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AI가 유용하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해야 할 때

by 어팀공

똑같은 기획안인데, 팀장한테 보고할 때와 유관 부서에 협조 요청할 때, 말이 달라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안다는 것과 매번 실행하는 것 사이의 거리다.


월요일 아침, 프로젝트 킥오프 메일을 보내야 한다.


받는 사람이 다섯 명이다.

팀장, 개발 리드,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 그리고 외부 파트너. 이 다섯 명한테 같은 내용을 같은 문장으로 보내면 어떻게 될까.


팀장은 "그래서 일정이 어떻게 되는데?"라고 묻고, 개발 리드는 "스펙이 어디 있어?"라고 묻고, 마케팅 담당자는 "이거 우리 쪽 리소스 얼마나 필요한 거야?"라고 묻는다.


결국 하나의 메일이 다섯 개의 추가 질문을 낳는다.


왜 같은 내용을 다르게 써야 하는지 다들 '아는데' 안 하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귀찮아서다.


기획안 하나 쓰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데, 그걸 대상별로 각색까지 하려면 시간이 두세 배로 든다.

그래서 대부분은 타협한다. "핵심만 쓰면 알아서 이해하겠지." 그렇게 CC를 넣고 한 번에 보낸다.


그런데 기획자 일을 하다 보면, 이 '타협'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는지 체감하게 된다.


이해관계자가 세 명만 넘어가도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누군가는 맥락을 몰라서 엉뚱한 질문을 하고, 누군가는 자기한테 해당되는 내용인지 몰라서 무시하고, 누군가는 뉘앙스를 오해해서 방어적으로 나온다.


기획자가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건, 사실 이 각색 능력에서 갈린다.


똑같은 내용을 상대방의 언어로 바꿔서 전달하는 것.

이게 기획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데, 현실에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AI가 진짜 쓸모 있어진다.


인사이트 1 : AI는 '번역기'가 아니라 '각색가'로 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번역기처럼 쓴다. 한국어를 영어로 바꾸듯, 딱딱한 문장을 부드럽게 바꿔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요한 건 번역이 아니라 각색이다.


번역은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거다.

각색은 같은 내용을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게 재구성하는 거다.


이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실제로 했던 프로젝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규 서비스 런칭 기획안을 정리한 뒤, 네 곳에 공유해야 했다.

경영진, 개발팀, 마케팅팀, 그리고 외부 협력사. 내용은 하나인데 각각이 궁금해하는 포인트가 전부 달랐다.


경영진은 "이걸 왜 해야 하는가, 수익 구조는 뭔가"가 궁금하고, 개발팀은 "기술적으로 뭘 만들어야 하는가, 일정은 어떤가"가 궁금하고, 마케팅팀은 "타깃이 누구고, 우리가 뭘 준비해야 하는가"가 궁금하고, 외부 협력사는 "우리 역할이 뭐고, 계약 조건은 어떤가"가 궁금하다.


예전 같으면 이걸 하나하나 따로 쓰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하나로 퉁쳤다.


지금은 AI한테 이렇게 시킨다.

아래는 신규 서비스 런칭 기획안의 핵심 내용이야.


[기획안 핵심 내용 붙여넣기]

이 내용을 아래 네 가지 대상에게 각각 공유해야 해.


각 대상이 가장 관심 있어 할 포인트를 중심으로 메시지를 재구성해줘.

경영진 — 사업적 가치와 수익 구조 중심

개발팀 — 기술 스펙과 일정 중심

마케팅팀 — 타깃 고객과 마케팅 액션 중심

외부 협력사 — 역할 분담과 협업 조건 중심


각각 이메일 형태로, 3~5문단 분량으로 써줘.


이렇게 하면 AI가 같은 원본 내용을 네 가지 버전으로 각색해준다.


물론 그대로 보내면 안 된다.

반드시 내가 읽어보고 뉘앙스를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백지에서 네 번 쓰는 것'과 'AI가 만든 초안을 네 번 다듬는 것'은 체감 시간이 완전히 다르다.

내 경험으로는 70% 이상의 시간이 줄었다.


인사이트 2 : 대상별로 '관심사 프레임'을 먼저 정리하면 퀄리티가 올라간다.

위에서 프롬프트를 쓸 때, 각 대상의 관심사를 한 줄씩 적은 걸 눈치챘을 거다.

"경영진 — 사업적 가치와 수익 구조 중심" 이 한 줄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AI한테 "경영진한테 맞게 써줘"라고만 하면, AI는 자기가 생각하는 '경영진 스타일'로 써준다.

그런데 우리 회사 경영진이 어떤 스타일인지 AI는 모른다.

숫자를 좋아하는 대표인지, 스토리를 좋아하는 대표인지, 결론부터 말해야 하는 사람인지.


그래서 나는 AI한테 각색을 시키기 전에, 먼저 '관심사 프레임'을 정리한다.


이건 거창한 게 아니다.

각 이해관계자가 이 내용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할 질문을 예상해서 적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팀장 : "일정은 언제까지야? 리스크는 뭐야?"

개발 리드 : "API 연동 범위가 어디까지야? 기존 시스템에 영향 있어?"

디자이너 : "어떤 화면이 필요해? 레퍼런스 있어?"

마케팅 : "타깃 세그먼트가 어떻게 돼? 예산은?"


이걸 프롬프트에 넣어주면, AI의 각색 퀄리티가 확 달라진다.

