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임산부의 여전한 일상

무사히 9개월이 되었다.

by Leading Lady

8월 말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나는 임신 9개월이었다. 배가 더 이상 자랄 수 없을 만큼 거대해졌다. 이러다 어느 날 '빵' 하고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오늘도 퇴근길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우리의 신혼집은 언덕 위에 있어, 퇴근길이면 나는 오르막을 올라가야 한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회사 주차장 정책이 바뀌면서 자차 이용도 못 하게 된 것이 오늘따라 원망스럽다. 나는 우산을 쓰고 열심히 오르막을 올랐다. 느림보 거북이의 느낌이 이런 걸까. 걷다가 배가 뭉치면 잠깐 멈춰서 쉬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참 빠르게도 지나쳐 간다.



임신하고도 일을 하는 것; 편견과 실제

예전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산부를 보면 나는 그들이 참 측은했다. 그것은 단순히 몸이 힘들리라는 것 이상의, 마치 가난한 사람을 바라볼 때와 유사한 동정심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저렇게 일하러 다녀야 하다니... 삶이 참 고단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거다. 차도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가 싶었더랬다. 지금 이 순간 만삭의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딱 그러할까.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있어 보니 내 마음은 그런 시선과 조금 차이가 있다. 임신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내 일시적인 몸상태일 뿐, 이 시기를 지나고 나면 내 삶은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출산과 육아는, 일을 대체하는 과업이 아니라 삶의 지향점 하나가 추가된 것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경력에 대한 고민은 더욱 심화되었다. 육아와 병행할 수 있으면서 나의 적성에도 맞는 일, 그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틈만 나면 든다. 그것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기를 가진 후 가치관이 무척 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이 아기를 잘 키우는 것을 나의 삶의 유일한 'job'으로 삼고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지옥철 틈바구니에 끼어서라도 회사에 계속 출근하는 것이었다. 임신해서까지 돈을 벌지 않으면 밥을 굶게 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애초에 이 일을 하겠다고 선택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도 일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직장인 임산부라 힘들었다.

임신 30주에 접어들면서 회사일이 최고조로 바빠졌다. 신경이 아주 바짝 곤두섰다. 중요한 행사를 딱 2주 앞둔 시점이었다. 챙겨야 할 것은 점점 늘어만 가고 전화기는 수시로 울리는데, 나는 말도 안 되게 금새 피로해지고, 임신성 당뇨까지 걸려 버려서 양껏 먹지도 못한다. 스트레스를 배출할 통로가 없다. 정녕 지금 내가 이렇게 일하고 있는게 맞는 것일까 하루에도 두세번씩 회의가 들었다. 정말 다 때려치고 휴가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임신을 했다고 해서 성격이나 일하는 스타일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조급한 완벽주의자였다. 일정에 맞추어 미리 준비하지만 결정은 맨 마지막에 다 알아본 후 내리는 사람. 막판이 되자 알아보고 결정하고 처리해야 할 것들로 하루가 모자랐는데, 이렇게 잡다한 행정서류들을 잰잰걸음으로 쫓아가듯 맞추다가 혹시 정작 중요한 걸 빠뜨려서 행사가 별로라는 평을 들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에 갑자기 짜증이 솟구치곤 했다. 너무 짜증이 나면 오히려 원인을 제거하고자 더 몰입해버리는 성향도 여전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전체 프로세스를 그려 보고 체크하길 반복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병원 검진 날, 초음파 보러 들어가기 직전에도 메일을 확인하고 회사 직원과 통화를 했다. 심지어 초음파로 아기를 보는 몇 분 안 되는 시간에도 조금전에 해결 안 된 그 일이 머릿속 한켠에 생각났다. 나중에 그 행사가 성황리에 끝난 후, 그제서야 아기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정말로 불쌍했던 때.

그러나 내가 정말 불쌍했던 때는 그렇게 바쁜 상황이나 대중교통 출퇴근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당당히 도와달라고도 말하지 못하는 그 순간이었다. 나는 정말 체력적으로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도와달라고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그것이 행여나 임산부의 유세 혹은 이기심처럼 보일까봐 괜히 민망했다. 회사라는 환경의 특성상 필요한 사람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도와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걸 알고 있음에도, '내가 분명 힘들어 보일 텐데 아무도 스스로 나서서 도와줄 생각을 안하는 것'에 서운해졌다. 안 그래도 되는 이유로 괜히 주변이 야속해질 때, 그래서 주위 사람들 누구도 나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나는 정말 불쌍했다. 임신 초기 업무 관계자가 내가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앞에서 담배를 피울 때 "임신 중이니 꺼 달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할 때, 임산부 배려석이나 노약자석에 젊은 남성이 태연히 앉아 있더라도 일어나 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 다른 빈 자리를 찾아 먼저 그 자리를 뜰 때, 앉을 때면 치사하게 임산부 뱃지를 남들에게 잘 보이도록 앞쪽으로 돌려 놓을 때, 그때 나는 불쌍했다. 내가 지금까지 무언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의 기저에는 내가 약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약자의 입으로 날 좀 보호해달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몰랐고, 약자 아닌 사람의 작은 배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이제 안다. 그리고 나의 당연한 권리에 대해 말하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워킹맘의 삶을 상상해 본다.

오늘 무거운 배를 거의 끌다시피하여 오르막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나는 무지무지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슬프거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얇은 뱃가죽 속에 잠깐 가려져 있을 뿐, 이미 한 생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느껴지기에. 내가 숨차하니 아기는 자기도 힘들다며, 칭얼대듯 뱃속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툭툭 나의 다른 장기들을 건드렸다. "미안해, 조금만 가면 집이니까 잠시만 참아줘."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작은 소리로 말을 건다. 아, 어쩌면 '워킹맘'의 삶은 이미 시작되었나보다.


지금껏 살아 온 '나만을 위해 사는 삶'이 즐겁지만 외로웠다면, 현재 내 인생에 추가되고 있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은 고단하지만 풍요로울 것 같다. 두 가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당분간의 삶의 과제가 아닐까 한다. 새 식구를 맞이하기 직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몸을 하고 있지만 설렘이 더 큰 요즈음이다.


얼마든지 다가오라, 새로운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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