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for Vendetta (2005)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독재자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정치에 이용한다. 바이러스를 만들어 몰래 시민들에게 퍼뜨리니 갑자기 수많은 감염자가 생겨났다. 그런데 치료제를 갖고 있는 제약 회사는 알고 보니 이 독재자와 은밀한 유착 관계에 있다. 살고 싶은 사람들은 이 거대한 권력에 굴복할 수 밖엔 없다. 시민들의 생존 본능을 자극해서 치료제에 대한 독점 권한을 거머쥔 독재자와 기업은 결국 거대한 정치 세력으로 발전한다.
권력을 잡게 된 정치 세력은 거대 권력에 반대하는 이들을 '정신집중 캠프'라고 불리는 수용소에 가두어 버린다. 그 안에서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불법 인체 실험을 마음껏 시도하면서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무기를 만들려 한다.
이들은 언론도 장악한다. 수용소에서 일했던 군인을 유명 토크쇼 사회자로 앉혀 놓으니 정부에 우호적인 내용만이 방송될 수 밖엔 없다. 언론이 이 모양이니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될 리 없다. 이 사회에서는 이동의 자유도 제한된다. 야간에는 통금 시간이 있고, '핑거맨'으로 불리는 이들은 불시 검문을 한다. 거리 곳곳에는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시민들은 감시 대상이다.
줄거리를 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여러 사건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재벌 기업과 정부 간의 유착, 삼청교육대, 제대로 된 취재 없이 받아쓰기식 저질 기사를 양산하는 상업 집단으로 전락한 언론, 70년대 독재 정권 하의 통금 시절, 방송 통제...
모든 시민들이 철저한 통제 하에 살고 있는 사회, 이곳에서 젊은 여성 '이비(나탈리 포트만 역)'는 방송국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 전 통금 후 밤거리를 지나가다 위기에 처했을 때 V라는 남성의 도움을 받는다. V는 이때 이비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고 제안한다. 그건 바로 V가 재판소 건물을 폭파시키는 모습. 이비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대낮에 V는 그녀가 일하는 방송국에 쳐들어와서 현란한 실력으로 직원들을 제압하고 실시간 방송에 나타난다.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둔 건
바로 여러분입니다.
독재가 유지되도록 방치한 건 시민의 책임이라고 말하는 V. 그리곤 정확히 1년 후 11월 5일, 시민 혁명을 예고한다. 독재 권력 아래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온하게 살고 있는 시민들은 과연 이 말을 믿을 것인가.
정부 담당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리곤 믿을 수 없는 이 반란을 작은 사고처럼 꾸미려 한다. 정부의 입김 하에 방송국은 감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하여 V를 성공적으로 제압했다는 거짓 뉴스를 내보낸다. 그리곤 한 방송국 직원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는 듯 태연히 말한다. 자신들은 거짓을 전하는 건 아니라며, 실제 사실을 날조하는 건 정부라고.
V는 이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의 집에는 정부로부터 몰래 훔쳐온 온갖 예술작품들이 있다. 이비에게 그는 아침 식사를 대접한다. 버터로 요리한 토스트를 먹으며 감동하는 이비. 그녀는 버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식재료 같은 생필품도 정부가 수급을 통제하기에.
V의 과거를 알게 되며 이비는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알고 보니 그는 과거 수용소에서 인체 실험의 피해자로 시달린 사람이었다. 다만 그는 돌연변이처럼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채 수용소가 불타던 날 살아남는다. 그는 이 날 화상으로 입은 흉터를 가리기 위해 이비 앞에서 가면을 절대 벗지 않는다.
이후 V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정부 관계자들을 한 명씩 찾아가서 처단한다. 마지막으로 독재자 암살까지 성공시킨 후 장렬히 전사하는 V. 하지만 진짜 혁명은 이비의 손으로 시작된다. 모든 시민들에게 V와 똑같은 가면이 배달되었고, 이들은 자유 의지에 따라 가면을 쓰고 거리로 나왔다. 수많은 V들이 드디어 탄생한다.
이 영화는 독재의 씨앗이 자라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독재 사회의 통치 수단은 바로 통제와 공포, 혐오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혐오하도록 여론으로 선동하고,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 독재 정부는 반대 여론이 싹트지 않도록 언론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흘리고 왜곡된 신념을 갖도록 교묘히 조종한다.
2022.10.29. 우리나라에 얼마 전 비극이 있었다. 정부에서는 11월 5일까지를 갑자기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며 자유로운 집회를 막았다. 이게 그렇게 급했던 일인가. 그 사이에 재난의 원인을 잘못된 데로 돌리는 뉴스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애도'란 그리 갑자기 생겨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애도란 어떤 사실을 비로소 고통스럽게 받아들일 때 느끼는 슬픔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비극이 발생한 경위에 대해 낱낱이 이해하고 나서, 이 재난이 일어났음을 비로소 인정해야 할 때 마지막으로 느낄 만한 감정이다. 지금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 분노를 느끼는 게 오히려 정상이다. 충분히 사전 준비를 통해 예방할 수 있었던 재난이 왜 일어났는지를, 안전 조치가 미흡했던 이유를 투명하게 이해해야 비로소 이 비극에 대해 슬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인재(人災)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행사는 대한민국 서울에 팬데믹 이전에도 부지기수로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응원도, 촛불 혁명도, 팬데믹 이전에 있었던 수많은 거리 행사들도 모두 시민들이 불안감 없이 누릴 수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기본 책임을 망각하고 함부로 애도를 먼저 강요하지 말라.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자, 자신의 과오로 결국 자멸한다. 역사가 말해주는 진리를 시민들이 기억하지 못하면 독재자에게 권력을 내어주는 실수는 반복될 것이다. 지금 그 누군가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 이 땅에는 수많은 V들이 살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