아래 내용을 팀장에게 보고용으로 재구성해줘.
팀장이 가장 먼저 물어볼 질문은 "일정은 언제까지인지, 리스크는 뭔지"야.
이 두 가지가 앞에 오도록 구조를 잡아줘.


이렇게 쓰면 AI는 내용의 순서부터 바꿔준다.

팀장이 궁금해하는 일정과 리스크를 앞에 배치하고, 세부 스펙은 뒤로 빼는 식으로.


기획자의 역할은 여기서 빛난다.

AI가 각색을 해주지만, '누가 뭘 궁금해할지'를 판단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

이 판단을 AI한테 알려주는 것, 그게 프롬프트의 핵심이다.


인사이트 3 : 한 번 만든 각색 프레임은 계속 재활용된다

이게 진짜 실전에서 강력한 포인트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이해관계자 구성은 크게 안 바뀐다.

같은 팀장, 같은 개발 리드, 같은 유관 부서 담당자. 프로젝트가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처음에 한 번 정리해둔 '관심사 프레임'을 계속 재활용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이런 식의 템플릿을 만들어뒀다.

[이해관계자 각색 프레임]

팀장 (김OO 팀장) 관심사 : 일정, 리스크, 예산 영향 선호 포맷: 결론 먼저, 이유는 간결하게

주의사항 : 기술 용어 최소화


개발 리드 (박OO) 관심사 : 기술 스펙, 연동 범위, 기존 시스템 영향 선호

포맷 : 구체적 요구사항 리스트

주의사항 : 비즈니스 배경도 간단히 포함


마케팅 담당 (이OO) 관심사 : 타깃, 메시지, 일정, 예산 선호

포맷 : 액션 아이템 중심

주의사항 : 전체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세부로


이 프레임을 AI 대화에 매번 붙여넣으면, 어떤 내용이든 대상별로 빠르게 각색할 수 있다.

15화에서 다뤘던 'AI 대화를 저장하면 이득'이라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이런 프레임을 한 번 만들어두면,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

한 번의 정리가 앞으로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셈이다.


각색을 넘어서 : AI로 '반응 예측'까지 해보기

한 단계 더 나가면, AI한테 각색뿐 아니라 반응 예측도 시킬 수 있다.

아래 메시지를 개발 리드에게 보내려고 해.
개발 리드는 일정이 촉박한 상황에서 추가 요구사항이 오는 걸 싫어하는 편이야.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면 짚어줘.
그리고 그 부분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 표현을 제안해줘.


이렇게 하면 AI가 "이 부분에서 '추가 개발이 필요합니다'라는 표현이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기존 구조를 활용하되, 작은 확장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로 바꾸면 수용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같은 피드백을 준다.


물론 AI가 그 사람의 성격을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프롬프트에 넣어주면, AI는 그 맥락 안에서 꽤 쓸만한 예측을 해준다.


이건 주니어 기획자한테 특히 유용하다.

경험이 많은 시니어는 "이 사람한테는 이렇게 말해야지"를 감으로 안다.


하지만 주니어는 그 감이 없다.

AI가 그 감을 보완해줄 수 있다.


100% 맞진 않아도, '한 번도 안 생각해본 것'과 'AI 피드백을 보고 한 번은 생각해본 것'은 실제 커뮤니케이션에서 꽤 큰 차이를 만든다.


실전에서 주의할 점 두 가지

첫 번째, AI가 각색한 내용을 그대로 보내지 말 것.

AI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톤으로 써준다.

하지만 우리 회사, 우리 팀의 톤은 따로 있다. 반말 문화인 팀도 있고, 이모지를 쓰는 슬랙 문화인 곳도 있다.

AI의 초안을 우리 팀의 톤에 맞게 조정하는 건 반드시 사람이 해야 한다.


두 번째, 민감한 내용은 AI한테 넣기 전에 한 번 생각할 것.

인사 관련 내용, 평가 관련 내용,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의사결정 같은 건 AI한테 그대로 넣으면 안 된다.


특히 외부 AI 서비스를 쓸 때는 더 그렇다.

민감한 내용은 빼고, 구조와 톤만 AI한테 맡기는 게 안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 리드한테 보낼 메시지 구조를 잡아줘. 구체적인 내용은 내가 채울게."


이런 식으로 쓰면 민감한 정보 없이도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일 당장 해볼 수 있는 것

다음에 여러 사람한테 같은 내용을 공유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이렇게 해보자.


1단계 : 공유할 핵심 내용을 정리한다.

2단계 : 받는 사람 각각이 가장 먼저 물어볼 질문을 한 줄씩 적는다.

3단계 : AI한테 핵심 내용과 대상별 관심사를 함께 넣고, 각색을 시킨다.

4단계 : AI 초안을 읽어보고, 우리 팀 톤에 맞게 다듬는다.


이 네 단계를 한 번만 해보면, "왜 진작 이렇게 안 했지?"라는 생각이 들 거다.

그리고 한 번 만든 이해관계자 프레임은 저장해두자.


다음에 또 쓸 수 있다.

기획자의 진짜 경쟁력은 좋은 문서를 쓰는 게 아니라, 같은 내용을 상대방의 언어로 바꿔서 전달하는 데 있다. AI는 그 과정을 훨씬 빠르고 덜 피곤하게 만들어준다.


다음 글에서는 아이디어 회의 전에 AI로 혼자 먼저 발산해보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회의 전에 5분만 AI와 대화하면, 회의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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