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 2024)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예술가의 이름은 자신을 어떻게 질식시키는가. 가수 바비 딜런이 살았던 20대는 유명세와 싸운 시간이었던 걸까.
고인은 떠났으니 이 역사적인 가수의 내면은 알 길이 없다. 미국인이 아니고 영어도 익숙하지 않으니 그가 얼마나 대중의 심장을 흔드는 가사를 썼는지 실감 나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무명 가수가 유명해질수록 오히려 감옥에 갇힌 듯 갑갑해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1961년부터 얘기는 시작한다. 일상 속 사색을 기타와 하모니카 멜로디 위에 얹어 가사로 토해낼 줄 알았던 젊은이 밥 딜런(Bob Dylan)은 점점 유명해진다. 하지만 인기를 얻을수록 밥은 자기 이름에 짓눌리는 듯 보였다.
상업적 성공을 거듭할수록 아티스트는 이익 모델에 갇히기 쉽다. 밥도 그렇게 한 동안 갇혔나 보다. 이건 대중과 음악 관계자들이 만든 감옥 일테다. 이들은 지속적인 흥행을 담보하는 수레바퀴를 만든다. 그리고 흥행 낌새가 보이는 예술가를 이 틀 안에 가둬 놓는다. 사람들은 이런 아이콘을 매체에서 소모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대다수가 싫증을 느끼면 이 꼭두각시의 유통 기한은 끝난다. 그럼 또 다른 미소년이 무대에 올라가면 된다. 뮤지션이 뜨고 지는 흥행 공식은 이렇게 완성된다.
이름이 커지니 밥은 한동안 자기 이름에 갇혔다. 어쩌면 그는 가장 찬란했던 순간 영화 제목처럼 완전한 무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젊음을 꽃피웠던 20대 전성기, 여성팬들이 쫓아다녔던 아이돌이었을 때 오히려 뮤지션으로선 유리 천장을 느끼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예술가에게 인기란 무거운 금 덩어리와도 같다. 찬란하게 빛나는 값비싼 가치를 자랑하지만 갖고 있으면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보석 말이다. 귀중품을 소장하면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이 생긴다. 두 팔이 무거워질수록 손에 든 금을 버리고 싶지만 한편으론 다시 못 얻을까 불안해진다.
영화 속 마지막 무대는 관중들이 물건을 던지며 야유했던 음악 페스티벌이었다. 무대 뒤 관계자들은 밥이 기존에 히트했던 포크 송을 불러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 요구를 단연코 거부한다. 밥은 대중이 기대하는 대로 노래를 뽑아줄 수 있는 오르골 인형이 되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알을 깨고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면전에서 누가 자신을 욕하든 하고 싶었던 무대를 이끈다. 밥이 기타를 튕기니 거칠고 굵직한 사운드가 공기 속에 울려 퍼졌다. 앰프를 뚫고 나온 거친 전자 기타 소리, 이건 바로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요즘 같으면 헤비메탈처럼 웅장하고 반항적인 기운이 넘치는 노래였을 테다.
그는 이렇게 대중의 기대에 반항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로서 생명을 지탱할 수 있었다. 노벨 문학상 시상식 불참을 선택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싫어했지만 그는 결국 한 시대를 빛낸 아이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