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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Feb 22. 2023

외딴섬처럼 고독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

마음(こころ, 1955) & 그 후(それから, 1985)

 

(소설  마음과  소레카라(그 후)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마음」과  「소레카라(그 후)」 후기를 쓰려 하지만 이 글은 결국 소설 예찬이 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나무 위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 우연찮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를 처음 읽었을 때 첫 문단을 읽어내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도 쉽게 문장들을 줄줄이 써 내려갈까?’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다. 마치 동양판 동물농장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고양이 시선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맛이 있었기에 마치 성인용 동화책을 읽는 듯했다. 두꺼운 책두께 때문에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빨리 완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읽었던 작품은 마음(こころ, kokoro)이었다. 마음이라니. 흔하디 흔한 단어지만 모양도 없고 딱 알맞게 설명할 수도 없는 말. 마음을 소설 제목으로 쓰다니.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글쟁이는 상당히 용감하고 자기 글에 대해 확신을 가진 사람일 거라는 상상도 했었다. 이 사람 얼굴이 일본 지폐에 떡 하니 초상화로 박제될 정도로 유명인인 줄도 몰랐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었을까?  「마음」을 읽고 나서는 점점 궁금해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근대 소설가. 1900년 국비 유학생으로 2년간 영국에 유학을 갔던 사람. 한때 신경쇠약에 시달릴 만큼 섬세한 영혼을 가졌던 한 청년이 낯선 땅에서 자신을 마치 원숭이 쳐다보듯 했을 서양인들에 둘러싸여 고독한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아득히 먼 미래를 살고 있는 일개 독자로선 미처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운명처럼 이방인으로 생을 시작했다. 출생 직후 그는 다른 가정에 양자로 보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성인이 되어서야 다시금 본가로 입적한다. 이후엔 한때 서양인들에 둘러싸여 군중 속 외딴섬 같은 삶을 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작품에도 고독이 묻어있다.


소세키 소설은 물건으로 치자면 거울 같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깨끗한 거울 말이다. 거울이 제 구실을 하려면 뭔가를 비출 때 과장이나 축소 같은 왜곡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거울이 비춰주는 게 진짜라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소위 옷가게 거울처럼, 실제 내 체격보다 날씬하고 멋지게 비춰주는 거울은 한 번 볼 땐 기분이 좋지만 거울로선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 거울에 비치는 게 진짜라고 누가 믿겠는가. 필터로 예쁘게 거른 SNS용 사진을 진짜라고 믿기 어려운 것처럼.


꾸밈이 없어서인지 그가 쓴 문장은 지금도 술술 읽을 수 있다. 지금 봐도 손색이 없는 현대소설 같다. 옷으로 치면 유행 타는 장식이 없는 기본 의상처럼 말이다. 한 철 지나면 촌스러워 보이는 옷처럼 쓸데없는 장식이 많은 문장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문장력. 그가 오늘날 위대한 소설가로 손꼽히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마음은 흑백 영화다. 겉으론 번지르르해 보여도 실제론 별 게 없는 찌질한 심성. 이런 마음가짐이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소설. 아쉽게도 영화를 볼 땐 소세키 작품 중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원작을 읽을 때처럼 등장인물 간 미묘한 심경은 느낄 수 없었다. 영화 기법이 아무래도 지금 만큼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원작 줄거리를 그대로 옮긴 동영상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다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하는 시대 풍경을 눈으로 감상하는 맛이 있었다. 특히 소설 속 선생님이 물로 들어가 생사 여부를 고민하던 심경을 화면으로 표현하려 노력한 듯한 장면이 기억난다.


소레카라(그 후)는 8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컬러 영화다. 이 작품은 나와 결혼한 친구, 그리고 친구의 아내 간 삼각관계를 다룬다. 가문에 이로운 사람과 혼인하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 주인공은 친구의 부인을 속으로 연모한다. 요즘처럼 자기 욕망에 충실해도 좋은 시대가 아니었기에 주인공이 고민하는 심정을 나름대로 잘 그려냈다. 다만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저 그런 불륜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인공이 경제적으로 힘든 친구 부인에게 돈을 얼마 쥐어주며 했던 말이다. 자신이 예전에 그녀에게 선물했던 반지를 빗대어 무안하지 않게끔.


종이로 만든 반지라고 생각하시오


돈을 이렇게 비유하다니. 이런 문장을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다시금 감탄했다.


두 영화 모두 소세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소설이 어떻게 영상으로 재현되었는지를 감상하는 맛이 쏠쏠하다. 옛 영화인 만큼 굳이 꼭 보라고 추천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나쓰메소세키 #나츠메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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