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한 번에 다 시키면 안 되는 이유

AI는 왜 지시를 한번에 다 이해하지 못할까?

by 어팀공

처음엔 나도 그랬다

기획서를 써야 했다.

배경, 목적, 타깃, 경쟁사 분석, 핵심 기능 정의, 일정까지.

머릿속에 있는 걸 전부 쏟아내서 AI한테 한 번에 던졌다.


"이거 기반으로 기획서 작성해줘."


결과물은 왔다.

분량도 꽤 됐다.


근데 읽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목적이랑 기능이 따로 놀았다. 경쟁사 분석은 두루뭉술했다. 일정은 그냥 적당히 채워져 있었다.


전체가 연결된 기획서가 아니라, 각 항목을 따로따로 채워넣은 것 같은 느낌.

틀린 말은 없는데, 쓸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AI가 나쁜 게 아니다

처음엔 "AI가 기획은 못 하는구나" 싶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던진 거였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얘기다.

신입한테 "이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봐" 하면 어떻게 될까.

다 알아서 해오긴 하는데, 어딘가 빠져 있고, 어딘가는 과하고, 전체 맥락이 어긋난다.


AI도 똑같다.

복잡한 작업을 한꺼번에 받으면, AI는 각 항목을 독립적으로 처리하려 한다.

앞 내용이 뒤 내용에 영향을 줘야 하는 구조인데, 그걸 스스로 설계하면서 동시에 내용도 채우려다 보니 둘 다 어중간해진다.


문제는 AI의 능력이 아니라, 내가 건네는 방식이었다.


왜 한 번에 다 주면 안 되는가

"요즘 AI는 컨텍스트 윈도우가 엄청 길어졌잖아요. 그럼 다 한 번에 넣어도 되는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최신 모델들은 수십만 토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근데 연구에 따르면 입력이 길어질수록 모델의 주의력이 고르게 유지되지 않는다.

앞부분과 뒷부분에 집중이 몰리고, 중간 내용은 상대적으로 흐릿해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복잡한 작업은 '판단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기획서를 쓴다면 :

배경을 정의해야 목적이 선명해지고

목적이 선명해야 타깃을 제대로 좁힐 수 있고

타깃이 좁혀져야 기능 우선순위가 잡히고

기능 우선순위가 잡혀야 일정이 의미 있어진다


이 흐름이 '앞 단계의 판단이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되는 구조'다.

한꺼번에 던지면 AI는 이 연쇄를 직접 설계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각 내용도 채워야 한다. 판단과 생성을 동시에 하는 거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처음 만나는 복잡한 프로젝트를 첫날부터 완성형으로 내놓으라고 하면 누구든 버거워한다.

먼저 큰 그림을 잡고, 하나씩 구체화해 나가는 게 맞다.


AI한테도 그게 필요하다.


분할 프롬프트 전략이란

거창한 이름이지만, 단순하다.

하나의 큰 작업을 의미 있는 단위로 쪼개서, 단계적으로 지시하는 것.


예를 들어 앞서 말한 기획서라면 이렇게 나눌 수 있다.

1단계 : "이 서비스의 배경과 문제 상황을 3~5문장으로 정리해줘."
2단계 : (1단계 결과 확인 후) "이 배경을 바탕으로, 이 기획의 핵심 목적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줘."
3단계 : (2단계 결과 확인 후) "이 목적에 맞는 주요 타깃 사용자를 구체적으로 서술해줘."
4단계 : 이하 동일


각 단계에서 결과를 내가 직접 확인하고, 방향이 맞으면 다음 단계로 넘긴다.

이상하면 그 단계에서 수정한다.


이렇게 하면 세 가지가 달라진다.


첫째, AI가 각 단계에 집중할 수 있다.

한 번에 10가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된다.

판단의 부하가 줄어드니 결과의 밀도가 올라간다.


둘째, 내가 중간중간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끝에 가서 "이거 다시"를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이 방향 맞아, 계속"을 반복한다.

수정 비용이 확 줄어든다.

엉뚱한 방향으로 한참 달려가다가 되돌아오는 일이 없어진다.


셋째, 앞 단계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된다.

