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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r 15. 2023

꿈돌이(ENFP) 거장 영화감독을 키워낸 부모교육법

파벨만스(The Fabelmans, 2022)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시커먼 영화관이 무서워 못 들어가고 부들부들 떨던 꼬마.


훗날 이 아이가 할리우드 역사를 바꿔놓은 영화계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란 걸 모른다면 제목만으론 영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영화는 움직이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재생 가능한 꿈.


1952년 1월 10일. 부모님은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활동 사진이란 걸 말해준다. 이 꼬맹이는 무섭다. 꿈엔 무서운 게 나올 수도 있으니까. 근데 잊지 못하는 꿈, 그것도 재생 가능한 꿈이라니. 더 무서워진다. 사람들이 득실득실한 저 시꺼멓고 커다란 방에 들어가는 게.


잠시 후 아이는 새까만 스크린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기차를 본다. 저 멀리서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점점 커지는데 바로 내 앞까지 돌진하는 기차. 이건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본 충격 사건이었다.


엄마 아빠 말이 맞았다. 눈동자 하나 깜박 못하고 온몸이 딱딱하게 마비된 순간, 꼬마의 천직은 정해졌다. MBTI로 치면 ENFP. 무엇이든 체험해 보고(E: 외향형),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N: 직관형),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고(F: 감정형), 어떤 돌발 상황도 유연하게 헤쳐나가는(P: 인식형) 대표 직업. 영화라는 꿈을 만드는 사람.



#1. 꿈돌이 아들에게 작은 일탈을 허용한 엄마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영화관이란 데를 다녀온 후 아이는 악몽을 꾼다. 엄마 아빠 말대로였다. 처음 본 영화는 꿈에서 진짜로 반복 재생되었다. 도대체 왜 점점 더 기차가 커지며 내게 다가왔는지 알아야 했다. 때마침 아빠가 사주신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영화에서 본 대로 재연해 보자! 아이는 자기가 가진 장난감을 총동원했다. 이걸 카메라로 찍어서 연결해 보니 이제야 해답이 풀렸다. 이게 활동사진이구나. 꿈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구나.


바흐(Bach)를 좋아하는 엄마. 비록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못 되었지만 현실에서 환상을 꿈꾸는 예술가적 본능이 있어서일까. 자신을 빼다 박은 아들을 단숨에 이해했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확인하려는 거야. 머리로 상상하는 게 현실이 되는 지를.


딱 한 번만 충돌시켜 보자.


공학도인 아빠는 아들이 부숴버린 기차 장난감을 수리해 주고, 엄마는 그걸 또 부셔보자고 하고. 서로 너무나 달랐던 부모는 아이 교육법으로 충돌하지 않았다. 서로를 골칫덩이로 여기지 않았다.



#2. 불안을 견디는 연습을 함께 한 엄마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엄마는 영화관을 두려워했던 아들과는 달랐다. 신기한 거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직접 보고 확인해야 했다. 해보고 싶은 건 일단 저질러 보고 후회하더라도 말이다. 집 근처까지 토네이도가 휘몰아칠 기세여도 엄마는 자동차 뒷자리에 자녀들을 태우고 이 신기한 폭풍 가까이 돌진한다.


아들이 떨면서 엄마에게 이래도 괜찮냐고 물어보아도 엄마는 이미 정신이 팔렸다. 이 구경거리를 절대 놓칠 수 없으니까.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과 같이 보고 싶으니까. 아들도 어느덧 불안을 잊었다. 이 환상적인 폭풍우에 빠져들며 무서움은 어느새 사라졌다.



#3. 아빠는 "모든 걸 캐묻는" 궁금증 해결자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컴퓨터 전문가인 아빠. 작은 회사에서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나가며 어느덧 IBM까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사람. 그는 온갖 기계들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 아들에게 기차 장난감을 사준 것도 부업으로 TV 수리를 해서 번 돈이었다. 가족 캠핑을 할 때도 모닥불 냄비 걸이가 왜 삼각뿔 모양에서 무너지지 않고 안정적인지를 자녀들에게 신나게 설명한다. 아들인 스필버그가 카메라 작동 원리를 궁금해한 것도,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도 아빠 덕이었다.


카메라가 장난감인 아들, 가족 일상을 브이로그(Vlog)처럼 무턱대고 찍어대던 아들, 휴지로 동생들 몸을 휘감아 미이라 놀이를 해대는 말썽쟁이 아들, 온갖 가재도구를 어지럽히며 동생들과 치과 놀이를 하는 장난꾸러기 아들.


아빠는 이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외할머니를 떠나보낸 후 아내가 시름에 잠겼을 때 아빠는 아들에게 정식으로 영상제작을 의뢰한다. 엄마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아들이 뭔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존중하며 작은 직업인으로 대해준 아빠. 그는 스필버그의 VIP 고객이었다.



#4. 우울에도 기발한 도전장을 내민 엄마


한동안 계속된 우울, 그 축 처진 기분에서 탈출하려는 엄마만의 노력은 엉뚱하고 기발했다. 원숭이를 새로운 가족으로 모셔오자! 어느 날 남편이 퇴근하자 갑자기 머리 위로 원숭이가 달려든다. 온갖 잡동사니를 부시며 여기가 정글인 양 온 집안을 휘졌는다.


누가 자기 우울증을 치료한다고 집에 원숭이를 들이겠는가. 누가 이 사단을 보고도 화내지 않고 아내를 한결같이 사랑하겠는가. 훗날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에서 수많은 동물들이 배우들과 모험을 같이 한 건 스필버그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의 엉뚱-기발-유전자를 이어받았으니까.

ENFP였던 소년과 엄마는 모두 독특한 아이디어(N)를 시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험가였다.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뭔가를 해야만 살 맛이 나기에.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걸, "깜짝 놀랐지?!(Surprise)"라고 말할 수 있는 걸 해보기. 바로 ENFP만의 우울 탈출법이었다.



#5. 동종업계 종사자, 삼촌 할아버지의 멘토링


서커스, 넓게 보면 엔터테인먼트계 종사자인 삼촌 할아버지. 사춘기에 접어든 스필버그에게 그는 예술가가 뭔지를 알려준다.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면 우울해진다는 걸.


우린 약쟁이야.
예술은 우리의 마약이고.


소년은 대학생이 된 후 공황 증상에 시달린다. 계속 방송계, 영화계 문을 두드리지만 오랫동안 좋은 소식은 없었다. 호흡 곤란을 겪으며 아빠에게 고통을 호소하지만 아빠는 아들을 믿는다. 자신과 비슷하기 때문에 성공하던 실패하던 내 아들은 최선을 다할 거란 걸.


스티븐 스필버그, 거장의 예술 유전자는 특별한 게 아니었다.


그는 엉뚱한 시행착오가 일상이었던 엄마의 아들이었고, 자신과 다른 아내와 아들을 존중했던 아빠의 아들이었다. 부모의 이혼, 사춘기 시절 유대인으로서 왕따와 차별을 겪은 소년이기도 했다. 슬럼프에 빠졌을 땐 한때 카메라를 팔고 영화를 그만두려 했던 방랑자이기도 했다. 그에게 이 모든 시련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 건 영화 찍기였다. 그만두면 삶에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고 찍으면 결국 뭔가 좋은 일이 생겼으니까.


불안에 허덕이는 무명이었지만 좌충우돌을 견뎠던 영화 유망주. 그는 현실에서 꿈을 보고 싶었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보통 사람이었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3.15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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