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의 이미지 소비
퇴근길
이수역에 내리면 재래시장이 하나 있다. 종종 나는 그곳에서 장을 본다. 차가 없을 때는 많은 걸 들지 못하니까 소소하게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산다.
시장에서는 정말 많은 걸 팔고 있는데, 이상하게 고기나 가공식품이나 반찬 같은걸 산 날보다, 채소를 산 날에 느끼는 만족감이 더 크다. 나의 식성은 채소보다 고기를 훨씬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마트에 가면 '우리 두 식구가 또 다 못먹고 버리겠지' 하는 생각에 야채류를 살 때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시장만 가면 과감하고 넉넉하게 채소들을 구입하게 되는 거다. (넉넉한 양으로밖에 안 파는 이유도 있지만.)
오늘은 부추 한 단을 샀다. 부추전도 해먹고 부추무침, 부추계란말이 등 부추부추한 요리들을 맘껏 해먹어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가격은 고작 1,500원이다. 까만 비닐봉지의 윗부분까지 부추가 삐죽히 나온 채, 봉지를 한 손에 들고 집에 간다. 얼핏 유리에 비친 나의 전신샷은 임신7개월의 불룩해진 배와 함께 전형적인 주부다. 약간 서글픈가 하다가, 문득 스스로가 훌쩍 성장한 느낌이 들고, 또 조금 있자 하니 그런 자기인식적인 느낌 자체가 사라졌다. 그저 이 부추를 어떻게 먹을지 생각하고 검색해보느라 여념이 없게 되는 나. 부추를 좋아하는 남편의 반응을 상상하며 또 한번 기분이 좋은 나.
어쩌면 나는 삐죽 나온 커다란 채소들을 들고가는 것을 '시장 보기'의 대명사처럼 생각해서, 그 모습의 나를 대견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부추 자체보다도 그걸 들고 갈 때의 나 스스로가, 어색하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새댁 같아서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아무래도 새댁을 위한 이미지 소비를 하고 있는 건가. 그럼 어때. 1,500원으로 할 수 있는 소비 중 이보다 더 큰 효용은 없을 것 같다.
인생의 전환기이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들을 하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한다.
결혼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나 생각했던
불과 얼마 전까지의 날들이
아득하다.
가물가물하다.
나도 모르는 새
이렇게 서서히 아내로, 엄마로,
모드 체인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