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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광선 Sep 02. 2023

정치적 이념 놀이 중에 핵과 방사능 위험은 현실이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

(영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역사상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스탠리 큐브릭. 이 사람은 방사능 위험에 손쓸 여력도 없는 현 한국 사회를 예견이라도 한 걸까. 그건 분명 아닐 텐데 영화 내용은 마치 노스트라다무스 예언처럼 섬뜩하기만 하다.


이 감독이 살았던 시대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극명하게 대립했던 냉전 시기였다. 이 영화 내용을 살펴보려면 감독 의도대로 원제 그대로를 읽는 게 더 쉽다. 정식 제목은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내가 어떻게 걱정을 떨치고 (핵) 폭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이다. 상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핵폭탄을 사랑까지 하긴 어려운 법. 제목 자체가 매우 반어적이다.


극우주의자가 군림하는 군대와 무능한 정부는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우왕좌왕할까? 일반 시민이 상상하기 어려운 시나리오가 이 영화에서는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공산주의자를 혐오하는 장군 잭 리퍼, 그는 공산주의자를 박멸하기 위해 러시아를 향해 핵공격을 감행하려 한다. 이 작전은 이른바 무시무시한 '폭격대 공격작전 R'이다. 그는 전화로 부하인 맨드레이크 대령에게 작전 R을 지시한다.



설마,
핵공격이 실전이라고?


독재 공산주의의
음모를 막아야 해!


그런데 군 상관의 전화를 받는 대령 꼴이 가관이다. 윗사람 말에도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않는다. 핵무기 사용을 뜻하는 작전 R을 설마 하라고? 실전 명령일리가 없다는 표정이다.


작전 R을 전달받은 비행기 조종사들은 또 어떠한가. 비행 중 플레이보이(Playboy) 잡지를 읽거나 잡담을 나누는 모양새가 영 미덥잖다. 작전을 전달하는 상관은 다시금 조종사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이번 임무를 마치면 당신들 모두에게 표창장을 줄 거라고, 국민 모두가 당신들만을 믿고 있다고.


다들 군대 제복을 입고 있을 뿐, 제대로 자기 일을 하는 것 같은 군인은 보이지 않는다. 공군 고위 장교인 버크 터지슨 장군. 이 위중한 국가 비상 상황에 그는 비키니를 입은 여비서와 밀회를 즐기고 있다. 가까스로 대통령이 이 상황을 파악한 후 정부 고위층은 긴급 안보회의를 시작한다.



언론을
틀어막아라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핵공격 작전 R을 시작할 때 잭 리퍼 장군은 맨 먼저 군인들이 갖고 있는 라디오를 뺏도록 맨드레이크 대령에게 지시했다. 그가 이런 명령을 내린 공식적인 이유는 군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즉, 통신 장비를 가지고 장병들이 전쟁에 해가 되는 사적 연락망을 활용하는 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잭 리퍼 장군의 신념은 확고하다. 공산주의자들은 바퀴벌레 같은 암적인 존재이니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하도록 싹을 잘라내야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핵공격 명령을 취소할 수 있는 암호를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부하 맨드레이크 대령을 자기 집무실에 가두어 버린다.



확증편향이 강한 리더는
시한폭탄이다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리퍼 장군은 소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강한 리더이다. " 눈에 안경"이란 말처럼 사람은 본래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엄격히 말하면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확증 편향이 있는 셈이다.


어떤 조직에서든 잭 리퍼 장군처럼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람은 위험하다. 리더가 복잡한 사안을 다루어야 하는 상황에서 여러 관점을 심사숙고할 만한 능력이 없다면 그 조직은 언제 붕괴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잭 리퍼처럼 이렇게 단순한 판단을 선호하는 사람은 명쾌한 결론과 빠른 성과를 선호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사안을 '옳고 그름' 식 흑백 논리로 단정해 버린다. 이렇게 사고가 경직되면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과는 소통이 불가능하다.