AI는 직전 대화를 기억한다.

1단계에서 잘 잡아놓은 배경이 2단계 목적 정의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

내가 복붙하지 않아도 맥락이 이어진다.


실제로 이렇게 했더니

얼마 전 신규 기능 제안서를 써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 내용으로 기능 제안서 써줘"라고 한 번에 던졌을 거다.


이번엔 다르게 했다.

일단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 앱의 현재 사용자 이탈 패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걸 정리해줄게.
이걸 바탕으로 이탈의 핵심 원인을 2~3가지로 추려서 말해줘."


AI가 정리한 원인을 보고, 내가 "이 중 두 번째가 핵심이야"라고 확정했다.

그 다음엔 이렇게 넘겼다.

"이 원인을 해결하는 기능 방향을 3가지 제안해줘. 각 방향마다 기대 효과도 한 줄씩."


세 가지 방향 중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 이어서 :

"이 방향으로 기능을 구체화해줘. UX 흐름 중심으로."


이런 식으로 6단계에 걸쳐서 제안서를 완성했다.

걸린 시간은 한 번에 던지는 것보다 더 걸렸냐고?


아니다. 오히려 더 빨랐다.


한 번에 던지면 결과물 받고, 읽고, 이상한 부분 찾고, 다시 던지고, 또 읽고... 이 반복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방향이 잡혀서 오는 결과물이 바로 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쪼갤지가 관건이다

분할 프롬프트의 핵심은 '어디서 나눌 것인가'다.

아무렇게나 잘라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분기점은 "여기서 내가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AI가 여러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고, 내가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지점.


그게 단계를 나누는 기준이다.

반대로 기계적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하나의 흐름에서 판단 없이 이어지는 내용은 굳이 나누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인터뷰 질문지를 만든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터뷰 목적을 먼저 잡아줘" → 확인 → "이 목적에 맞는 질문 초안 만들어줘" → 검토 →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5개 골라줘"


인터뷰 목적이 잡혀야 질문 방향이 잡히고, 질문 초안이 있어야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 연쇄에서 '내가 판단해야 하는 지점'이 두 번 있다.

거기에 단계를 놓으면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몇 번 해보면 감이 잡힌다.


자주 하는 실수 하나

단계를 쪼갰는데도 결과가 별로인 경우가 있다.


가장 흔한 이유가 이거다.

각 단계의 지시가 여전히 너무 넓다.

"1단계: 배경 정리해줘"가 아니라, "1단계: 이 서비스의 출시 배경을 사용자 불편 중심으로 3문장 이내로 정리해줘"가 되어야 한다.


단계를 나눴어도 그 단계 안에서의 지시가 여전히 열려 있으면, AI는 또 스스로 범위를 정하고 알아서 채운다.


쪼개는 것과, 각 단계의 지시를 명확히 하는 것, 둘 다 필요하다.

분할은 '구조'고, 명확한 지시는 '재료'다.

둘 다 갖춰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정리하면

AI한테 한 번에 다 맡기는 건, 설계도도 없이 집을 다 지어오라는 것과 같다.

중간에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으면, AI는 나름의 설계로 집을 짓는다.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닐 수 있다.


분할 프롬프트는 그 설계를 내가 함께 해나가는 방식이다.

한 단계씩 확인하고, 방향을 잡고, 재료를 넘긴다.


AI는 각 단계에 집중한다.

나는 전체 방향을 잡는다.

역할이 분리된다.


이게 AI와 함께 일하는 방식 중에서도 기획자한테 가장 잘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기획 자체가 원래 이런 구조니까.

큰 그림을 잘게 쪼개고, 단계별로 구체화하고, 중간마다 방향을 점검하는 것.


내일 당장 써먹는다면 : 지금 AI한테 한 번에 던지려던 작업, 먼저 "내가 중간에 한 번이라도 확인해야 하는 지점이 있나?"를 체크해보세요.

있다면 거기서 단계를 나눠보세요.

그것만으로 결과물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다음 글에서는 잘 된 AI 대화를 그냥 닫아버리면 얼마나 손해인지, 그걸 어떻게 자산으로 쌓을 수 있는지 얘기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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