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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3)」

by 전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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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悪は存在しない」 60/100


예술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자연은 틀리는 법이 없다.

For Art may err, but Nature cannot miſs.

존 드라이든 (John Dryden, 1631-1700) - 《Fables, Ancient and Modern》


위를 올려다보며 숲속을 지나는 기나긴 카메라의 시선. 삼나무들은 높게 솟아있다. 조용하고 깨끗한 마을 히라사와. 그곳에 글램핑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저 일개 연예 기획사일 뿐인 플레이모드가 코로나 지원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급조한 글램핑장의 계획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상수원에 지나치게 가까운 정화조가 특히 문제가 되는 사안으로, 우동집을 한다는 여자는 자신은 마을의 물 맛에 반해 정착했다며 수원을 지켜줄 것을 요구하고, 촌장 스루가 또한 상류에서의 일은 반드시 하류에 영향을 미친다며 계획에 반대한다.

주민들의 반대 의견을 들은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속으로 내심 그들에게 동조하지만,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사장의 성화에 마지못해 히라사와 마을에서 심부름을 도맡고 있다는 야스무라 타쿠미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다시 한번 히라사와로 향한다. 그들은 야스무라와 함께 마을의 물로 만든 우동을 먹고, 깨끗한 계곡의 물을 길으며 히라사와의 시골 풍경에 반하게 되고, 이미 마음이 뜬 타카하시를 따라 마유즈미 또한 플레이모드를 그만 둘 결심을 한다.

그러나 야스무라 타쿠미의 딸 야스무라 하나가 갑자기 사라지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하나를 찾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강 하류의 평야에 다다랐을 때, 총에 맞은 사슴이 보이고, 그곳에는 하나가 있다. 하나에게로 달려가려는 타카하시. 그러나 타쿠미가 갑자기 돌변해 타카하시의 목을 조르고, 타카하시를 기절시킨 그는 하나를 안고 벌판의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물은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지만, 그렇다고 우리 또한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언더도그마. 약자가 늘 선한 것은 아니며, 강자가 악하다는 법 또한 없다. 히라사와 마을에 글램핑장을 짓는 사업에 있어, 자본가이자 강자는 플레이모드 측이지만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감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물론 야스무라 타쿠미가 그들에게 던진 "그렇다면 사슴들은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에 대해 타카하시가 제대로 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공감이 지극히 도시인의 시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폭로되고 있지만 말이다.


일본의 건국신화를 비롯한 샤머니즘 문화에서, 나무는 하늘과 지상을, 그리고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줄과도 같은 존재이다. 하늘로 높게 뻗은 사슴의 뿔. 사슴은 나무를 상징하게 된다. 그렇기에 뿔이 하늘 높이 솟은 사슴은 하늘에서부터 지상을 지나 지하세계를 연결하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샤먼은 이러한 사슴을 통해 천(天)과 교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서 고사기(古事記, 712)의 상권에 실린 신화 한 단락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라 현에 위치한 카스가타이샤(春日大社)에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태양신 아마테라스(天照)는 당시 현세를 지배하던 오오쿠니누시(大国主)에게 명해 현세의 지배권을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에게 양위하도록 명한다. 이를 전하기 위한 대사로 아마테라스는 이츠노오하바리카미(伊都之尾羽張神)를 지목한다. 그러나 이츠노오하바리카미는 아메노야스노카와(天安河)의 물을 거꾸로 끌어올려 막았고, 이에 다른 신들은 그에게 갈 수 없어 아마테라스의 말을 전할 전령으로 사슴신 아메노카쿠노카미(天迦久神)가 선택된다. 아메노카쿠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아들인 타케미카즈치(建御雷)를 지상으로 보냈고, 이때 타케미카즈치가 흰 사슴을 타고 내려와, 이때부터 사슴을 신의 사자로 섬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관객들이 악으로 생각한 것은 자연의 대변인으로 보였던 타쿠미의 돌발적인 타카하시를 향한 공격이다. 극 중에서 사슴은 자연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타쿠미는 그러한 자연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타쿠미는 말했다. 사슴이 인간을 먼저 공격하는 법은 없다고. 만약 사슴이 인간을 공격한다면, 그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을 때이던가, 혹은 사냥꾼에 의해 새끼를 잃은 사슴일 것이라고. 타쿠미는 새끼를 잃은 사슴이자 도망칠 수 없는 자연이었다. 사슴은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대해 여전히 사슴을 쫓아내고 글램핑장을 세울 방법을 모색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 아기 사슴, 혹은 사슴의 딸인 히나가 결국 인간의 총성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만 것에 대한 분노. 새끼를 잃은 사슴이 아무런 인간이나 공격하듯, 도망칠 곳 없는 자연은 인간을 혐오했다. 이성을 잃은 타쿠미에게 타카하시는 타카하시가 아닌 인간으로 데포르메 된 분노의 대상일 뿐이다.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진다. 그리고 사슴의, 자연의 분노는 정도를 지나치고야 말았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던 악은 균형의 붕괴에서 우연히 흘러나와 실재하게 된다. 이것은 비존재가 존재하는 것처럼 재현성 되는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인 동시에 어쩌면 악의 비존재란 현재에 국한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언젠가 악으로 돌변할 자연에 대한,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관람 일자


2024/05/13 -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ART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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