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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May 08. 2023

내려올 때를 스스로 아는 리더의 품격

미디어관심 -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3(2023)을 보고. #1.

(4화까지 보고 썼던 글입니다.)


작은 조직은 규모가 커질수록 일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집단 크기가 작을 땐 구성원 간 생생한 교류가 가능하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일하는지. 김사부 말처럼 업(業)의 존재 이유를 이해하는 소수는 가감 없이 소통하며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인력이 된다. 어떤 집단, 기업, 조직이든 출발점부터 자기 소명이 뭔지를 아는 몇몇 사람들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러나 일의 규모가 커지면 조직의 DNA를 아는 이 몇몇에게만 언제까지나 의지할 순 없다.


이미지 출처: SBS 홈페이지


시즌 2까지 돌담병원은 오로지 김사부가 멱살 잡고 이끌어가는 곳이었다. 리더 김사부는 민들레가 바람에 씨앗을 퍼뜨리듯 의료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자들에게 몸소 전파했다. '낭만'이라는 DNA를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모두 결핍이 있었다. 흙수저 강동주, 미친 고래 윤서정, 내부비리 고발자 서우진, 수술실 울렁증 차은재. 이들은 각자 고난을 극복하고 돌담병원을 말 그대로 든든하게 받치는 '돌담' 역할을 해낸다. 그러나 시즌 2 막바지 때 김사부가 버스 사고로 쓰러지자 병원 직원들은 모두 충격에 휩싸였다.


작은 조직에선 구성원을 이끄는 리더 한 명이 드러누우면 위기에 쉽게 취약해진다. 기업도, 기타 조직도 마찬가지다. 물론 드라마이니 시즌 2도 결국 헤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러나 외상센터라는 큰 조직을 키워나가려면 어떤 리더가 필요할까? 아마 이게 현실이라면 자신이 쓰러졌을 땐 조직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리더는 직감할 거다. 이젠 새로운 인력을 영입하고 비전을 제시할 정치력, 집단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만한 행정력 등 큰 조직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갖춘 인물이 필요하다는 걸.



이미지 출처: Pixabay.com



그래서 시즌 3 초반부터 김사부는 현명한 결단력을 발휘한다. 오명심 수간호사 말처럼, 역량이 뛰어난 인물일수록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게 어렵다. 그러나 김사부는 이마저도 잘하는 인격자로 그려지나 보다. 물론 시청자 입장에선 그냥 김사부가 쭉 외상센터를 맡아주었으면 싶다. 그러나 그는 병원이 성장의 기로에 놓인 시점에서 냉정하게 자신의 강·약점을 판단한다. 그리고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고 차진만 교수(이경영 역)를 영입하는데 동의한다. 그리고 질문한다. 그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지, 소위 말이 안 되는 현실적 한계를 특유의 자질로 극복해 낼 수 있는지를.


눈부신 성취를 거듭할수록 리더는 소위 자뻑이 되기 쉽다. 성공에 도취될수록 자기애는 점점 커지며 히틀러 같은 야망덩어리 권력자가 되어 버린다. 이런 나르시시스트는 세련된 화법으로 허풍을 떠는 데도 익숙해진다. 소위 사교적 거짓말이다. 관심과 인정을 계속 받으려고 자기가 모든 걸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버릇인 거다.


이런 걸 심리학에선 과다 주장(overclaiming)이라고 한다. "아, 그거 내가 알고 있는 거야." 식의 말이다. 여러 직업인들 중 특히 정치인은 겸손한 모습보단 이런 전지전능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선거철엔 유권자들이 이런 인물에 대해 환상을 갖기도 쉽다. 특히 언론까지 이런 정치인의 행적을 포장해 준다면 선거 운동엔 금상첨화다.


불행히도 작은 땅에서만 놀다가 큰 벌판에선 어찌할 바 모르는 무능력한 리더가 권력 맛에 도취되면 구성원들은 괴로워진다. 지도자의 말은 천금과도 같다. 한 단어 한 단어가 갖는 무게감을 모르는 리더는 구성원들에겐 대혼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함과 변화의 필요를 인정하는 용기. 이런 자질을 발휘하는 리더는 현실에서 극소수다. 김사부는 분명 한때는 대형병원에서 촉망받던 인재였건만, 지금도 여러모로 넘치는 자질을 갖추었건만, 그는 리더로서 자신을 더더욱 엄격히 조망한다.


이미지 출처: SBS 홈페이지


돌담병원 상황이 현실이라고 생각해 보자. 김사부는 모든 과거의 명성을 다 내려놓고 스스로 초야에 묻혔다. 그리고 이 외진 병원에 제자들을 한 명 한 명 정착시키느라 시즌 1부터 그들과 감정싸움을 꽤 치렀다. 한 마디로 외상센터라는 거대 조직에 채워 넣을 다양한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해 세련된 정치력을 발휘하기란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사부는 감정 표현이 뒤끝 없이 강직하다. 누구처럼 외국 정상에게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온 국민을 한글 듣기 평가 빵점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말 바꾸기도 안 한다. 한 마디로 언행이 일치하는, 말한 건 꼭 지키는 투명한 사람이다. 다만 이런 리더는 아픈 말도 있는 그대로 퍼붓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 밖엔 없다.


어쩌면 드라마 작가님은 김사부라는 인물이 한 인간으로서 늙어가며 몸소 행할 수 있는 헌신의 한계를 체감할지도 모른다. 리더라고 언제까지나 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가며 일할 순 없지 않은가. 그는 남 눈치 안 보고 육두문자를 마음대로 쓸 정도로 권위, 체면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기에 자신처럼 거친 리더십보단 좀 더 노련한 영향력을 발휘할 만한 리더가 필요하다고 여겼을지 모른다. 또한 김사부의 제자들도 모두 헌신 덩어리들이다. 의료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워라밸(Work-Life Balance)까지 희생하며 실천하는 건 좋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일하면 머지않아 녹초가 되어 버린다.


앞으로 이 드라마는 새로운 외부 리더라는 빌런과 김사부 측과의 대립을 다룰 듯하다. 다만 부디 선악 구도식 단편적 대립으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단이 성장을 거듭하며 새롭게 수혈받은 인력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난제를 극복하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주길 기대하며.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미디어관심_Media Psycho] 2023.05.07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참고도서_『거짓말쟁이의 뇌를 해부한다면: 허언증부터 가짜 뉴스까지 거짓말로 읽는 심리학』(이남석 지음, 다른, 2020)


더 많은 글을 보시려면 ‘헤드라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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