 그저 사람의 사생활을 한 겹 한 겹 벗겨가며 나체의 포르노그라피아로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들은 그것이 사건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지며, 그들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은 당사자마저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혼란스럽게 만들 정도로 극단적인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영화 속 산드라의 변호사는 자신이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기록이란 사실의 나열 같지만 주관 없는 서술자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여전히 어쩔 수 없이 서술자가 가진 가치에 대한 서술이다.
두 시간 반가량의 법정극. 자칫하면 지루해지기 십상인 요소다. 그 어떠한 장면도 이미 망자가 된 사무엘 본인의 시선에서 비추어지지 않으며, 철저히 그의 죽음을 해부하는 법정 속 사람들의 회상과 그들의 기억, 그리고 증거들을 통해 재구성되는 사건에 대한 파편적인 장면과 단서들만을 제공한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그러한 것처럼 끝까지 아무도, 관객들에게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진상은 아무렴 어떤가. 영화의 초점은 그 사건이 진실로 어떠한 것인지에 맞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법정 위에 선 이들의 주장과 반론, 그리고 세밀한 심리의 묘사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개 방식으로 인해 영화를 보며 점차 실제로 그것이 어떠한 사건이었는지 보다는 법정에서 그것은 과연 어떠한 사건이었던 것으로 재구성될지에 더욱 흥미가 동하게 된다.
배경음악의 적절한 사용도 돋보였다. 시끄럽게 틀어진, 맑고 경쾌한 스틸 팬의 소리와 중독적인 레게 리듬이 상황과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신나는 50센트의 비트, 초반부 계속해 음정이 틀리고, 미숙한 연주로 인해 듣기 거슬리는 아스투리아스, 극이 진행되며 비극적인 긴장감을 높이는 쇼팽 프렐류드 4번 라르고가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글을 끝마치며 남편과 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고 싶다. 작중에서 산드라의 남편 사무엘은 자신의 개 스눕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면모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부분은 다니엘의 마지막 증언을 통한 회상. 사무엘이 아스피린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을 당시, 그 토사물을 스눕이 먹게 되고, 그로 인해 쓰러졌던 스눕을 동물 병원에 데려가며 사무엘이 다니엘에게 했던 말. 스눕도 지쳤을 거라고, 스눕은 특별한 개라서 너의 말도 알아듣고 너에게 모든 것을 맞추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 그것은 사무엘이 산드라와 다투며 했던 말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산드라에게 맞춰야 하기에 자신의 삶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삶이 개의 삶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추락했을 때 틀고 있었던 비트는 50센트의 P.I.M.P. 그리고 이 곡에 피처링으로 참가한 것이 스눕독.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눕은 잠들려는 산드라의 곁으로 가 그녀에게 안긴다. 그 장면은 마치 남편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개가 대신하는 것처럼 보여, 스눕이 사무엘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개를 안고 옅은 미소를 띄우는 산드라, 그것은 그녀가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관람 일자
2024/02/01 - 메가박스 청라지젤 컴포트 5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