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양보, 그게 뭐라고.

임산부의 흔한 하소연

by Leading Lady


"언제부터 쉬어요?"


34주. 사람들에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이제 누가봐도 만삭이다. 타인이 보기에도 내가 꽤 힘들어 보이나보다. 중기 때에는 그래도 한결 살만했었는데, 이젠 정말 무거움이 주체가 잘 안 되는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전히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비켜주지 않는다. 자리 양보 비율은 약 50:50. 꼭 앉아서 가야만 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앉지 않으면 죽는 건 아니지만 철분 부족으로 빈혈 위험이 크고, 정말 한 3분만 멈추지 않고 걸어도 숨이 차고 배가 뭉친다고 대답할 수 밖에. 배가 뭉치는 게 나쁜 거냐고 묻는다면, 병원에서는 '배뭉침이 있으면 즉시 눕거나 여의치 않으면 어딘가에 다리라도 올리라'고 가르친다고 알려줄 수 밖에. 특히 임신 후기 배뭉침은 조산의 신호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막상 눈 앞에서 모른척과 시선 회피(휴대폰보기와 딴데보기, 자는 척 하기, 애써 배 안보이는 척 하기 등)를 당하면 왠지 좀 상처받는다. 어쩌면 정작 모른척하는 그 사람 본인은 미안함이 없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막상 나는 내가 지금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계속 그 앞에 서 있기가 미안하고 민망해지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몰랐을 뿐, 원래 모든 약자란 불편한 존재였던 걸까.. 다들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저 사람도 티 안나는 사정이 있겠거니, 고작 자리 안 비켜주는 걸로 그 이상을 판단하지는 말자며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 그래, 고작 자리 양보, 그게 뭐라고 내가 서러워하고 사람들을 미워하나.



그래도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임산부나 노약자를 앞에 두고 당당히 앉아있거나 모른척하는 사람들이, 최소한 그들 앞에 선 교통약자들에게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느껴 주었으면 하는 거다. 조금씩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다음 번에는, 다음에 안 된다면 그 다음번에라도, 언젠가는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배려할 수 있게. 만약 그들이 "난 지금 잠을 못 잤고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약자나 다를 바 없어" 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언젠가 예전의 나도 그런 마음이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찔리기도 하다.) 왜냐하면 직접 겪어본 결과, 피곤해서 힘든 것과 정말 교통약자가 된 것은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의 배려로 여기까지 왔다. 분명 본인도 피곤할텐데도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는 승객들이 있었고, 입덧이라는 이야기에 더 많은 양을 얹어주는 상인들이 있었고, 알아서 디카페인을 제안해주거나 에스프레소 샷 양을 조절해 주는 바리스타들도 있었고, 예쁜 아기 낳으라고 실하게 생긴 밤을 정성껏 깎아 건네주는 분식집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런 친절함을 겪은 후엔 며칠 동안이나 가슴이 몽글몽글했다. 결국 별 것 아닌 그런 경험들이 이 기나긴 10개월을 무사히 지나오게 한 것 같다. 내 몸이 전혀 내 몸 같지 않아 모든 것에 두렵던, 유난히 작은 것들에 서운하고 더 작은 것에도 고마워졌던 이 기간을, 남자들이 50년이 넘도록 본인 군 시절 얘기하는 것 만큼이나 잊지 못할 것 같다.



34주 주말. 어느새 이렇게 배불뚝이가 되었나..


지금껏 '미래세대를 위한' 무언가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조금은 가식적인 말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바로 미래세대였고 이 사회가 나의 미래 삶을 위해 뭘 해주겠냐는 냉소가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런데 지금 나는 그런 말에 조금 울컥해진다. 내가 뭔가 동참하고 응원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나는 이미 누군가를 돌보고 육성해야 하는 세대로 진입하고 있는 걸까. 불어난 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새 변해 간다. 세상이 날 바라보는 시선도, 나의 자기인식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나중에 지하철에서 임산부를 보면 꼭 양보해줘야겠다는 다짐까지도. 이렇게 우리 아기와 함께 살아갈 준비운동 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직장인 임산부의 여전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