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타고 30일, 아프리카 - 21
눈을 감고 다시금 떠올려본다면 이집트 풍경은 이런 색깔이다. 가장 뇌리에 박힌 기억이 무조건 태양 아래 흰 땅이라 그런 걸까? 하고 많은 유적보다도 해가 먼저 기억난다.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로 강해서 대낮에는 땅 색깔이 밝은 황토색을 넘어서서 거의 희다. 특히 직사광선이 바로 내리쬐는 곳은 눈이 부실 만큼 뽀얗다.
탄자니아에서 거대한 초원과 산을 맛본 후 비행기로 이집트 아스완(Aswan)까지 이동했다. 남아공에서 여행을 시작해서 아프리카 대륙을 북상하는 경로로 이동하면 탄자니아 다음 목적지는 보통 케냐, 에티오피아, 이집트다.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다나킬 사막과 화산지대(Danakil Depression)를 가고 싶었지만 남은 돈도, 시간도 없고 해서 마지막 여행지를 이집트로 정했다.
그 결과 교통비가 많이 들었다. 자그마치 비행기로 4번을 환승해서다.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내 경우 킬리만자로 산이 있는 모시(Moshi)에서 탄자니아 수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으로, 그다음 에티오피아(Ethiopia)를 경유해서 이집트 카이로(Cairo)로, 다시 나일강을 따라 남하해서 아스완(Aswan)까지 시간과 돈을 모두 까먹는 비효율적인 이동을 했다. 왜냐고? 다 미리미리 계획하지 않아서다.
이렇게 모시 -다르에스살람 - 에티오피아 - 카이로 - 아스완까지 만 24시간 이상, 하루 반이 걸렸다. 그런데 순수한 이동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모시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는 딱 1시간이다. 그런데 이놈의 비행기 연결 시간대가 희한해서 꼭 다르에스살람에서 하룻밤 머물러야 하는 스케줄이다. 참고로 에티오피아-카이로까지는 6시간, 카이로-아스완까지는 항공편으로 1시간이 걸린다.
에티오피아를 거치는 경로 외에도 케냐(Kenya), 사우디아라비아(Saudi Arabia), 오만(Oman)을 경유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나라들을 경유하든 항공 스케줄은 최악이다. 만 하루는 이동 시간으로 잡아먹어야 한다. 참고로 오만 옆에 있는 예맨(Yemen)은 최근까지 내전을 겪었고 사회가 불안정해서 경유는 어렵다고 본다.
일부 배낭여행자들은 교통비를 아끼려고 에티오피아에서 수단(Sudan)을 거쳐 이집트까지 지상으로 이동하는 방법도 찾아본다. 하지만 이러려는 사람이 있으면 보통은 그러지 말라고 말린다. 안전 문제 때문이다. 수단도 예맨처럼 내전을 겪은 데다가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다. 영어로 검색해 본 바로는 이 경로로 대중교통편을 알아보는 질문글에 대해 돈이 들더라도 비행기로 쓩~이집트까지 곧바로 날아가라는 답글이 대다수다.
킬리만자로 산을 구경하고 탄자니아 모시(Moshi)에서 곧바로 이집트로 이동하려면 일단 버스로 탄자니아-케냐 국경을 넘은 후,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서 이집트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볼 수도 있다. 이 경우 조금이라도 항공 요금을 절약할 수는 있다. 다만 모시에서 케냐 쪽 국경을 넘는 버스가 뜸하기에 시간표를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또한 버스 이동 시 소요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장담 못한다. 하지만 탄자니아 다음에 케냐도 구경할 생각이 있다면 이 경로도 검토해 볼 만하다. 아쉽지만 일정이 안 맞아서 이 방법은 써먹지 못했다.
보통 탄자니아에서 사파리 투어를 한 경우 많은 이들은 케냐를 건너뛴다. 시간 여유가 많다면 에티오피아를 구경하고 다음 목적지를 이집트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를 남하하며 여행할 때는 이집트에서 카이로 → 아스완으로, 북상할 때는 아스완 → 카이로 방향으로 이동한다. 단기 여행일 경우 가장 대표적인 경로다. 요즘 한 달 살기, 다이빙 자격증 따기로 점점 유명해지는 다합 같은 휴양 도시를 제외한다면 보통 이집트는 유적지 방문 중심으로 구경하게 된다. 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편을 카이로 국제공항에서 타야 했기에 아스완 → 룩소르 → 기자 피라미드 → 카이로까지 북상하는 일정을 짰다.
