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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Jun 19. 2023

우리가 꿈꾸는 낭만 리더는 헤라클레스일까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2023)을 보고. #2.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3가 지난 주말에 종영했다. 외상센터를 건립하며 김사부와 모난돌들이 몸담은 조직은 커졌고, 원조 수제자인 시즌 1 등장인물인 강동주(유연석 역)까지 합류하며 여러 인물들이 좌충우돌하며 다양한 재해를 극복하는 에피소드들이 더해졌다. 비록 지난 두 시즌만큼 시청률이 높진 않았으나 여전히 시즌 3 또한 충성도가 높은 시청자들이 호응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김사부(한석규 역)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물론 다른 매력적인 배역들도 작품이 인기를 얻는데 한몫했지만 이 드라마가 풍기는 매력은 오롯이 리더 김사부에서 출발했다.

 

엘리트 의사임에도 시골 병원에 기꺼이 내려올 만큼 가진 걸 내려올 수 있는 사람, 전지전능한 자질을 가졌지만 한없는 겸손함을 가진 사람,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갈구하는 리더란 이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결핍을 환상으로나마 채워주는 덕분에 이 드라마는 인기가도를 달리며 시즌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김사부가 내뱉는 호통을 들으며 속이 시원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천재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출세가도를 달렸음에도 모든 걸 내려놓았던 의사 김사부. 지도자로서 이상적인 인성과 자질을 보유한 그가 바라는 낭만 가득한 세상을 시청자도 잠시나마 꿈꾸었다. 드라마에서 현실에 없는 리더를 영접하는 대리만족감은 시즌 3까지 달려올 만큼 대단하다. 그가 시골 돌담병원에서 고난을 자처하며 모난 돌 제자들과 하나하나 난제들을 풀어나갔던 모습은 마치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을 치르는 모습과도 비슷했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힘과 영웅의 신, 헤라클레스. 그 또한 힘을 가졌음에도 업보를 씻기 위해 고난을 자처한 남자다. 그리스 신화엔 다양한 능력을 지닌 신들이 존재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압도적인 힘에 있어선 단연 돋보이는 사나이다.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 헤라의 미움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 제우스가 외도를 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어머니인 여신 헤라의 질투를 받다가 급기야는 자기 아내와 자식들까지 죽이고 만다. 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그 유명한 12가지 과업을 치른다.


무적 헤라클레스가 자기 죄를 씻기 위한 12가지 과업을 치르는 모습은 마치 김사부가 영혼을 갈아 넣으며 환자에게 헌신하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시즌 1에서 자신을 따르던 제자 장현주를 대리수술로 인해 잃고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던 닥터 부용주는 돌담병원으로 내려온다. 그는 의사로서 제자를 아꼈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돌보지 못한 점을 그는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여긴다. 그는 돌담에선 닥터 김사부로 살아가며 "살린다, 무조건 살린다"는 사명을 되새김질하며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악전고투를 거듭하며 한계를 넘는 수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과거는 되돌릴 수 없는 법. 아무리 현재에 최선을 다해도 죽었던 제자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다. 과거를 되돌릴 순 없기에 헤라클레스도, 김사부도 힘을 가진 자로서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원죄의식에서 완전히 해방되긴 불가능하다. 김사부가 느낀 이 도덕적 책임감이 바로 그가 사명감을 지탱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미지 출처: SBS 홈페이지


시청자들은 마치 의료계에 나타난 헤라클레스를 바라보듯이 김사부에 열광했다. 무너진 건물에 매몰된 제자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생명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은 우리가 원하던 리더 그 자체였다. 신화에서 슈퍼맨 같은 이미지로 자리매김한 헤라클레스가 에우리스테우스 밑에서 고된 노역을 자처하며 인생 난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처럼, 김사부는 자기 인생에 놓인 난제를 이번 시즌에서도 묵묵히 해결해 나갔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당면한 과업들은 그야말로 엄청난 능력이나 괴로움을 견딜만한 인내심이 있어야만 달성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머리 아홉 달린 거대한 물뱀 히드라 죽이기처럼 괴력이 필요한 과제도 있었지만, 수백 마리 가축이 수십 년 동안 저질러 놓은 오물 청소하기처럼 모두가 혐오하는 과제도 있었다. 인간이라면 사실 외면하고픈 고통스러운 과업들을 달성하고야 마는 헤라클레스 신화는 고난을 극복하는 태도 면에서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이미지 출처: SBS 홈페이지


고된 인생 속에서 우리는 고난을 피하려 한다.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있다면 되도록 피하고 싶은 법이다. 가급적 쉽게 살아가고, 많은 이득을 취하려 발버둥 치는 게 보통 사람이 사는 모습이다. 이런 현실에서 내가 체감하는 한계에 무너질 때마다 우리는 영웅을 갈망한다. 불가능한 난제도 해낼 수 있다고 외치는 영웅, 슈퍼맨, 헤라클레스와 같은 존재가 나타나기를 꿈꾼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영웅에 목마른 사람들의 기대를 시즌 3에서는 충분히 채워주진 못했다. 시즌 1, 2에 비해 젊은 배역들이 늘어나면서 그놈의 로맨스까지 일일이 다루느라 김사부라는 인물 비중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이 드라마에선 김사부라는 원조 리더가 풍기는 '낭만'이 있어야 고유의 매력이 나타나건만, 그는 이번 시즌 내내 마치 병원이 돌아가는 상황을 관망하는 어른 해설자 역할을 한다. 또한 필요한 타이밍에 적절한 명언을 구사하는 모습은 물론 주옥같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식상한 구도로 되풀이되다 보니 지루할 때도 있었다. 시즌 2까지 배우 한석규가 감칠맛 나게 유머와 똘끼를 발휘하며 장면을 장악하던 모습은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엔 부족했다. 패기 넘치는 모난 돌 자체였던 김사부라는 캐릭터가 이번 시즌에선 무너진 느낌이다. 대신 미모를 자랑하는 젊은 연기자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부여된 듯하다.


마지막 회 말미에 시즌 4를 대비한 새로운 떡밥을 뿌리는 건지는 모르지만 시즌 1에서 활약했던 닥터 윤서정이 귀환하는 장면이 나왔다. 과거 매력적인 배역들이 풍부한 에피소드에 기여하는 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무엇보다도 김사부가 괴력을 발휘하여 현실 밑바닥에서 기적을 일궈내길 바란다. 그러니 이 드라마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결국 리더 김사부에서 나온다. 오명심 간호사가 “김사부라는 중력이 있기에 돌담병원에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라고 한 말처럼.





 글은 뉴스  '헤드라잇' [미디어] 2023.06.19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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