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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r 18. 2023

우정이라는 껍데기 역할 놀이와 손절하다

이니셰린의 밴시(The Banshees of Inisherin,2022)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성실한 학생, 강한 아빠, 착한 아들 딸, 부지런한 직장인...


이 중 나는 어떤 사람에 가까울까? 친한 사람도 모르는 진짜 내 모습은 누구일까? 지금 남이 원하는 대로만 살고 있기에 내 마음이 지옥은 아닐까?


아일랜드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에 사는 노인이 동네 친구였던 청년과 절교를 선언한다. 갑자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사실 노인 입장에서 이유는 있었다. 다만 친구였던 이 청년이 이해를 못 한다는 게 문제였다.


자네가 그냥 싫어졌어.


사실 그냥 싫어진 건 아니었다. 이 친구가 너무 지루한 사람이라서였다. 결국 노인은 이 청년에게 이제부터라도 진실해지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마치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이웃끼리 서로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모를 수가 없는 손바닥 만한 곳, 매일매일이 똑같고 날마다 지겨운 얼굴들을 보며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안다고 착각하기 쉬운 곳. 이 고립된 섬에서 절교란 중대 사건이었다.


날 진짜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나에게 친구라는 게 있기는 할까? 영화는 이런 근본적인 물음을 다룬다. 마을 주민들끼리 아웅다웅 다투는 꼴을 보노라면 마치 옛날 TV프로그램 ❰전원일기❱가 아일랜드식 코믹 잔혹극으로 재탄생한 듯하다.




"자네란 사람은 지루해"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과묵한 노인 콜름. 그는 매일 동네 술집(Pub)까지 동행하고 하루 2시간씩 수다를 떠는 청년 파우릭을 떼어 놓으려 한다. 사실 이 노인네는 오랫동안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참았을 거다. 다만 이제야 정식으로 자기만의 예를 갖춰 말하는 셈이다. 콜름이 생각하는 최상의 예절은 '진심'이다.


이젠
인생에 지루함을 둘 자리가 없어.


절교를 선언한 다음날, 콜름은 파우릭에게 다시 찬찬히 속내를 털어놓는다. 어젠 내 말이 심했다고. 하지만 이제 남은 인생은 사색하고 작곡을 하며 보낼 생각이라고. 그러기에 너와 매일마다 쓸데없는 대화를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그동안 자네와 목적 없는 신변잡기식 수다를 떠는 시간이 너무나 지루했다고. 늦게나마 콜룸은 파우릭 앞에서 가식을 벗었다.




'좋은 친구'라는
역할 감옥에 갇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바이올린을 켜는 사색가이자 뮤지션 콜름이 건넨 말은 청년 파우릭에게 모욕감을 준다. 그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했다. 콜름뿐만 아니라 언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래야만 했다. 왜냐고? 그게 당연하니까. 이 절대 명제를 드디어 콜름이 보기 좋게 깨부순 거였다.


남에게 좋은 사람이 아니면 파우릭은 불안한 인간이었다. 더 비극인 건 자기가 불안한 걸 모른다는 사실. 같이 사는 여동생에게 그는 걱정을 팍팍 티 낸다. 찌질이 질문 3종 세트를 연발하며.


근데
사람들이 뒤에서 나 비웃지 않지?


혹시 이 노인네 말고도 누가 어디서 자신을 험담하는지 걱정되는 건가.


사람들이 나보고
멍청하다고 하진 않지?


자기 뒷담화를 걱정하는 동어 반복 질문. 아무리 여동생이 오빠를 달래도 소용없다.

도미닉이 제일 멍청하다고, 마을에서 백치미를 풍기는 청년 도미닉이 있다고 여동생은 파우릭을 계속 안심시킨다.


도미닉이 가장 멍청하고,
그다음은 누가 멍청하지?


이젠 줄 세우기 비교 질문. 도미닉 다음에 혹시 내가 멍텅구리로 보이면 어떻게 하나?


오빠는 좋은 사람이라고!


여동생은 화난 표정으로 호통을 친다. 말로는 칭찬하면서  표정은 버럭인가. 파우릭처럼 자기 기분을 모르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힘들게 한다. 자기 불안을 달래려고 상대방이 지치도록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대니 동생은 질려버렸다. 결국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해줘야 이놈의 줄줄이 소시지 질문 행렬 끝난다. 확인하고  확인하고. 이렇게 억지로 쥐어짠 대답이 과연 진실일까?




거절 불안이 많다면
"타인은 지옥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파우릭 같은 사람은 거절 불안(rejection anxiety)이 많다. 이들은 타인이 나를 받아줘야 안심하고, 이 안도감도 오래가지 못한다. 자존감이 낮기에 거절 불안을 가라앉히려고 누군가에게 기대려 한다. 잡념을 가라앉히려 질문을 퍼붓는 일방통행 대화를 반복하며,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을 붙잡고 온갖 고통을 배설하며.


그 누군가는 파우릭 같은 이에게 잡히면 꼼짝없이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끝없는 질문 폭격을 맞으며, 겉으론 웃는 가면을 쓰고.