나일강 크루즈 패키지
이 구간을 크루즈로 이동할 경우 숙소와 식사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온라인을 뒤져보면 한국인들이 2박 3일, 3박 4일까지 크루즈 패키지를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유명한 크루즈 업자들과 접촉 가능한 카톡 아이디도 검색 가능하다. 이동 중 중간중간 다양한 신전을 볼 수 있는 구간에서 잠시 정착하고 편하게 관광할 수도 있다. 아부심벨 신전까지 가는 일정이 포함된 상품도 있다.
다만 여행 일정이 짧은 경우엔 최소 2박 3일이 걸린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또한 더위에 약하다면 대낮에 크루즈 선박 위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건 고역이리라. 타는 듯한 이집트 태양이 무서울 거다. 이름도 기억하기 어려운 많은 신전들을 들리다 보면 나중엔 그게 그거처럼 보이고, 더위에 지쳐서 구경보단 잠을 택했다는 사례도 참고하자.
기차
시간을 아껴야 한다면 기차가 편하다. 배에 비해 기차로는 고작 3시간 걸린다. 온라인으로 사전 예약도 가능하고 요금도 저렴하다. 다만 웹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탑승 일시 24시간 전에는 예약 취소가 안 된다. 그래서 난 예약을 따로 안 하고 그냥 아스완 기차역 창구에서 현장 구매를 했다. 아스완-룩소르 구간 기차비는 23년 8월 기준 1등석이 465 EGP(이집트 파운드)였다.
가급적 1등석을 권한다. 1등석이라도 더럽다. 그나마 깨끗한 차량칸으로 구매한 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맨 끝 좌석(다른 열차칸과 연결되는 부분)은 화장실이 가까워 냄새가 나니 피하자. 기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3시간 동안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화장실을 절대로 가지 않기 위해 생수도 마시지 않았다. 배가 고팠는데 마침 비행기에서 식사로 나온 빵과 탄자니아에서 챙겨 온 사과가 있었다. 쟁여둔 기내식 비스킷과 함께 기차 안에서 아침을 우걱우걱 챙겨 먹었다.
참고로 룩소르 기차역 근처에서 현지 유심을 살 수 있다. 룩소르 역에서 유심을 사려고 두리번거리니 택시 기사 놈들 뿐만 아니라 투어 삐끼까지 달려들어서 자기가 뭘 알려주겠다고 하며 이상한 데를 데려가려 했다. 다 뿌리치고 역전 근처 간판을 유심히 보니 역시, 역사 바로 옆 맥도널드 광고판 곁에 유심 가게가 있었다.
야간 기차(침대칸)
기차역에 가면 하룻밤 자면서 이 구간을 이동하는 야간 기차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있다. 소요시간은 10시간. 침대칸에 식사까지 해결되니 편할 듯 하지만 비싸다. 예약 사이트에서 요금을 조회해 보면 룩소르에서 카이로 구간이 24년 10월 현재 침대칸 가격은 1인실 130$, 2인실 90$이다.
이집트 정부에선 관광 수입을 극대화하려고 외국인과 국내인 탑승 요금을 별도로 책정해 놓는다.
야간 버스
난 버스를 탔다. 이렇게 이동해도 기차처럼 10시간 남짓 걸린다. 소요시간은 엇비슷한데 가격은 싸니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Go-Bus'라는 사이트에서 좌석 예약도 가능하다. GO-BUS는 이집트 내 원거리를 여행할 때 이용하는 버스 망이라고 보면 된다. 룩소르 ↔ 기자 구간이 24년 10월 기준 550 EGP(한화 15,220원쯤)이니 야간 기차 요금과는 비할 바가 못된다.
