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2026)
사실 이 영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최근 이걸 보니 옛날 '단종애사'를 읽었던 기억이 나서, 그리고 요즘 정치 상황이 생각나서 끄적거려 본다. (잡탕 글이다 보니 낚시성 제목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안에서 놀 거리라곤 유일한 게 독서였다. 집에 컴퓨터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웬만한 건 다 읽고 나니 책장에 춘원 이광수가 쓴 이 소설 제목이 눈에 띄었다. 어린이 눈엔 이 문구가 무슨 뜻인지 도통 알 길은 없었다. 심심한 걸 벗어나려 낯선 문구가 박힌 이 책을 뽑아 들었지만 초반부터 난관이었다. 쪽마다 한자어가 얼추 반은 섞인 옛 소설을 문해력이 빈약한 나이에 읽기란 버거웠다. 그래도 오기가 생겼다. 줄거리라도 반드시 알고야 말리라.
모르는 단어는 그냥 지나가기. 이런 식으로 반 이상 책을 넘겼다. 그래서 단종은 어떻게 되었나, 죽었나, 살았나, 죽었다면 어떤 방법으로?
책 후반부로 갈수록 공포의 도가니탕에 빠졌다. 알고 보니 '사망'이란 단어도 잘 모를 나이에 읽을 만한 책이 아니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줄줄이 피가 철철 넘치는 살육이 벌어졌다. 아니 이게 실제 역사였단 말인가. 권력이 이리 무서운 걸까. 왕좌에 굶주리면 자기 친인척까지 멸절시킬 만큼 인간은 잔인한 걸까.
수양대군이 단종을 제거할 수 있었던 건 참모진이 있어서였다. 이 중 한명회가 단연코 유명하다. 그 외 수양을 따르던 신하들은 세종 시대엔 집현전 학사, 문무관, 혹은 종친이었다. 세종 같은 훌륭한 리더가 그립감을 잡고 통치할 때 이들은 충신이었다. 다들 선한 목적으로 자기 재능을 발휘했다. 하지만 왕권이 흔들리자 이들은 힘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돌변했다.
친일파 소설가 이광수는 그런데 왜 단종애사를 썼을까? 세조에 붙은 자, 단종 즉위를 꿈꿨던 자 중 어느 쪽을 더 좋게 봤을까? 결국 이들 모두 왕을 통한 치세를 꿈꿨을 텐데 어느 편의 야망을 더 긍정했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이런 역사는 친일파가 끌렸을 만한 내용은 아닐 텐데.
난세에도 지조를 지킨 사육신들을 떠올리며 이광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수양대군에게 붙었던 세종 시절 충신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단종과 함께 했던 신하들은 어떤 각오였을까.
당시 백성에게 이 위정자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요즘,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합당 논란이 뜨거웠다. 이런 시국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은 스트레스를 받지만 정치인 DNA를 가진 사람들은 뭐랄까, 엔도르핀이 도는 가보다. 지켜보며 다시금 정치인은 대중의 분노를 먹고사는 직업임을 깨닫는다.
최근 합당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확실한 인지도를 쌓았다. 당론을 논하기 전에 우선 매스컴 카메라 앞에 서서 거센 입담을 펼쳤다. 사전 논의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럴 순 있다. 그 후 당 대표는 이 점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곤 당원들이 관찰 가능한 방식으로 공개 논의를 제안한다. 하지만 합당 반대파들은 이를 거부하고 의원들 간 비공개 논의를 주장한다.
당원과 의원 간 토론할 창구가 막힌 상황에서 합당 반대파들은 양당 대표 모두를 성토했다. "조국과 정청래가 당권과 대권을 밀약했다, 조국혁신당에게 400억 부채가 있다, 토지공개념이 사회주의 빨갱이 사상이다" 등등.
이런 주장은 한쪽 얘기만 들어선 곤란하다. 당사자간 설명과 팩트 체크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의 미래를 결정하는 선택은 명색이 당원주권정당을 표방하는 만큼 당원들의 의사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이 절차 모두를 거부했다. 그러는 동안 자그마치 19일이 흘렀다. 이 정도면 논의를 진행하기에 충분한 시간 아닐까?
