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キリエのうた」 35/100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Κύριε, ἐλέησον
가톨릭 미사곡 「자비송」
아이나 디 엔드의 처절하게 찢어지는 노랫소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이와이 슌지의 영화.
주인공 코즈카 루카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언니와 가족을 잃은 길거리 뮤지션이다. 어느 날 풍찬노숙하던 그녀를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이치죠 잇코가 발견하고, 루카의 매니저를 자처한 잇코가 루카를 지원해 주며 그녀는 점점 아티스트로서 이름을 떨친다.
루카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이후 충격에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노래할 때의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보다도 크고 힘차다. 이런 부분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2015)」의 주인공 나루세 준이 떠올랐다. 둘 다 제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노래로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와이 슌지는 이러한 루카의 캐릭터가 큰 사유나 과학적 논거를 생각하며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자신이 어린 시절 보았던 「오린의 발라드 (はなれ瞽女おりん, 1977)」라고 하는 영화 속 노래하는 눈먼 여자에 대한 인상과, 써 내려간 여러 단편들을 엮어보며 자신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내용을 바탕으로 루카라는 캐릭터는 구축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루카와 나츠히코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다. 마을을 덮친 쓰나미로 인해 가족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루카는 언니의 약혼자였던 시오미 나츠히코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나츠히코는 루카에 대한 어떠한 법적 권리도 없다는 말과 함께 사회는 루카와 나츠히코를 갈라놓고,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친구에 이어 그 동생마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이후 루카는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목장에서 일하던 나츠히코를 찾아내지만, 다시 한 번 사회 시스템은 그 둘을 갈라놓고, 나츠히코는 자신이 과외를 해주던 학생 히로사와 마오리에게 루카를 잘 부탁한다고 전한다. 마오리가 루카와 어떤 사이인지 묻자 나츠히코는 망설이다가 자신의 동생이라 대답한다.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망설이다가 키리에가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자신의 가족으로 자신 있게 긍정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나츠히코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이 엿보인다.
시간은 흘러 자신의 언니의 이름인 키리에라는 예명을 걸고 버스킹을 하며 길바닥을 전전하던 루카를, 이제는 이치죠 잇코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마오리가 발견하고 그녀를 돕는다. 잇코의 도움에 힘입어 루카는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넓혀가지만, 사실 잇코는 혼인 빙자 사기를 상습적으로 저질러온 사기꾼이었고, 그러한 사실이 탄로나자 잇코는 루카의 곁을 떠난다.
또 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은 루카는 계속해서 잇코를 기다리며 노래한다. 그리고 루카의 첫 무대 공연 날, 잇코는 파란 장미를 사들고 공연장으로 향하지만, 경찰은 소음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공연을 막으려 하고, 잇코는 자신이 사기를 쳤던 상대의 흉기에 피습당한 채 피를 흘리며 공연장으로 향한다.
전체적으로 이와이 슌지 특유의 색채, 옅은 슬픔의 향기와 잔잔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영화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나 디 엔드의 노래만큼은 강렬하게 뇌리에 내리꽂힌다. 그녀의 찢어지는 듯한 야생적인 날 것 그대로의 창법은 많은 슬픔을 끌어안고 있지만 노래만으로 그것을 표현해야 하는 루카의 절규와도 같이 들린다.
이와이 슌지는 슬픔을 아름답게 사용할 줄 안다. 「러브 레터 (1995)」의 유명한 여주인공이 설원에서 잘 지내냐고 외치는 장면처럼. 「키리에의 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키리에가 루카를 껴안고, 장면이 흑백으로 변하며 넘실대는 바다를 비추는 장면. 키리에가 아이를 가지자 고뇌하다가 그러한 사실을 채 받아들이기도 전에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둘의 관계에 대해 나츠히코가 느끼는 인간적 죄책감. 루카와 재회한 후 루카에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키리에와 너무나도 똑같이 생긴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눈물을 쏟는 나츠히코.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흰 원피스를 입은 채로 루카에게로 달려가는 잇코. 그리고 슬프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죽은 언니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루카.
그러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한국에서는 약 한 시간여 가량이 편집된 상태로 개봉되었고, 이로 인해 중간중간 서사의 공백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었던 마오리가 갑자기 사기꾼이 되어 나타난 이유. 그녀가 사기꾼임을 알고도 루카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 그러한 내용들은 감독판에도 들어있지 않으며 소설에서 확인해 보라고 이와이 슌지는 말한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기에 그 속에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가 존재해야 한다. 결국 그러한 이야기들을 전부 풀어내지 못한 것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었던 그의 욕심이겠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그의 작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완결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보다는 여러 플롯들을 합쳤을 때 자신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야기를 선택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하나의 스토리 안에 여러 내화들이 삽입되어 있으며, 과거와 현재의 장면을 오가며 외화와 내화가 전환되는 이 영화의 액자식 구성에서도 그러한 작법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잔잔한 분위기를 위한 연출은 서사의 지연을 발생시키고, 이로 인해 러닝 타임이 길어지면 몇몇 내용들이 희생되게 된다. 그렇다면 연출과 서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이와이 슌지는 연출에 조금 더 중심을 두고 서사를 희생하는 길을 택했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후 아직 모든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많이 보았다면 다른 영화들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도 흠.
그래도 개인적으로 재밌게 몰입해서 봤고, 잔잔하지만 짙은 감정선을 가진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입맛에 잘 맞았던 영화.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난 뒤에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이와이 슌지의 말에 따르면 꽤나 많은 부분들이 「오린의 발라드」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그러나 본 적 없는 영화이기에 나중에 한 번 보고 난 뒤 다시 본다면 이 영화로 느끼는 바가 달라질까.
키리에라는 이름은 가톨릭의 미사곡인 키리에 엘라이손(Κύριε ἐλέησον)에서 따왔다고 한다. 번역하면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관람 일자
2023/11/04 - 메가박스 더 부티크 목동현대백화점 컴포트 106호
2023/11/05 - CGV 용산아이파크몰 6관 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