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8. 오후 9시
예정일이 3일 지난 오늘, 20분 간격으로 배가 생리통처럼 싸하게 아프다. 간격이 조금씩 빨라지더니 자정이 되자 10분 간격으로 줄었다. 곧 집을 비우게 될 것 같아 설겆이를 하고 집 정리를 했다.
10. 20. 오전 4시
진짜 긴 밤이다. 잠들만하면 밀려오는 진통 때문에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 그저께 밤부터 시작된 진통은 어제 새벽 10분 간격으로 줄어들었고, 24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10분 간격이지만 어제보다 더 아프다. 5분 간격이 될 때까지 병원 오지 말랬는데.. 아무래도 가야 할 것 같이 아프지만 어차피 오늘 오전 10시면 정기검진이니까 그때까지는 버텨 보자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앞으로 더 자주 더 강하게 아프겠지.. 이젠 두려움보다는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쿨쿨 잠든 남편의 등이 원망스럽다.
10. 21. 오전 8시
새벽 3시30분쯤 잠들어 6시쯤 진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일어났다. 그 뒤로 계속 10분간격 진통. 간격은 줄어들지 않는데 강도가 엄청 강해졌다. 심한 생리통 수준을 넘었고, 생리통과 하나도 비슷하지 않다. 마구 쥐어짜는 아픔. 규칙적인 진통만 벌써 60시간이 지났다. 이런데도 어제 검진에서는 아직 내 자궁이 전혀 열리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23일로 유도분만 날을 잡았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너무 아픈데 진통 간격은 줄지 않고 아기는 안내려왔다고 하고 산도는 좁다고 하고 자궁문은 하나도 안 열렸다고 하고.. 어떻게 해야 하지..
10. 22. 오전 2시30분.
잠을 잘 수가 없다. 진통 간격은 아직도 10분. 이틀째 10분에서 줄지를 않다니 정말 환장하겠다. 잠깐 5~7분대 진입했다가도 다시 10분 원상복귀한다. 그 동안 갈색 점액질의 이슬이 세번이나 비췄다. 진통의 강도는 정말 많이 세졌다. 더 오래 더 짜는듯이 더 비틀듯이 더 찌르듯이 아프다. 의사선생님이, 혼자 못 걷고 남편 얼굴이 두개로 보일 때 쯤 병원 오면 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모호한 표현으로는 판단이 잘 안 된다. 아픈 것에 비해 진전은 없고, 계속 버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고.. 너무 오래 진통을 하고 있으니 지쳐 간다.
10. 22. 오전 3시30분.
짐볼을 과격하게 탔더니 진통 간격이 5분정도로 줄어들길래 병원으로 향했다. 18일 밤부터 지금까지 진통이 있었으니 72시간 넘게 아팠던 거다. 3일 밤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했다. 병원가서 내진을 하니 자궁문은 고작 1센티가 열려 있다. 아침까지 좀 기다려보자고 하고 대기실에 있는데 진통의 양상이 좀 변했다. 2분 간격으로 엄청난 고통이 찾아오는데 정신이 혼미하고 시야가 노랗다.
10. 22. 오전 7시.
말도 안 되는 아픔 속에서 약 3시간이 흘렀다. 아프니까 시간이 조금 이상하다. 어떨 땐 영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아직 10분밖에 지나지 않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악몽을 꾸고 깬 듯한 느낌 뒤에는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도 한다. 남편은 대기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있었는데 깨워서 뭘 해달라 할 정신도 없었다. 고통은 너무 갑자기 나타나서 죽을 것 같은 느낌 후에 스윽 사라졌다가 아직 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다시 찾아왔다. 진통 타이머 어플로 기록하기는 멈췄다. 더 이상 기록의 의미가 없었고 결정적으로 핸드폰을 들고 보고 할 힘이 없었다. 나중에 일어난 남편은 손을 잡아 주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남편이 울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된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끄으으 흐으으 신음하며 좁은 병상 침대에서 굼벵이처럼 데굴거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으리라. 7시에 다시 내진한 결과 자궁은 2.5센티가 열렸다. 72시간동안 1센티였던 걸 감안하면 3시간 동안 1.5센티이니 병원 도착 후 부터는 진행이 빨라지긴 했다. 그런데 아직 아기는 하나도 내려오지 않고 계속 위에 있다고 한다. "무통 맞고 촉진제 맞고 할 순 있겠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선생님이 말한다. 내 골반이 매우 좁다며. 어차피 자연분만이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겉보기에 골반이 큰 편인데 그것은 출산과 전혀 관계가 없었고, 심지어 출산에 있어서 매우 비효율적인 몸이었다. 느껴야 하는 고통에 비해 효과는 매우 미비한 몸. 남들은 진통 시작도 전에 이미 2~3센티씩도 열려 있고 하던데 나의 자궁은 임신 중의 잦은 배뭉침과 며칠에 걸친 규칙적인 진통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철통요새같이 단단했던 것이다.