그동안 언론은 싸움 중계를 하느라 신나게 콘텐츠를 만들고 트래픽, 조회수를 올렸다. 언론과 관련 정치인 모두 남는 장사다.
이언주 의원의 주장은 음모론에 가깝다. 조국 대표는 최근 모 시사 프로그램에서 조국혁신당엔 400억 부채가 없다고, 부채는 0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토지공개념은 원래 더불어민주당 강령에 있다. 문재인, 이해찬, 이재명이 모두 주장해 온 바다.
하지만 토지 공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주의 빨갱이' 어쩌고 하는 표현에 쉽게 현혹된다.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며 민주당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만한 이 기조를 모른다면 말이다. 이언주는 민주당 의원인데도 스스로 소속 정당의 기본 정신마저 부정했다. 이건 유체이탈 화법? 그녀의 말을 믿는다면 조국은 반국가세력으로 보일 만하다.
대중의 무지를 이용한 이런 선동이야말로 중우정치(衆愚政治)다. 이런 언어는 다수의 주목을 받긴 쉽다.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할수록, 이 감정을 배설할 대상을 정밀 타격할수록 그 정치인은 각광받는다. 그리곤 부조리를 근절할 만한 메시아로 등극한다.
문제는 이 구세주가 철새 본능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러면 유권자들은 혼란스럽다. 친명을 부르짖는 이언주가 과거에 리박스쿨 강의를 했을 땐 어떤 역사관을 가졌던 걸까?
https://youtu.be/dgN7 I6 WLcQQ? si=3 XBwGJtxfQVboeKk
12.3 내란 후 정치를 보며,
뭐랄까. 요즘은 사실상 연예인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많이 보인다. 과거엔 사익을 노리는 정치인을 ‘정치자영업자’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치 연예인' 정도로 말해야 할 거 같다.
이런 인물은 SNS를 적극 활용한다. 공직 일상을 다룬 콘텐츠는 사실상 그 정치인의 브이로그처럼 보인다. 구독자와의 라이브에도 열심이다. 솔직히 언제 공직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특히 선거철이 다가와서 이런 모습이 요즘 더 잘 보이는 걸까.
내란으로 인해 최근 1년 간 정치에 관심을 갖는 젊은 세대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은 온라인으로 시사 현안을 파악한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민주 계열 정당 역사를 모르는 연령층은 특히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외모가 반반하고 구독자에게 친절한 정치인들은 호감형으로 등극한다. 특히 내란 세력 척결에 앞장선 이력이 있다면 영웅화되기도 쉽다. 특히 연예인화된 정치인일수록 덕후들이 생긴다. 그들은 애정하는 정치인과 관련한 콘텐츠를 재생산한다. 애칭을 붙인다. 일거수일투족을 팔로우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우상을 비판하면 댓글 공격으로 반기를 든다.
하지만 나이 든 세대는 이런 정치인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과오들을 기억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카멜레온처럼 돌변했던 인물들이 뇌리에 박혀있다. 숱하게 봐서, 볼 때마다 충격을 받아서다. 친문이었다가 반문이 된, 반명이었다가 친명이 된, 저쪽 당에 있다가 이쪽 당으로 노선을 바꾼, 이승만을 찬양하다가 이재명을 외치는, 친명을 외치지만 반명 기미가 보이는.
언론은 이런 프레임을 좋아한다. 정치인들이 주인공이 되는 콘텐츠를 생산해야 돈이 되니까. 정치인이 곧 뉴스 공급자다. 이들이 기자와 친해지면, 상부상조하면 기사는 서서히 오염된다.
다시 궁금해진다.
과거 이재명 당 대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킨 의원들 중 지금 친명이 얼마나 섞여 있을까?
현재는 친명이지만 언제라도 대통령 뒤를 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당 대표를 팔아먹어도, 대통령을 배신해도 자기 밥그릇이 더 중요한 정치 연예인들은 누굴까?
철새는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이번에 행동대장 격인 이언주, 한준호, 강득구, 박홍근, 이건태, 황명선 등을 엮은 배후 인물들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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