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24
이틀 동안 카이로 시내를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투탕카멘 가면이 있는 카이로 역사박물관부터 모스크, 시장, 그리고 성채(Citadel)까지.
여행 마지막 날 카이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성채(Citadel)를 방문한 건 좋은 선택이었다. 이곳은 지대가 높아서 우버 택시를 타는 게 좋다. 성채가 있는 지역에는 성 건물을 개조해서 경찰 및 군대 박물관을 조성해 놓았기에 시간도 때울 겸, 바람도 쐴 겸 천천히 구경했다. 이집트 인들은 군대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많은 듯하다.
성채 안에 있는 모스크에 들어갈 땐 신발 위 비닐 씌우개를 10파운드에 팔길래 기도하러 들어가는 현지인들처럼 그냥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들어갔다. 신발 커버를 씌우는 건 관광객들 뿐이다. 두 발로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을 디디면 발바닥엔 시원한 냉기가 올라온다.
성채를 빠져나와 슬슬 복잡해 보이는 시내로 걸어가면 미니 버스들이 밀집한 공간이 눈에 띈다. 버스를 타고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아즈하르(Al-Azhar) 모스크로 이동했다.
카이로에서는 미니 버스를 자주 탔다. 거리마다 요금은 달라지는 듯했지만 보통 6-7파운드 정도였다. 버스 안이 워낙 좁다 보니 뒷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앞자리에 앉은 승객을 통해 버스 요금을 맨 앞자리에 앉은 운전기사에게 전달한다. 나도 버스 안 중간 지점에 앉았다 보니 뒷자리 손님 요금을 앞자리로 차례차례 전달해 주는 걸 여러 번 했다. 이런 경험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순식간에 손님별로 행선지까지 버스 요금을 계산해서 말하고 수금하는 일, 그리고 운전까지 멀티 태스킹을 해낸다. 그리고 특이한 수신호를 발견했다. 엄지 손가락과 새끼손가락만 쫙 펼치고 나머지 세 손가락은 오므린 채 좌우로 흔드는 거다.
거리에 누군가가 서 있으면 그 사람을 향해 반드시 이런 수신호를 했다. 아마도,
지금 버스 탈 수 있어요!
뭐 이런 뜻 아니었을까?
이렇게 대중교통을 탈 땐 동전을 자주 쓰게 된다. 한 번은 10파운드 지폐를 냈더니 3파운드를 동전으로 거슬러 받았다. 1파운드짜리 동전 3개엔 스핑크스, 파라오 가면처럼 보이는 문양이 앞뒤로 새겨져 있었다. 속으로 웬만한 기념품보다 이 동전이 훨씬 예쁘다고 생각하며 손바닥 위에 놓인 동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자니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날 보고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아즈하르(Al-Azhar) 모스크 근처에는 고서적 서점들이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 청계천 고서적 골목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아담한 규모다.
고서점 골목을 지나 드디어 모스크에 다다랐다. 모스크에 들어갈 땐 여자는 머리에 두건을, 하의엔 치마를 둘러 입어야 한다. 모스크 입구에서 무료로 대여해 주니 그걸 잠시 입고 모스크 안을 구경하면 된다. 모스크 안에서 소모임 단위로 뭔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이들 모습이 새삼 신기해 보였다.
아즈하르(Al-Azhar) 모스크 구경을 마친 후 지하도나 차도를 도보로 건너면 칸 엘-칼릴리 시장(Khan El-Khalili Bazaar)으로 이동할 수 있다. 1382년에 생긴,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으로 온갖 물건들이 즐비한데 번쩍이는 금·은 세공품과 보석, 전통 의상들이 단연코 눈에 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숙소에서 카이로 공항까지 우버(Uber) 택시 대신 버스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개고생이 될 줄은 몰랐다.
카이로 도로는 무법 지대다.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없다. 차도, 사람도, 저마다 가고 싶은 길을 갈 뿐. 행인들은 차도를 익숙하게 요리조리 꺾어가며 지나간다. 구글 맵(goole map)에선 도보 1분 거리라도 미니버스, 대형 버스, 광역 버스, 택시, 승용차들이 차선도 없는 거리에 실타래 엉키듯 줄줄이 프랑크 소시지처럼 어디서부턴가 튀어나오더니 사방에서 빵빵거리며 경적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이런 광경을 접하면 구글 맵에서 가르쳐준 방향 감각을 잃기 십상이다.
게다가 도심 매연은 지독하다. 아무리 매일 샤워하고 머리를 감아도 빗으로 빗으면 검은 재가 머리카락에 뭉쳐져 나왔다. 아프리카에선 매일 먼지에 뒤덮인 길을 다니다 보니 여행이 끝나면 과장을 보태서 폐 수명이 20%쯤 줄어들 것 같은 망상이 들기도 했다. 거의 매일 사막 먼지, 거리 흙먼지, 자동차 매연을 들이마시며 이동했다. 마스크는 따로 준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걸 쓰는 것도 포기했다. KF94가 아닌 이상 마스크도 무용지물이다. 미세먼지 차단지수가 높을수록 살인적인 이집트 무더위 아래에선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가 힘들다.
결국 어찌하다 보니 [ 지하철 요금 5 EGP + 버스 요금 6 EGP = 총 11 EGP(₩315) ]로 카이로 시내에서 공항까지 올 수 있었다. 우버를 이용했다면 200 EGP 정도 나왔을 거리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남아서 마지막 시내 구경 차 버스를 타보려 했던 건데 웬만하면 그냥 우버 택시를 이용하자. 거리 매연도 피할 수 있고 정신건강에 좋다.
초저렴 버스인 만큼 에어컨을 기대하면 안 된다. 버스 겉면도, 내부도, 매연이 오랫동안 쌓인 채 검댕이가 되어 달라붙어 있다. 교통 밀집지역을 벗어나자 버스는 광속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체감상 30-40분쯤 되자 카이로 공항 근처 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안녕, 잠보(Jambo)..!
카이로 공항 로비에서 한 달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언제쯤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사라져 가는 기억을 아쉬워하며 신기루 같았던 초원과 사막을 마음속으로 떠올려본다. 마음속으로 아프리카에 작별 인사를 되뇌어 본다. 여기에서 매일 들었던 인사말, "잠보(Jambo, 안녕)"가 두고두고 기억나리라.
이 여행을 통해 많은 걸 깨달았다. 내가 이 지구에서 얼마나 풍족하게 살고 있는지, 물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건조한 콘크리트 더미에 파묻혀 자연과 단절해 왔는지를.
여행은 작년에 끝났지만 이 기록은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23년, 뜨거운 여름을 추억하며 이어왔다. 드디어 길고 긴 글을 마치니 뭔가 종지부를 찍은 기분이다.
다시 꼭 갈 거야, 아프리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