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t wait to meet you
오늘일까, 내일일까, 아니면 다음 주 언제쯤일까.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초, 꿈 같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즈음부터 지금까지 내 몸 속에서 살았던 생명. 고이고이 키워온 우리 만남과 사랑의 징표. 새끼손톱보다도 작았던 원형의 세포가, 이제는 모든 신경과 장기를 다 갖춘 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어른이 된 후의 한 해 한 해는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리곤 했는데, 임신 기간은 참 길고도 또렷하게 느껴진다. 아기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날은 매우 추웠었고 나는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불안정했다. 입덧을 하는 동안에는 온 동네에 꽃이 피어나고 다시 졌다. 겨우 정신을 차려 보니 갑자기 여름, 에어컨 바람을 무척 싫어하던 나였는데 임산부가 되고 보니 아무리 에어컨 바람을 쐬어도 계속 몸이 뜨거웠다. 내 생애 가장 덥고 긴 여름, 남들이 모두 자켓을 꺼내 입을 때 까지 나는 반팔차림으로도 후덥지근했던, 그런 와중에 일이 참 바빴고 자주 서러웠고 그만큼 또 뿌듯하기도 했던 여름이었다. 어느덧 하늘이 높아지고 저녁 테라스에서 칵테일 한 잔 하기 딱 좋은 그런 축복받은 시기가 되자, 지금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배가 커다란 사람처럼 보인다.
내 몸에서 사계절을 지낸 아기는 곧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 동안 이 아기도 나와 함께 춥고 덥고 기쁘고 슬펐을까, 아니면 내 보호막 덕분에 마냥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했을까. 왠지, 후자였으면 좋겠다. 살아가면서 어차피 알게 될 것들을 내 미성숙한 신체와 감정을 통해 조금 미리 알기보다, 그 어떤 추위도 충격도 막아주는 곳, 필요한 영양분이 가득한 곳, 슬픔도 외로움도 없는 이 세상 가장 편안한 곳에서 지낸 9개월이었기를.
잠보,
가만히 널 불러본다. 너도 얌전히 몸을 움직이며 대답한다. 이 아기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것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자신을 기다렸는지, 지금 얼마나 궁금해서 못 견딜 지경인지. 나는 이 아이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가족 중 누굴 닮았을까, 머리는 얼만큼 자라 있을까, 목소리는 어떨까, 눈빛은 또렷할까, 음악을 좋아할까, 무슨 색깔을 좋아할까, 혹여나 아픈 곳은 없을까.. 뭐랄까, 무지하게 하찮은 것들까지 모두 궁금한, 내가 지금 뭘 궁금해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조차 궁금해서 인터넷 맘카페라도 들락거려야 하는 이 느낌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아기를 미리 보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금기를 깨고 열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면 나는 어떤 벌을 받더라도 아마 백 번은 열어보았을 것 같다.
"I SEE THE LIGHT."
청첩장의 'wedding invitation' 문구를 대신했던 우리 결혼의 제목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환하게 비추고 우리의 사랑이 세상을 밝히리라 했던, 그 중 가장 밝은 빛이 이 아기라는 걸 왜 갖기 전에는 몰랐을까. 험하지만 아름다운 세상 함께 살아갈 든든함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 아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아직 얼굴을 보이기엔 부끄러운 소녀 잠보,
나의 몸과 마음은 이제 널 맞이할 준비가 다 되었다. 그러니 언제든 태어나 주렴. (이왕이면 3일 후 예정일에) 선물같이 찾아와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