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Me by Your Name, 2017)
얼마나 기대를 했던지. 몇 달 전 똥손으로 PC 화면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온라인 예매를 마치고 계속 11월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어제 OST 라이브 상영을 다녀왔기에 후기를 써보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필름 라이브 상영이 흔하지 않다. 하지만 OST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이런 형태로 영화를 감상하는 건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가끔 외국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는 유명한 필름 콘서트는 순식간에 매진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콜미바이유어네임이라니. 골수팬들이 워낙 많은 이 작품은 색색깔로 LP가 발매될 정도로 OST 음반도 매우 인기가 많다. 특히 피치(peach) 색 LP 중고 가격은 후덜덜하다.
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은 사람이 진짜 많았다. 넉넉히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을 잡고 도착했건만, 티켓을 받는 줄도 사람들이 많았고,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서 따로 성인 인증 팔찌도 신분증 지참 후 받아야 했다.
드디어 영화 시작.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콘서트에는 좀 많이 실망했다. 물론 이 영화 자체를 다시 본 건 행복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감상글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니 어제 본 공연 중심으로 적어보겠다.
(아래부터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악기 배치가 예상과는 너무 달랐다.
이 부분은 관람객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내 경우엔 불호였다. 없는 돈에 굳이 무리해가며 제일 비싼 앞 좌석을 공들여 예매한 이유는 피아노 연주를 느끼기 위해서였다. 그렇기에 내 좌석 근처에 피아노가 배치되길 바라며 일부러 정중앙 좌석이 아닌 측면 좌석 쪽을 예매하기도 했다. 주인공 엘리오의 취미가 피아노 연주이기도 하고, 피아노 독주 테마곡들이 영화 속 결정적인 장면에 곁들여진다. 그렇기에 피아노 악기 배치가 어디인가가 내게는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피아노는 관현악단 중간 뒤쯤 꽁꽁 숨겨진 위치에 있던 거 같다. 아마도 지휘자의 시야에 모든 연주자들이 들어와야 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이건 연주자 중심으로 결정된 배치일지도 모르겠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기에 틀릴 수도 있음을 밝힌다. 다만 내 옆에 앉은 다른 관객들도 “피아노는 어디 있어..?” 라고 말하며 궁금해하는 걸 보았다. 나 또한.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3층을 예매해서 좀 싸게 볼 걸' 하고 후회를 했다. 연주자들의 몸짓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같이 느끼고 싶었는데
(2) 조명, 조명이 문제였다.
제대로 된 필름 콘서트를 내 돈 내고는 처음 와 봤기 때문에 음악을 잘 들을 수 있는가만 생각했지, 조명에 대해선 고려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케스트라를 비추는 조명이 영화 속 장면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가 정말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김샜던 순간은 그 유명한 '복숭아 씬(scene)'이 나올 때였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복숭아가 왜 중요한 상징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바로 주인공 엘리오가 다락방에서 혼자 빈둥대다가 낮잠을 자고, 올리버가 나타날 때. 퀴퀴한 먼지로 뒤덮인 다락방에는 햇살이 미처 닿지 않는다. 때문에 화면 색감이 어둡고, 그만큼 관객으로선 엘리오가 그 순간 느끼는 섬세한 감정에 초집중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콘서트 조명이 갑자기 다채로워졌다. 왜냐하면 엘리오가 이 장면에서 듣는 음악 자체는 경쾌한 디스코 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에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밝고 경쾌한 상태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조금 있다가 엘리오는 펑펑 우는데.. 어두컴컴한 다락방이어야 하는 공간은 적나라하게 훤히 비치니 화면 자체가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한 마디로 조명을 구상하는 기준이 줏대가 없고 갈팡질팡이었다. 이 장면 말고도 조명이 연주자와 음악을 중심으로 가는지, 아니면 영화 속 장면 분위기를 따라가는 건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들이 여럿 있었다.
공연을 막상 보고 나서 생각해보니 필름 콘서트에서는 조명 설계가 정말 중요함을 느낀다. 관객이 시간과 돈을 써서 필름 콘서트까지 보러 올 정도면 사실 대다수가 그 영화를 이미 본 상태일 거고, OST를 라이브로 생생히 느껴보려는 욕구가 클 거다. 관객들은 연주자들과 영화를 동시에 놓치지 않고 주목하려 한다. 그러니 '사람들이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무리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조명 계획을 세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다양한 소리 사이의 조화가 조금 아쉬웠다.(feat. 화면 크기)
어제 필름 콘서트에서 본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한마디로 '연극톤'으로 들렸다. 예전에 영화만을 보았을 때는 인물들의 목소리가 '납작하게' 들렸다면, 이번에 들린 목소리는 실제 내가 있는 공간에서 같이 울리는 듯한 현장감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어제 공연에서는 영화 화면이 너무 작았다. 이게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장소에서 최대한으로 구현할 수 있는 화면 크기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다음에 이 장소에서 다른 필름 콘서트를 하게 될 경우엔 예매를 망설일 것 같다. 좋은 건 크게 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것도 다름 아닌 엘리오랑 올리버인데..! '더 큰 화면에서는 아마도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또한 일부 장면에서는 BGM과 대사 소리 크기가 잘 조화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영화에 사운드를 삽입할 때는 다양한 음원 간의 소리 크기 비율을 맞추는 믹싱 등 후반 작업이 뒤따른다. 그러나 필름 콘서트에서는 아무래도 BGM을 라이브로 연주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대사 소리와 음악이 비슷한 비율로 울려 퍼져서 좀 낯설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쓰다 보니 아쉬운 점만을 나열하게 되었지만.. 엘리오와 올리버는 마치 그리스 시대 미소년 조각상을 현대에 재현해 놓은 것처럼 아름답기만 했다. 아마 영화 포스터를 찍을 때 감독이 의도적으로 이런 이미지를 구현하려 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특히 어제 공연 포스터는 두 배우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을 흑백으로 찍어 놓으니 조각상 느낌이 더더욱 뿜뿜.
BGM이 깔리며 두 사람이 사랑을 서로 확인하고 고백하는 순간들은 다시 보아도 뭉클했다. 내겐 오래전 사라져 버린 설렘, 뜨거움, 순수함이 영화에 다 저장되어 있는 듯해서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p.s.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역)는 엠넷 방송 프로그램 '스트릿 맨 파이터'에 출연한 댄서 '유메키'와 외모나 분위기가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