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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Oct 25. 2024

왕가의 계곡, 룩소르 & 카르낙 신전으로

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22

룩소르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지는 이 세 곳이다. 서두른다면 하루 안에도 대강 다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더위에 질식할 만큼 진 빠지는 일정이 되리라. 이슬람 음식에 거부감이 없다면 작은 고대 도시, 룩소르에서 며칠 여유롭게 머무르며 산책하듯 스핑크스와 신전의 장엄함을 느껴보자.




나일 강 저편,

왕가의 계곡



이집트 현지에서 당일 투어를 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왕가의 계곡을 다녀온 후 내린 결론이다. 관광지로 이동하는 교통편을 해결할 수 있다면 차라리 온라인 콘텐츠나 전자책을 실시간으로 찾아보며 구경하는 게 속 편하다.


보통 현지 가이드는 영어 실력이 그닥이라서다. 아랍어 억양이 섞인 서툰 영어를 알아듣기도 힘든 데다가 자기네 역사에 대한 전문 지식도 없다. 가이드랍시고 활동하는 이들은 먹고살려고 관광업에 뛰어든 현지인이다. 이들이 서툰 영어로 떠들어대는 내용들은 나무위키 수준으로 주워들은 풍문이다.



무덤 안에 들어가면 어마어마한 벽화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된다. 하지만 가이드는 투어 참가자와 유적지 내부로 함께 들어갈 수 없다. 이집트 정책 상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 벽을 가득 채운 상형문자, 동물, 사람, 온갖 상징물에 대해 실시간으로 설명을 들을 수가 없는 거다. 게다가 무덤 내부엔 외국인을 위한 해설용 표지판도 전혀 없다. 이 점이 가장 아쉬웠다.


다행히 투어 참가자 중 영어를 잘하는 중국인과 스페인 남자를 따라다니며 귀동냥을 하니 오히려 투어 가이드보다 나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이 둘은 이미 카이로에서 이집트 역사박물관을 다녀온 뒤였다. 그러니 '여기 무덤에 있던 물건들을 박물관에서 봤었는데 이런 의미였더라.' 식으로 공유해 주어서 조금이나마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다만 영어를 못하는 불쌍한 일본 남자는 무더운 더위를 견디며 혼자 벽화만 멀뚱멀뚱 쳐다보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투탕카멘 등 유명한 왕 무덤은 별도 요금을 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 안에는 아무것도 없고 모든 유물은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역사박물관에 있다. 실속파라면 왕가의 계곡은 경치 구경과 무료입장이 가능한 무덤에서 눈요기를 하는 정도로 만족하자.




석양과 새벽 아래,

신전을 거닐다



오전 반나절 동안 왕가의 계곡을 다녀온 후 더위에 진이 빠져 버렸다. 숙소로 돌아와 근처에서 이슬람 음식을 피해 무난히 배를 채울 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매운 스파게티로 배를 채웠다. 관광객은 이런 식당이 그냥 장땡이다. 슈퍼마켓에선 그토록 찾았던 흰 우유와 찬 생수, 포도, 사과까지 발견..! 결제를 마치자마자 허겁지겁 해치우니 다시 원기충전 완료.


밍기적대다가 어느덧 오후가 지나갔다. 오후 5시 반. 다행히 룩소르 신전은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고 해도 사라지고 있었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룩소르 신전은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하다. 신전만 구경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지만 바로 옆 나일 강 풍경이 백미다. 석양 아래 산들바람을 맞으며 신전에 내리쬐는 빠알간, 저물어가는 햇빛을 바라보면 저절로 멍 때리기가 된다. 사람이 별로 없다면 서늘한 공기를 느끼며 좌우 스핑크스가 도열한 옛 도로를 거닐어보자. 머나먼 옛날 파라오에게만 허락되었던 그 돌길을.



말없이 서 있는 저 거대한 석상과 스핑크스들을 보면 정말 경외심이 든다. 이 나라는 진짜 조상들 덕에 겨우 먹고살고 있는 거 같다. 오늘 만났던 중국인 투어 참가자 말에 따르면 이집트 국민 중 15%가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하던데 GDP 중 관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카르낙 신전은 다음날 아침 이른 새벽 공기를 마시며 한산할 때 구경했다. 여긴 룩소르 신전에 비해 규모가 크다. 다만 어느 신전에서도 안내용 표지판 같은 건 없다. 매표소 근처엔 현지인들이 유적을 해설해 주는 척, 관광객들에게 달라붙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한 둘이 아니다. 이들은 입장문 근처를 빈둥거리며 끈질기게 관광객에게 달라붙는다. 일당을 한몫 챙기려는 것이다. 외국인은 비싼 입장료를 내고 신전에 입장하건만 현지 꼬맹이들, 개나 고양이들이 몰래몰래 담을 넘어 너무나 쉽게 신전을 들락날락 거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감시 카메라도 있지만, 무용지물인 걸까.



이들이 신전도, 왕가의 계곡도, 관리하는 모양새를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 제대로 유물을 보존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너무나 뚜렷하다. 아스완도, 룩소르도 시내 풍경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한국 60-70년대 영상물이 떠오를 만큼 거리는 더럽고 낙후되었다. 유물을 관리할 만한 재정적 여력이 안되기에 아마도 이리 방치해 두지 않았을까.


게다가 무슨 신전이 이렇게도 많은지. 짧은 시간 동안 억지로 다 돌아다니더라도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하리라. 룩소르-아스완 사이 나일강 근처엔 다른 신전들도 많다고 들었지만 대표적인 두 곳만 가본 걸로 만족했다. 다만 아부 심벨을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쉽다.


채소나 곡식을 싣고 당나귀 같은 말을 몰며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 마차를 몰며 관광객들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이들을 보며 이집트 서민이 짊어진 고단한 삶을 잠시 상상해 본다. 한때 번성했던 왕국은 사막 속 모래바람처럼 사라졌으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이런 걸까.



덧. 룩소르 신전 맞은편 길가 도로엔 또 다른 명소가 있다. 바로 맥도널드. 이슬람 향신료에 지친 관광객에겐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2층 이상 올라가서 창가 쪽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모처럼 인스턴트 음식으로 몸보신도 하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석양 아래 룩소르 신전을 구경하며 잠시 쉬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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