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이재명? = New민주진영 갈라치기

민주당 내분 사태를 보며

by 녹색광선

내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유시민의 짧은 글이 그림 파일로 있다. 제목은 <넥타이를 고르며>.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영결식을 가야 했던 심경을 담은 그의 짧은 일기.


가끔 메모리 정리를 하더라도 이 파일 한 개는 남겨두었다. 홍수처럼 퍼붓는 시사 뉴스 더미에서 혼란스러울 때 길잡이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후, 노무현은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당시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임기 초반부터 당시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하하는 연극을 하고 탄핵을 부르짖을 때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언론도 대통령 폄하에 가세했다. 참여정부는 언론과의 유착을 끊기 위해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기자실 개혁)을 단행한다. 그러자 매체들은 이를 '언론 탄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각종 뉴스에서는 '노무현 디스카운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어 노무현 정부에서 이룬 경제적 성취를 평가 절하했다.


이미지 출처: 한국일보(왼쪽 상단에 앳된 나경원 의원이 보인다)


당시 노무현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 언론과 기득권 야당이 만들어낸 갈라치기 술책에 휩쓸려 결국 검찰 권력에 노무현이 당하는 걸 지켜만 봤다. 정치를 몰랐던 나조차 이 충격과 슬픔을 지금껏 기억한다. 휠체어를 탄 채 목 놓고 아이처럼 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억한다. 장례 절차를 챙기며 상주 역할을 했던 문재인을 기억한다.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 부부에게 "어디서 분향을 하느냐", "사죄하라"라고 외치자 이를 제지하며 이 대통령 내외에게 정중히 목례한 그의 품격을 기억한다.


노무현을 잃은 뒤 지지자들은 문재인을 지키고자 단결했다. 문 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 지지자들은 알기 때문에 민심 갈라치기에 휘둘리지 않았다. 문재인이 민주당 대표 시절 온라인 입당 시스템을 도입하고, 당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려 했던 걸 알기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의 유서를 지갑에 넣어 몸에 지니고 살았던 그를 믿기 때문이었다. 문재인이 당 대표 시절 민주당이 분열하는 걸 막으려 안철수 자택을 찾아갔지만 야밤에 문전박대를 당했을 때, 정동영 의원에게 팽 당했을 때, 당원들은 이 모욕을 그와 함께 겪었고, 인내했고, 그의 진심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 서거 후 지지자들은 더 이상 기성 언론 프레임에 물들지 않았다. 그렇게 문 대통령을 지켰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평균 지지율 1위였고 퇴임 전 지지율이 40% 중반에 이르렀다. 팬데믹 방역을 확실히 하여 K-방역을 브랜드화했고, 불법 계엄 수단이 될 만한 위수령을 없애버렸고, 트럼프 1기 때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대화를 주도하고 평창올림픽 개최를 이끌었다. 세계 5위 수준 국방력 강화, 방산 수출 증대, 신남방정책 등 외교적 성과를 창출하며 선진국 소리를 들을 만큼 국격을 높였다.


민주당 역사를 함께 한 지지자들은 2022년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을 기억한다. 그는 첫 대선 후보 시절 광화문에서 마지막 연설을 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길을 열고, 노무현 대통령이 길을 닦고, 문재인 대통령이 세운 이 나라를 더 발전시키겠다"며 울먹였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이 담긴 영상에 맞춰 지지자들과 함께 '상록수'를 합창했다.


이미지 출처: 투데이 신문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대통령의 선언은 모두 민주당 정신을 상징한다. 김대중은 평생 빨갱이라는 낙인에 시달리며 민주당의 기틀을 다졌다. 고 이해찬 옹은 이 역사를 함께 만든 증인이었다.


뒤이은 세 대통령 모두는 당내 비주류 인물이었다. 하지만 당원들은 진짜를 알아봤다. 계파를 만들고 떼거리로 세를 과시하며 의원 자리나 보전하려는, 의원내각제라는 궁극적 권력 로망을 추구하는 정치자영업자를 당내 경선에서 몰아내고 뼛속까지 공익을 추구했던 인물들을 기어코 살려냈다.




New이재명?