다만 네트워크 상태가 말썽이면 선호 좌석을 원할 경우 버스 터미널에 미리 가서 현장 예매를 해야 한다. 내 경우 숙소에서 약 1시간 동안 인터넷과 씨름을 했다. 예매 시도 중 카드 결제 화면으로 도통 넘어가질 않는 거다. 끈질기게 도전한 결과 무려 1시간 만에 결제 성공. 이렇게 성공하면 직접 사전 예약을 하러 버스 터미널까지 안 가도 되니 만세다...! 참고로 버스 뒷자리는 화장실과 가까워서 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집트에 발을 딛는 첫 관문, 카이로 공항부터 관광객은 팁과 뇌물을 요구하는 직원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땅에 이런 부정한 돈거래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후진국의 특징이랄까. 경제 발전이 안되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에서 국민들은 각자도생의 삶을 살 수밖에.
우선 관광객이 납부하는 비자 비용은 알짜배기 국가 재원이리라. 관광객은 도착 비자 형태로 발급받을 수 있고 비용은 $25. 현금 및 카드 결제 모두 가능하다. 이 비용은 이집트 물가를 고려했을 때 정말 비싸다. 여권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비자 스티커를 받고 관광객들 단물을 빨아먹는 첫 단계려니 생각하며 속으론 혀를 내둘렀다.
카이로 공항에서부터 업무 중인 공무원이 그야말로 푼돈을 챙기려는 모습을 영접했다. 이런 게 아주 자연스레 몸에 베인 건지도 모르겠다. 비자 비용 결제, 입국 수속 후 짐을 다 찾을 때까지 장장 2시간 반을 까먹은 후 국내 항공사 카운터로 이동하여 아스완행 항공편으로 환승해야 했던 때였다. 길 찾기가 어려워 명찰을 단 공항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는 길을 안내해 주는 척하며 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엘리베이터에 동승까지 했다. 단둘이 밀폐된 공간에 남자 그는 한 팔을 들더니 노골적으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을 비비며 미소를 띠고 5달러를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이럴 땐 그냥 말귀를 못 알아듣는 척하면 된다. 이집트 여행 중 공공 기관 직원이 내게 뭔가 편의를 제공해 주려는 행동을 할 경우 거의 백 프로 뇌물을 원한다고 보면 되리라.
이집트에서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부터 외국인에게는 현지인에 비해 매우 비싼 차등 요금을 부과한다. 현지 물가를 고려할 때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어디든 이집트 내 공항에서부터 체감할 수 있다.
아스완 공항에 내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왕 온 김에 아스완 시내 구경을 하고 하루 묶을까 싶기도 했는데 역시나.. 바가지요금 탓에 처음부터 정나미가 떨어졌다. 택시 기사들은 공항을 벗어나려는 외국인을 보면 금세 주위를 삥 둘러싸고 삐끼질을 시작한다. 먹잇감을 포착한 하이에나 떼라고나 할까. 이들 레이더망에 걸리면 관광객은 순식간에 포위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탄자니아에서부터 비행기를 장장 4번이나 환승했더니 선 채로도 눈꺼풀이 저절로 감기려 하는데 시끄러운 호객 소리에 정신줄을 놓을 판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없었기에 꼼짝없이 바가지를 쓰고 택시를 타야 하나 싶었다. 참고로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을 땐 이른 새벽이라 유심(USIM)을 사진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거기에서 1시간 걸려 아스완 공항으로 날아오니 여기엔 아예 유심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어떤 남자가 날 보더니 자기 스마트폰으로 룩소르 기차역까지 걸리는 시간과 합리적 택시 요금까지 검색해서 알려주는 게 아닌가. 여행 중 또 한 번 눈물 나도록 누군가에게 고마워했던 기억이다.
이런 실랑이 끝에 결국 저렴한 택시를 타고 바로 아스완 기차역으로 향했다. 요금은 100 EGP(이집트 파운드). 값싼 차량이라 에어컨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아직 아침이라 창문을 열고 달리면 참을 만했다.
그런데 이놈의 기사는 자꾸 아스완 대표 명소를 가리키며 마치 자신이 가이드인 양 안내를 해주려 했다. 팁이나 돈을 더 요구할 거 같은 낌새가 다분해서 그냥 운전이나 똑바로 해달라고 했다. 그는 슬슬 본색을 드러내며 자기가 공항 도로를 나올 때 톨게이트 비가 나갔으니 택시비를 150으로 내라는 거다. 난 그 톨게이트 비 영수증을 직접 확인해 보고 주겠다고 맞섰다. 결국 직접 손으로 영수증을 낚아채어 확인한 결과 톨게이트 비용은 20 EGP였다. 다시 따지자 자기는 공항으로 되돌아가야 하니 150으로 하자는 거다. 결국 그렇게 지불했다.
