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만 원하면 뭐하냐고요.
임신 15주.
임신한지 거의 4달만인 오늘 처음으로 임산부 배려석에 앉게 되었다. 핑크 뱃지가 없었는데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아직 배가 겉보기에 티날 정도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왠지 마음이 불안한 것이었다. '나보다 더 배가 나온 임산부가 내 앞에 서면 일어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혹시 누군가 눈치를 주면 웃으면서 '저는 15주에요.'라고 말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뱃지가 없으니 초음파 사진이라도 보여주면 되는지 등등 별별 아이디어를 혼자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날 불편해하는 것 같은 느낌, 진짜인가요 아니면 피해의식인가요?
물론 요즈음에는 오늘 내가 앉은 임산부 배려석이나 임신중 단축근무제 등 임산부를 배려해 주는 정책들이 많다. 그렇지만 사회적 분위기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다들 바쁘게 뛰어가는데 나만 천천히 걸어갈 때, 나는 그들이 나에게 '왜 이 아침부터 길막?'이라 말하는 것 같다. 같은 팀 동료가 '대체인력은 언제부터 온대요?'라고 무심히 말할 때, 본인들에게 떨어질 업무 과중을 우려하는 걸 알기에 민망하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임신 12주 전까지 하루 두 시간씩 단축근무를 할 수 있지만 나는 결국 단축근무를 쓰지 못한 채 12주를 넘겼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이 피해의식일지도 모르지만, 불과 몇 개월 전의 나 또한 이와 같은 시선으로 다른 임신한 사람들을 바라봤었던 것 같다. 나랑은 상관 없고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불편한 존재. 지금에서야 반성하는 점이다.
봐줄 사람 없으면 낳으면 안 되나요?
출산율 높이는 것이 국가의 최대 과제라 하는데, 주위에서는 그다지 내 출산을 응원해주지 않는다는 걸 아기를 가진 후 알았다. 오히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이 유무가 필수가 아닌 선택의 개념이 되면서, 사회의 분위기가 더욱 냉정해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예전에는 힘든 출산과 육아를 모든 여성들의 의무로서 치부해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본인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낳는 것이니 그에 따른 어려움과 힘듦도 그 선택의 결과로서 감수해야 한다는 태도랄까. 봐줄 사람이 없거나 돈이 없으면 낳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무서워진다. 나는 어쩐지 무책임한 사람이 된 것 같다. 1. 아이에게 각종 사교육을 시키며 키울만한 충분한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2. 양가 부모님이 가까이 계신 것도 아니며 3.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것도 아닌데 아기만 덜컥 가져버린 여자. 결혼 후 자연스럽게 아이를 갖게 된 것에 대해 어째서 나는 이런 부담을 느끼는 걸까. 예전엔 안 낳는 것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컸다면, 지금은 낳는 것에 대한 압박이 훨씬 커져 버린 것 같다.
내가 사회 탓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요즈음은 정말이지 이 사회가 날 불편하게 한다.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게 어째서 '독박육아'라는 말이 되어 세간의 동정을 받아야 하는가. 돈이 많지 않아도, 친정엄마가 멀리 살아도, 직장이 있더라도,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해야 하는 거 아닐까. 얼마 전 TV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핀란드 부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부부는 얼마 전 셋째를 출산했고 남편은 잠시 직장을 그만두고 기본소득으로 생활하면서 육아를 분담하고 여유있게 재취업을 준비하는 이야기. 그때는 임신 전이었고 '역시 복지국가!'라며 지나갔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마치 꿈 속에서 본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아무튼 당당해지고 싶은데 오늘도 일상 생활에서부터 별로 당당하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드나 보다. 회사에서는 '괜찮은 척' 하는 내가, 공공장소에서는 '배 나온 척' 하는 내가 좀 불쌍해지는 날이다. 집에서만 여왕 대접 받으면 뭘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