뜬금없는 세력 몰이



요즘 지방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민주 진영을 갈라치기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는 듯하다. 이들은 이른바 'New이재명'이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이 구호를 부쩍 자주 쓰는 매체는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정도. 소위 친민주 성향인 유튜브 채널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고공을 찌르는 대통령 지지율의 근간이 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이 구호를 환영하는 정치인들(이언주, 한준호 등)을 패널로 모신다. 또한 이재명만 유일하게 믿을 만하고 다른 모든 정치인이나 유력 인사(유시민, 정청래, 정준희 등)는 이재명에 해가 되는 인물로 단정한다.


이 세력들은 최근 온라인 댓글 활동을 활발히 하는 듯하다. 2026.02.18 MBC에서 방송한 손석희의 <질문들 4>에 출연했던 유시민 작가의 방송 클립이 방송 직후 유튜브에 업로드되자마자 1시간도 안 되어 엄청난 악플과 이에 대한 ‘좋아요’가 달렸다. 악플은 매우 많은데 실제 내용은 몇 종류뿐이다. 대략 이렇게 추릴 수 있다: 유시민 악마화 / 검찰에게 보완수사권을 줘야 한다 / 경찰은 수사 못하는 조직이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 때문에 이런 피해를 입었다 / 버닝썬 수사해라.




갈라치기,

어떻게 이분법적 사고로

혐오를 유도하는가?


이미지 출처: MBC <손석희의 질문들4> 방송화면 캡처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면 '뉴이재명'이 뭔지 모른다. 어쩌다 이 문구를 들으면 그럼 '올드 이재명'은 뭔데? 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최근 언론이나 댓글에서 유독 자주 띄는 호칭들은 다 이런 이분법적 시선을 유도한다. 반명, 친명, 반청, 친청, 반문, 친문.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게 하는 단어다.


인간은 본래 현상을 골치 아프게 분석하는 걸 힘들어한다. 되도록이면 간편하고 효율적인 인지 처리를 선호한다. 특히 공포나 분노에 사로잡힐수록 더 단순하게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그래야 대처가 빠르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가까워올수록 정치권에서는 세력 간 편 가르기를 유도하는 뉴스를 뽑을 때 흑백논리식 약어를 자주 사용한다. 갈라치기 뉴스 헤드라인에서 이런 용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문구에 익숙해지면 같은 진영 지지자들도 서로를 욕하기 쉽다.


하지만 민주당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해 봤다. 민주 진영이 갈라지면 어떻게 정권을 뺏기는 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노무현이 문재인이 자신의 친구라는 걸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지, 김대중이 노무현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문재인이 새내기 정치인이었던 이재명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민주당원들은 특히 잘 알고 있다. 이들 모두 이 땅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해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노고를 속속들이 기억한다.


때문에 요즘 언론에서 '뉴이재명'이란 문구를 갈라치기 목적으로 사용하더라도 오래된 민주 계열 지지자들은 꿈쩍도 않을 거다. 특히 유시민을 '반명'이라고 악마화하다니, 코웃음 칠 일이다. 유시민이야 말로 친노, 친문, 친명의 화신이다.


이런 프레임 짓기는 사실상 민주당 역사를 오염시키고 거세하려는 시도라고 보인다. 내란과 계엄을 자행한 정치 세력은 이런 자랑스러운 성취가 없으니, 훌륭한 국가 수장들을 배출한 민주 진영 내부를 혼탁하게 만들려고 지도자별 재임 시 미흡했던 정책을 비난하며 증오가 섞인 악플로 도배하는게 아닐까? 그렇게 민주당 출신 역대 대통령에 대한 지지자와 반대파가 갈라져서 싸우도록 부추기는 게 아닐까? 이렇게 추측한다.


이재명은 과거 당내 경선 시절, 자신을 광적으로 지지하는 온라인 세력 ‘손가혁’이 이런 위험한 의도를 가졌음을 진작 직감하고 공개 절연했다. 그의 통찰이 엿보이는 사례다.


이미지 출처: ’새날’ 유튜브 채널(https://youtu.be/xmZXwCr2zf4?si=Q0xy9bMcPoTxNCiC)


그나저나 이 노트북을 2010년도에 샀으니 진작 갔다 버려도 될 만큼 고물이 되었다. 오래간만에 유시민의 글을 열었다. 읽은 김에 <서울역 분향소에서, 2,3> 도 본다. 다시금 노무현을 잃었던 한(恨)을 되새기며.









매거진의 이전글단종애사를 떠올리며, 정치 연예인 시대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