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드림 시나리오 (2023)」
「Dream Scenario」 47/100
단순히 비난하는 것은 증명하기 위함이다. 의혹을 듣는 것은 믿기 위함이다.
Simply to make the accusation is to prove it. To hear the allegation is to believe it.
필립 로스 (Philip Roth, 1933-2018) - 《The Human Stain》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그런 줄 알고 보러 갔는데 블랙 코미디일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여러 사람들의 꿈에 등장하기 시작해 유명세를 얻게 된 폴 매튜스는 시쳇말로 찌질한 사람입니다. 친구로부터 식사초대 한 번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연구 주제마저 대학 동기에게 빼앗긴 그는 태어나 처음 받아보는 사람들의 관심이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그가 등장하는 꿈은 전부 악몽이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왕따가 되어버린 폴에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세상의 손가락질이 아닌 가족의 불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폴은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믿어주기를 호소했고, 이를 거부당하자 친구인 학장에게 호소하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은 가족들이었겠지만, 그의 딸들도 그를 믿지 않고, 아내는 바람을 피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잃고 누군가의 지하실을 전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나오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사라지고, 그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연구를 통해 타인의 꿈에 들어갈 수 있는 장치가 발명되기도 하죠. 하지만 그가 무고함을 사람들은 여전히 믿지 않습니다. 영화는 권선징악 없이 끝이 납니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수많은 반짝 스타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많은 스타들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도 했죠. 대중들의 관심과 비판은 양은냄비처럼 금새 끓고, 또 금새 식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몇몇 사람들만이 목소리를 내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달리, 소셜 미디어는 사건을 대중들의 앞에 전시합니다. 한 사람이 한 마디씩 하면 결국 받는 사람은 수십 수백만의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죠.
다수가 모인 군중들의 심리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행동에 편승하여 그것과 같은 행동을 하려고 하는 동조(conformity)적인 심리인데요. 인터넷은 공간적 제약이 없다는 그 특성으로 말미암아 군중을 만들기에 최적화된 곳이기에, 누군가가 돌을 던지기 시작하면 다들 같이 돌을 던지는 행위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최근들어 검색 알고리즘이 이러한 미디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되며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각각의 개인들에게 알맞는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생각과 동일한 사람들의 생각만을 듣게 해주죠.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의견만을 듣다보면, 그 의견은 점차 공고해지고 과격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을 메아리치는 방에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메아리 방 효과 (echo chamber effec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여간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누군가의 특성이나 잘못이 때로는 실제로 그러한 것보다 부풀려지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죠.
이런 인터넷에서의 일들은 마치 21세기의 마녀사냥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근거도 없이, 혹은 빈약한 근거를 토대로 잘못을 지적하면, 그 잘못이 사실인지를 지적당한 자에게 증명하라고 하죠. 그러한 사실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보다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훨씬 힘든데도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은 곧 잊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최근 법이 잘못되었기에 사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연 대중들이 법보다 옳은 방향성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관람 일자
2024/06/10 - 메가박스 송도 3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