카멜레온 같은 내 모습,
페르소나(Persona)


이미지 출처: Pixabay



사람은 원래 다중 인격이다. 내 안엔 수많은 내가 있다. 우리는 그때그때 카멜레온처럼 보호색을 적절히 바꾸어 주변에 나를 맞추며 산다. 본심(本心)을 감추고 나를 보호하려고, 굳이 상대에게 불편한 진실을 전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서, 갈등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게 너무 스트레스니까.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 말한 대로 우리는 모두 사회적 가면, 페르소나(Persona)를 갖고 있다. 페르소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연극 무대에서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이 단어는 사람(Person), 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었다. 배우가 연기를 잘하려면 실제 감정이 어떻든 배역에 맞게 잘 숨겨야 하지 않는가.


내가 누구인지, 뭘 하고 있는지 주변 사람이 웬만하면 다 아는 일상은 어찌 보면 역할 감옥이다. 주변에서 내게 기대하는 역할을 벗어나면 상대방이 실망할까 봐 두려운가. 그렇다면 내 행위 기준은 지금 내가 아니라 상대에게 있다.




잃어버린
'나' 다움을 되찾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파우릭은 콜름에게 계속 질척댄다. 계속 주변을 맴돌며 어떤 구실로든 말을 건네려 하니 콜름은 질렸다. 끝내 선전포고를 한다. 자네가 다시 내게 말을 걸 때마다 손가락을 한 개씩 잘라버리겠다고.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가장 소중한 연장을 도려내겠다고.


기도 안 차는 파우릭. 노인네가 틀림없이 우울하다고 여긴다.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야 친구였던 이에게 이렇게 으름장을 놓을 리 있나.


그런데 콜름은 자기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실천으로 납득시킬 수밖에. 결국 손가락 5개를 스스로 잘라버렸다. 처음 1개를 잘랐을 때도 파우릭은 콜름 말을 믿지 않았다. 자기 기분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기분을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결국 4개를 더 잘라내야만 했다. 그놈의 파우릭과 거리 두기를 하려면.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사람이 어쩜 그렇게 잔인해요?

동네 바보 도미닉은 질투에 사로잡힌 파우릭에게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우릭은 자기 기분을 모른다. 스스로 누군가를 질투한다는 걸.

타지에서 콜름과 합주 차 방문한 음대생에게 그는 거짓 전보를 전하고 섬에서 쫓아버린다. 누가 원래 내 자리였던 콜름 친구가 되는 걸 두고 볼 수 없으니까. 음대생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꾸며내다니.




역할이 내 전부가 되면
불행해진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이 난리 통에 여동생은 혼자 외롭다. 이곳에선 미래가 없기에 육지 쪽 일자리를 구해 새 출발을 하려 한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안 파우릭이 놀라서 여동생에게 하는 말.


그럼 내 밥은 누가 해주는데?


역할에 함몰된 사람이 전형적으로 대꾸하는 말이다. 누군가가 자기 역할을 갑자기 펑크내면 그 자체가 문제일 뿐, 당사자가 뭐가 힘든지는 물어볼 생각조차 못한다.


파우릭은 '나' 다운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매사에 호불호가 없는 사람, 자기 개성이 없는 사람, 모두가 무난하게 받아줄 만한 피상적인 잡담이라도 주고받는다면 서로 친하다고 착각하는 사람. 가족인 여동생이 파우릭에게 "오빠는 외로울 때가 없어?"라고 물어볼 때 그는 혀를 끌끌 찬다. 그 노인네처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느냐고.




페르소나 팽창 상태,
야누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파우릭은 혼자 있는 걸 못 견디는 인간이다. 친구와 절교하고 여동생도 섬을 떠나니 이제 자신에게 남은 건 당나귀 제니뿐이다. 유일한 친구 제니를 집 안까지 데리고 와서 쓰다듬고 말을 건넬 수 밖엔. 그는 고독이 고통스럽다. 역할이 사라지면 공허한 그 마음을 들여다봐야 하니까.


우리는 나도 모르게 역할 감옥에 빠지곤 한다. 좋은 친구로 남으려고 자동적으로 생일축하 DM, 새해 안부 문자를 날린 적은 없는가. 실제론 좋지도 않으면서 형식적인 친목 표시로 지인 인스타 계정에 '좋아요'를 누른 적은 없는가. 카톡 대화방을 탈출 못 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은 적은 없는가.

이런 역할 놀이를 오랫동안 반복하면 난 어느새 그 역할 자체가 된다. 타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서 자신을 잃은 상태, 페르소나팽창한 상태, 이걸 야누스라고 부른다.




지금 페르소나에
갇혀 있진 않은가요?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진짜 '나'를 잃고 타인이 기대하는 역할대로만 살면 불행해진다. 항상 칭찬받던 모범생이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회사에서 내내 우수 성과자로 살아오다 중년기 우울증을 겪거나, 알뜰살뜰 살림을 해오던 주부가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처럼, 이혼을 선언하는 아내에게  "지금 사는 게 뭐가 문제냐고, 돈 잘 벌고 건강하고 직장 있으면 되지 뭘 더 바래?"라고 되묻는 남편처럼.


가끔 사회적 가면 때문에 숨이 막히면 우린 이걸 벗어야 한다. 진심을 말하는 콜름처럼 호불호를 말해보자. 그렇게 나만의 개성을 가꾸어가자. 가면 속에 감춰진 진짜 '나'를 잃지 않으려면.


최근 이 영화를 봤을 땐 상영관에서 중년 남성들이 피식, 껄껄 웃는 걸 여러 번 들었다. 먹고사는 게 우선인 생활을 오래 견뎌오며 나이가 들어서일까. 오랫동안 끊기고, 끊어낸 관계들이 첩첩이 쌓여서일까. 나도 속이 시원했다.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3.18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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