10. 22. 오전 7시30분.
진통을 더 해도 자연분만이 결국 어려울 걸로 보인다는 의사의 소견, 그리고 너무 오랜 진통으로 인한 산모의 에너지 고갈을 이유로 수술을 결정했다. 수술하겠다고 이야기하자 뭔가 진행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사실 이 때는 극심한 진통 중이라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남편이 몇번 데스크를 왔다갔다하더니 뭔가 나는 환자 의자에 앉아 있고 남편에게 손과 눈으로 인사를 했다. '다녀올게' 라고 말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수술실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제대로 된 수술실이었다. 고통 속에서 수술대에 기어올라갔다. 마취과 의사가 먼저 와서 척추에 주사를 놓았고, 잠시 후 간호사들이 내 양쪽 팔목을 수술대에 묶고 다리를 벌려 놓았다. 하반신 마취 후 어느 순간부터는 진통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몹시 무섭고 추웠다. 이 차디찬 곳에서 아기를 꺼내지 않기 위해 자연분만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긴장하지 말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팔, 다리, 손목까지 달달달달 떨렸다. 누군가는 남편 머리털을 쥐어뜯었다더라, 분만실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더라 하는 분만 무용담조차 부러워졌다. 적어도 그들의 곁에는 남편이나 엄마가 있었겠지 하고. 내가 너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의례히 그러는 것인지, 아까부터 분주히 왔다갔다하던 한 아줌마 간호사가 괜찮을 거라고 손을 잡아 주었고 그게 미친듯이 고마웠다. 그리고 수면마취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기억이 끊겼다.
10. 22. 오전 8시30분
저 멀리서 일어나라는 말이 들린다. 눈을 떴더니 아직 수술실이고 배 우측이 약간 욱신거리는 느낌이 있고 밑에서는 뭔가 후처치 같은 것이 진행중이다. "수술 잘 됐어요." 라고 누군가 말했다. 아마 의사였을 거다. 나는 "애기 건강해요?"라고 물었고 발음이 제대로 안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그렇다고 대답하고선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며 후처치를 계속했다. 기억나지 않는 그들만의 사적인 대화들이었다. "너무 추워요.." 라고 말하자 '원래 좀 그럴 수 있다'고 한다.
회복실로 옮겨져 남편 목소리가 들리자 울컥했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왔다고 했다. 그가 아기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눈물이 주르르 주르르 흘러내렸다. 아, 대체 이건 무슨 느낌이지?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 지난 열 달 동안이나 몸으로 마음으로 이 순간을 기다리고 기대했음에도, 이 기쁨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이 감격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꼈다. 그저 "너무 예쁘다.."를 반복하면서 한참을 흐느끼다 웃다 할 뿐이었다.
우리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왔다. 갓 태어난 얼굴 한 번으로,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지난 며칠간의 괴로움 모두 망각하게 되는 마법같은 경험을 내게 주면서. 앞으로 이 아기와 부대끼며 나는 얼마나 더 괴롭고, 또 얼마나 그걸 쉽게 잊어버리게 될런지. 앞으로의 힘듦도 이렇게 씻어낸 듯 잊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겪어도 좋으리라.
나는 이 핏덩어리 생명과 점점 사랑에 빠질 것 같다. 그리고 여느 다른 사랑들처럼 이 사랑 역시, 내 의지로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임을 직감한다. 나는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너이기 때문에 너를 사랑할 것이다. 세상에 온 걸 축하한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해. 나의 어린 생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