완고한 극우주의자 잭 리퍼, 그가 어떤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던 그건 개인의 자유다. 다만 영화에서는 대통령이 객관적인 통찰력을 갖도록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정부 관료가 없었다. 잭 리퍼처럼 호전적인 버크 터지슨 장군은 한 술 더 떠서 대통령에게 더 과감한 조치를 제안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인명 피해가 크더라도 러시아를 무찌르는 쪽으로 생각해 보자는 주장에 대통령은 말문이 막힌다. 그는 전쟁 옹호주의자 버크 장군에게 반문한다.


나보고
히틀러와 같은 존재가
되라고?



의사소통 단절이
부른 핵 참사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미 대통령은 러시아 대사를 불러서 상대편 지도자 드미트리와 연락을 시도한다. 그런데 러시아 쪽 리더도 행실이 가관이다. 드미트리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 미합중국 대통령의 전화를 받는다.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꼴을 보면 이게 소위 양국 정상 간 대화인 건지 믿기지 않는다. 미 대통령은 이 사단을 만든 장본인, 잭 리퍼 장군에게 연락을 취할 방도를 찾아내라고 관료들을 닦달한다. 하지만 작전 R 특성상 잭 리퍼는 이미 미 정부와 연락을 끊어버린 상태다.


그런데 잭 리퍼 장군은 뒤늦게 전쟁에 대한 공포를 실감한다. 자기 집무실 근처에서 벌어진 국지전에 참전하며 그는 부하인 맨드레이크 대령에게 전쟁 포로로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다. 이런 상상 속에서 잭 리퍼는 스스로 갑자기 공포에 질린 채 권총 자살을 해버린다. 전쟁을 부르짖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공포를 견디며 실전에 참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법.


핵공격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간다. 맨드레이크 대령이 기지를 발휘하여 작전 수행 중인 전투기들에게 명령 중지 암호를 전달했건만 통신 장비가 고장 난 전투기 1대는 끝까지 말썽이다. 이 마지막 전투기는 끝내 명령을 수행하고야 만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나는 핵폭발 장면을 보노라면 이게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될까 두려워진다.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지배층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과학자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국가 안보 회의에 참석한 그에게 대통령은 이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핵폭발 후 생기는 방사능 낙진은 온 지구를 100년쯤 에워쌀 테지만 그는 그래도 살 길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땅을 깊숙이 파서 들어가는 거다. 한 몇 십만 명쯤은 땅 속에 수용할 수 있을 거라고 닥터는 예측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인구 중 누구를 선별하여 땅 속에 수용할 것인가? 닥터는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지능이 높고 건강 상태도 좋으며 쓸모가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말이다. 물론 정부 고위 관료들은 모두 선별 대상에 0순위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닥터는 말한다. 사람이란 결국 살아남게 되어 있으니 이렇게 소위 품질 좋은 인간들이 번식력을 발휘하면 금세 다시 인구는 늘 거라고 말한다. 이런 예언을 하면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계속 팔이 불편한 듯 휠체어에 앉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팔을 붙잡지 못하니 마치 히틀러에게 인사하는 동작처럼 한 팔이 대각선 위로 뻗어버린다.



지금 한국은
각자도생 시대


이미지 출처: Daum 영화


방사능 오염수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모른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 이태원 참사부터 시작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들은 줄줄이 소시지처럼 이어지고 있다. 이젠 이 땅에 그 어떤 충격적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그리 놀라지 않는 '재난 불감증'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2023년 8월 15일 광복절에 대통령이 했던 연설을 살펴보면 누가 전체주의적이고 흑백논리적 사고를 가졌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이념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자기네 표밭 굳히기, 언론 장악을 시도하는 중이다. 지금 정부 고위층이나 정치 세력은 마치 놀이처럼 호전적인 언행들을 내뱉는 중인가.


어느 사회든 무능한 집권층은 평소 권력 맛을 즐기며 이런 정치 놀이를 즐기다가 실제로 재난을 겪으면 태도가 급변한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을 쓰며 자기네 잘못은 아니라며 내빼고 분노의 화살을 엄한 데로 돌릴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지금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이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 이 글은 뉴스 앱 '헤드라잇' [영화관심_Kino Psycho] 2023.09.02 콘텐츠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m.oheadline.com/articles/nNoQa9_wFQU5wRFtd-5rL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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