드디어 아스완 기차역 도착. 그런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200 EGP를 건네주니 자기는 거스름돈이 없다고 기사가 배째라식 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이 즈음엔 여행이 길어지며 나도 언행이 꽤 거칠어진 상태였다. 현지인이 외국인을 봉으로 볼 때마다 서툰 영어로나마 걸걸하게 대거리를 하며 순순히 당하진 않으려 했다. 이 무대뽀 택시 기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얘기한 대로 100파운드만 낼 거다. 니가 제대로 돈 받고 싶으면 거스름돈을 구해오라고 하니 금세 그 기사는 바로 옆에 정차한 버스 기사에게 다가가더니 잔돈을 쉽게 바꾸었다. 그런데 또다시 스리슬쩍 50파운드가 아니라 일부만 돌려주려 하는 게 아닌가. 결국 그 기사 손에서 또다시 잔돈을 강하게 잡아채야 했다. 그다음 직접 기사 앞에서 50파운드를 세어서 주고 거스름돈을 챙겼다. 나 진짜 강해졌다.
관광 중 현지 투어를 신청한 건 딱 한 번 있다. 바로 왕가의 계곡을 갈 때였다.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기에 편하게 이동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룩소르에서는 웬만한 숙소에선 주인을 통해 이런 당일치기 투어를 쉽게 신청할 수 있으리라.
투어 가이드는 팁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또한 5$짜리, 혹은 7$짜리 뷔페식 점심을 먹도록 노골적으로 홍보했다. 아마도 모객을 해주고 음식점에서 수수료를 더 챙기려는 듯했다.
같은 그룹원이었던 일본인 남자는 거절에 능하지 못한 지 불쌍하게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반면 중국인 남자는 내가 팁에 대한 조언을 요구했을 때 이집트 현지에선 팁 문화가 원래 없다면서, 자기는 현금도 별로 없기에 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내 경우 200파운드짜리 그룹 투어를 했으니 상식선 상에서 팁을 줘야 할 경우 20-30파운드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엥?
이거밖에 안 준다고요?
가이드는 집요했다. 분명 자기와 차량 기사를 위해 알아서 팁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말만 그럴 뿐 정말 노골적이었다. 결국 같은 그룹원이었던 스페인 남자와 중국인 남자는 100파운드씩 각각 팁을 줘버렸다. 이 금액만 해도 투어비의 50프로 수준이다. 아마도 우리를 음식점까지 데려갈 경우 이들은 뒷돈을 더 많이 챙겼으리라.
도둑놈 심보가 이게 아닐까. 이런 모양새가 괘씸해서 둘이 나누어 가지라고 50파운드만 줘 버렸다. 그러니 가이드가 황당한 표정으로 이걸 나누어 가지라고? 이런 식으로 되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사실 100 EGP는 우리에겐 전혀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불쾌감을 참으면서까지 팁을 순순히 주고 싶지 않았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건 참지 못하는 뻣뻣한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진짜 살인적으로 덥다. 왜 사람들이 그늘을 만들어서 동굴에 숨듯이 낮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지 알 거 같다. 국립공원 입장 시간도 왜 새벽 6시부터인지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한낮엔 거리에 사람이 줄어든다. 모두들 에어컨을 쐴 수 있는 실내나 그늘에 모여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들도 태양을 피해 시원한 땅 위에 드러누워 있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웬만하면 유적지를 구경할 경우 꼭두새벽에 다녀오는 걸 추천한다. 태양을 피해 쾌적한 온도에서 관람한 다음 낮엔 숙소로 들어가서 일단 좀 드러누운 다음 해 질 녘이 가까워지면 다시 나오는 게 좋다. 현지인들도 시간대별 활동 패턴이 대략 이렇다. 야간엔 사람들이 거리에 북적인다. 아이들도 저녁에 뛰노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치안 걱정을 안 하고 저녁거리를 쏘다녀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꼈다.
