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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Dec 03. 2022

먹고, 먹히고, 사랑하고.

본즈 앤 올(Bones and All, 2022)

(영화 내용이 바로 아래부터 있습니다.)



엄마 찾아 삼만리-아버지가 테이프에 남긴 고백을 들으며.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초반부터 깜짝 놀랐다. ‘식인(Cannibalism) 다루나 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알았다. 도저히 다수와 섞일  없는 별종들의 외로움. 자신이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라고 느낀다면 추천하고 싶다. 다만 호불호는 갈릴 듯하다. 내가 보았던 상영 회차에는 관객이 눈대중으로 20 정도였는데 상영 도중 2-3명이 나갔다.  비율로 따져 보면 10  2 내외 정도는 영화 소재를 견디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상업 영화답게 잔인한 내용을 다루는 장면이 생각보다 그리 보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명사회에서 본능을 누르고 살아야 하는 갑갑함에서 살짝 벗어난 기분이다.   안에 원시 시대부터 이어져  포식 욕이 꿈틀거리는  왠지 통쾌하다.



난 외톨이,
태어난 걸 후회해



누구도 이해하기 힘든 식성을 가진 소녀가 있다. 매런은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자리에서 본능을 억누르지 못하고 친구의 손가락을 먹어버린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 눈치다. 3분 내에 짐을 싸서 도망가야 한다고 딸 매런을 재촉한다.


부녀는 다른 주로 이사를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는 딸을 떠난다. 약간의 돈과 자신의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만을 남긴 채. 딸에게 그는 전한다.


널 사랑하진 못했지만
미워하진 않았다.


더 이상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테이프 속 아빠 목소리. 매런은 망연자실하다. 세상에 날 태어나게 한 사람이 날 버렸다니.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는지, 이리도 얄궂은 운명을 타고났는지 밝히고 싶어 매런은 출생증명서에 적힌 곳으로 떠난다. 여행 중 그녀와 같은 식성을 가진 할아버지와 청년 리(티모시 샬라메 역)를 차례로 만난다. 어떤 식으로 식인을 하고 뒤처리를 하는지 이들의 노하우를 접하며 매런은 착잡하다. 비슷한 부류를 만나서 외로움이 가시긴커녕 점점 슬퍼질 뿐이다. ‘난 변할 수 없는 종족인 건가.’


그녀와 식성이 달라도 괜찮다. 사회 속 다수와 섞이는 게 힘든 이라면 매런의 심정을 알 수 있다. 가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면 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실수라는 생각이 든다면, 도저히 사회에서 내가 무난한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느낌이 든다면.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



리와 매런은 가까워지며 조금씩 서로의 식인 경험을 나눈다. 첫 경험 상대는 둘 모두 베이비시터였다. 매런은 리에게 묻는다. 처음 식인을 할 때 느낌이 어땠는지.


무아지경이었지(A Rush).


그렇다면 이들에게 식인은 정말 끊을 수 없는 유혹이 아니겠는가. 이들은 평범한 음식을 먹기도 한다. 하지만 식인이 이토록 쾌감을 준다면, 식인을 하지 못한다는 건 마치 한평생 섹스를 하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처럼 가혹한 게 아닐까.


냄새로 같은 종족을 감별해가며 둘은 여행을 계속한다. 이 와중에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 식인 남성 2명은 '뼈까지 모두 먹어치우는(Bones and All)' 식인이 얼마나 큰 만족을 주는지 떠벌린다. 급기야 위험을 느낀 매런과 리가 몰래 빠져나오려니 마치 마약을 향해 돌진하는 중독자들처럼 식인 남성이 뒤쫓아오기까지.



외로운 왕따들의 사랑



리와 매런은 점점 사랑에 빠진다. 자신이 혐오스러운 심정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를 보듬어 주며. 매런이 엄마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리는 기꺼이 함께 한다. 그러나 매런과 같은 종족임이 분명한 엄마는 알고 보니 아예 정신병원에 들어가 버린 지 오래다. 자신을 스스로 감옥에 가둔 것이다.


엄마가 있는 병실에서 매런은 또다시 공포에 휩싸인다. 설마 엄마가 자기 두 손을 먹어버린 건가. 손이 없어지기 전 딸에게 자필로 남긴 편지. 매런은 엄마 앞에서 그걸 읽는 중이다. 그런데 편지를 통해 매런에게 엄마가 전하려는 말은 “죽으라”는 거였다. 딸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엄마로서 전하고픈 잔인한 한 마디. 그 순간 엄마가 직접 딸을 먹어 삼키려는 걸 밀치고 가까스로 매런은 도망친다. 그녀를 사랑해주고 키워야 하는 양육자들이 이렇게 모두 딸을 버렸다.



혼자되기 싫은

몸부림



이 젊은 남녀는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보려 한다. 한 곳에 정착해서 직업도 갖고 이제야 안정을 누리려나 했지만 행복은 잠시였다. 예전에 매런이 엄마를 찾기 위한 여행 중 만났던 할아버지는 남다른 포식 본능과 후각을 바탕으로 그녀를 스토킹해왔던 거다. 이 노인도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평생 고립감을 느끼며 살아왔으니 이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었나 보다. 그녀를 덮치려는 늙은 포식자를 리는 온몸으로 막아선다. 살아남기 위해 단호히 늙은이의 생명을 끊어내는 두 남녀, 셋이 샌드위치처럼 몸덩이가 포개져 발버둥 치는 모습. 이건 원시 부족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함이다.


드디어 본즈 앤 올(Bones and All)이 시작된다. 닐은 심한 부상을 입었고 살아날 가망이 없다. 날 먹어달라고, 제발 그렇게 해달라고 매런에게 말한다. 이건 연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제 절정을 맛보는 순간. 문명인이랍시고 편견을 가진 채 이 광경을 바라보진 말자. 이건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동과는 다르다. 내겐 매건이 리의 생명을 ‘삼키는’ 모습으로 보였다. 살아있는 그대로 자기 안에 연인을 넣어 둘이 하나가 되려는 것처럼. 이건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자기 몸과 영혼에 간직하려는 의식이다. 마침내 리가 매린 안에 들어간다면 그가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먹는다는 건
일종의
스킨십이며 의식이다



누군가와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인간은 서로 친해질 수 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듯, 인간은 생애 초기에 구강기적 욕구를 채우고자 한다. 이건 일종의 생존 본능이다. 아기는 엄마의 젖꼭지를 물어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 엄마 육체 일부분을 아기가 흡수하는 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느끼는 쾌감이다. 나약한 피부를 어떤 조건도 없이 내어주고 이를 받아들일 때 두 생명 사이에는 교감이 싹튼다.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배우는 행동이 여기에서 시작되고, 아기는 비로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 영양분을 보충하는 걸 넘어서 ‘먹는다’는 건 정신적인 의미도 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때론 무엇을 먹느냐가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아즈텍 문명에서 포로를 인신 공양하던 풍습, 연쇄살인마가 쾌감을 높이기 위해 식인을 하는 사례 등은 식량이 풍부하지 않아 생존이 위협받던 시절에 식인을 눈감고 넘어갔던 경우와는 다르게 정신적 충족감을 주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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