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해주고도 '못해준게 많아 미안한' 엄마들
나는 외동딸로 형제 없이 자랐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게 편하면서도 가끔 무척 외롭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엄마가 나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얘기했던 적이 있다. 당신이 날 가졌을 때 아빠의 귀가가 늦어 임신 중 스트레스를 받는 바람에 내가 남들보다 외로움을 타는 성격이 된 것 같다고.
으잉..?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외로운 감정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대단한 정도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 이야기를 하며 미안해하는 엄마가 혹시 정신적으로 불안하거나 아픈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이 뭔지 알 것 같다.
그것도 너무나 잘.
잠보야,
나는 왜 이렇게 너한테 자꾸만 미안한 걸까?
채소도 많이 안 먹고
기름지고 단 것만 많이 먹어서 미안해.
이상하게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단것이
자꾸만 땡겨서 그랬어.
운동도 안 하면서 스트레칭도 소홀히 하고
자꾸 누워있으려고만 해서 미안해.
원래 운동하던 습관이 없는데다
배가 나날이 엄청 무겁고 당기니까 조금만 움직여도 힘들어지는 걸..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서 미안해.
팀에선 일을 덜어주기는 커녕
모든 일정을 출산 전으로 당겨주는 바람에
배가 불러올수록 점점 더 긴장되고
점점 더 바빠지기만 하는 거야.
맡은 일을 아예 안할 수는 없거니와,
결혼하더니 임신하더니 역시 변하더라라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혹시나 있을까 불쾌하기도 해. 그리고 대중교통 출퇴근길은 정말 최악이라 할 수 있어. 나중에 네가 자란 사회에서도 이런 상황을 겪게 되려나..
요 며칠간 저녁만 되면 계속 배가 아팠어.
어제는 어떻게 누워도 배가 아프고 자세를 바꿀 때마다 또 아프고. 수시로 당기고.
음식도 먹고 나면 소화가 안되어 토할 것 같았어.
그리고 갑자기 한달 사이에 살이 많이 쪄 버린 거야.
내가 단 것 먹고, 운동 안 하고, 쉬지 못하고 스트레스받아서 결과적으로 살이 찌는 거지. 그래서 네게 영향이 가면 어쩌나 걱정되고 미안해져. 내가 뚱뚱해져서 네게 비만이나 당뇨같은 병이 생기면 어쩌나..
나는 지금까지 8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참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책임감도 성취감도 즐거움도 많이 느껴 왔었는데, 지금처럼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렇게 모든 것이
온전히 나만의 의지와 행동에 달린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운이 나빠서도 안 되는 일은,
정말 한 번도 없었어.
어쩌면 내가 꿈과 목표를 가지고
분투했던 그 어떤 일들도,
우연히 가진 널 낳는 일보다
중요하지가 않았나봐.
나는 지금 모든 것이 신기하고 설레고,
동시에 두렵고 부담스럽기도 해.
자꾸만 새가슴이 되고 죄인이 돼.
어쩌면 내가 너무 의미부여를 하는 걸까?
'내 몸 속에서 널 키우는 일'도 회사일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편하게 쿨하게 잘 하려나. 그렇게 하면 정말 '나 편한게 아이에게도 좋은 거다'라는 태도가 가능하게 되려나.
Jambo,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를 벌써 많이 사랑해.
아빠와 엄마는 널 무척이나 기다리고 상상해.
우리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벌써부터 많이 해.
널 가진 이유로 나의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돼.
자꾸 나 편한 것만 찾아서 미안해..
푸르른 10월에 우리 모두 건강하게 만나는 거야.
그때까지 즐겁게 지내기로 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