차가운 물이 없으면 못 사는 '물보'에겐 유적지를 구경하는 게 고역일지 모른다. 아무리 차가운 생수를 사도 금세 미지근해진다. 해가 중천에 뜨면 이 단계를 넘어 금세 따뜻해진다. 그러니 찬 물을 선호할 경우 용량이 큰 생수는 사지 않는 게 좋다. 관광지에선 살짝 비싸더라도 그때그때 물을 사 먹는 걸 추천한다. 아니면 차가운 생수를 따로 텀블러에 챙겨 다니는 것도 방법이다.
[참고 1] 항공편 경유를 위해 다르에스살람에서 숙박할 경우 숙소를 통해 픽업 차량을 예약해 놓자. 보통 한밤중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도착하는 항공편이 태반이다. 야밤엔 다르에스살람 거리에 가로등 같은 게 없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현지 흑인들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낌새가 보이면 꽤나 무서워진다.
[참고 2] 다르에스살람에서 Transit Airport B&B라는 데는 절대로 가지 말자. 아고다 사이트에선 다르에스살람 공항에서 가까운 호텔 중 가장 상위에 검색되기에 선택해 보았다. 거리상으로는 공항과 가까워 보이지만 숙소까지 이르는 거리는 무슨 공사를 하는 것처럼 비포장도로이며 섬뜩한 분위기다. 참고로 호텔 근처 거리는 낮임에도 분위기가 무서웠다.
게다가 내 경우 운전기사가 이동 중 택시 문을 열었을 때가 있었는데 이땐 진짜 초긴장했다. 그는 길에 장애물을 만들어 놓은 흑인 청년에게 한 마디 성질을 낸다고 이런 행동을 한 거였다. 현지어는 모르지만 당시 그는 험한 말을 청년에게 내뱉은 게 분명했다. 만약 상대가 공격한다면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호텔에 도착. 다르에스살람 밤공기는 한국 여름처럼 덥고 습했다. 그래도 난 추운 산속에서 3일을 있었기에 따듯한 물 샤워가 간절했다. 그런데 무려 1박에 36$을 주고 예약한 독방에서 에어컨도, 선풍기도 작동하지 않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온라인 예약 당시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되었건만 숙소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직원이 우기는 거다.
할 수 없이 체크아웃할 때 내가 영문 페이지로 아고다 결제 기록을 보여주기로 하고 독방에서 잠을 잤다. 이런 오해는 다음 날 아침에 해결되었다. 현지 네트워크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니 간혹 이런 온라인 결제 내역을 숙소 쪽에서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는 듯했다. 그래서 숙소 직원이 굳이 노트에 수기로 예약 및 결제 내역을 따로 적어두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침은 또 얼마나 형편없는지. 식사 장소로 가보니 직원이 음식 메뉴 테이블 앞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메뉴는 뜨거운 물, 밀크티, 식빵, 버터와 쨈 한 종류, 계란 완숙 프라이였다. 이 더운 날씨에 찬 생수는 없었다. 여기에 요거트나 우유, 과일 한 조각이 더해진다면 숙박비가 더 올라갔으려나 모르겠다. 탄자니아 아루샤나 모시에서는 더 저렴했던 숙소에서도 이보다 풍성한 식사가 나왔기에 실망스러웠다.
[참고 3]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면 큰 공항이 위생 면에서 안전하고 편의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는 걸 실감할 때가 있다. 다르에스살람 공항 2 터미널 근처에서는 간단한 요기거리와 식품을 파는 슈퍼마켓이 있다. 여기에서 치킨 한 조각, 요거트 한 개, 우유 큰 걸로 한 팩(무려 8000실링!), 생수 1병을 사서 허기진 배를 채웠던 기억이 난다. 에티오피아 아디스 아바바 공항(Addis Ababa Bole Airport)도 아프리카 허브 공항답게 국제선 환승 시설 규모가 매우 크다. 먹을 것도 널렸다.
[참고 4] 다르에스살람 공항에서 탄자니아를 떠날 때는 현지 통화를 계획적으로 다 써버리자. 국제 항공편이 오가는 3 터미널에서는 출국 신고 후 면세 구역에 들어가면 환전소가 없다. 그러니 미리 시내 환전소에서 남은 탄자니아 실링을 다 환전하거나 면세 구역에서 모조리 써버리는 게 좋다. 난 후자를 택했다. KFC로 찾아가서 햄버거 등과 생수 1병까지 모조리 사니 50실링 동전 2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