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의 재발견
"엄마가 되면 달라져."
선배 엄마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막연히 그것이 어떤 정서적인 변화라고 생각했었다. 이를테면 '모성애' 라던지. 막상 임신과 출산을 겪고 나니, 그 모든 달라짐은 극히 몸에 대한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출산과 육아는 내가 하나의 온전한 여체로서 기능해보는 경험이었다. 마음의 변화는 그저 몸의 영향을 받을 뿐이었다. 요 몇 달간 나의 몸은 이제까지 살면서 한 번도 써 보지 않은 기능을 활성화하면서 보내고 있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궁이라는 조그마한 장기는 누군가 날 보았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갈 만큼 거대해졌고, 그저 평소처럼 먹고 움직이고 잠을 잘 뿐인 나로부터 마법처럼 온전한 인간을 창조해 냈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역할 변화'를 겪은 건 가슴이다. 처음으로 나의 가슴은 여성적 매력, 그리고 건강검진 시 유방초음파의 대상이 되는 것 이외의 쓸모를 찾았다. 아니, 그 정도로는 충분치 않지, 만약 가슴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 쓸모없는 엄마였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드니 말이다. 실로 출산 후 가슴의 변화는 놀랍다. 무슨 변신로봇이 되는 느낌. 출산하자마자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갑자기 모유가 돌기 시작했다. 요술 항아리처럼 비워지면 차고 또 비워지면 또 찼다. 태어나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신체기능이 시행착오 한 번 없이 이렇게 빈틈없이 작동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 인생에 한 번일지 두 번일지, 어쩌면 영영 없었을지도 모르는 아기를 낳는 날을 기다리며 내 몸은 이렇게나 주도면밀하게 기다리고 준비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아기가 아니라 내 몸에게 미안해서라도 모유수유를 좀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세상에서 제일 당연하지만 제일 어렵게 느껴지던, 모유수유.
종종 모유수유가 모성애의 상징처럼 그려지지만 그다지 감동적이거나 성스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하나의 몸뚱이에 지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달까.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참 어색하고 힘이 들었다. 출산 후 약 3주간 나의 하루 일과는 1~2시간마다 수유하는 게 전부였다. 수유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수유를 하기 위해 무언가를 먹거나 쪽잠을 잤다. 조리원 수유실에 모르는 여인들과 나란히 앉아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먹일 때면 나는 '엄마 한 마리'가 된 느낌이었다. 모유가 잘 안나오거나 내가 서툴러서 잘 먹이지 못할때면 선생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내 가슴을 주물러 상태를 확인하고 제대로 물게 도와주었다. '아, 내가 대체 젖소인가 사람인가..' 라며 시작된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은, 일단 한 번이라도 수유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유동물로 태어나 자연스러울 줄 알았던 젖 먹이기가 정녕 이렇게 어려워도 되는 것인가. 한쪽당 10~15분씩 양쪽을 먹이라는 것은 언제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아기는 잘 빨지 못해서 울거나, 빨기 시작하면 5분도 안 되어 잠들어 버리거나, 이번엔 좀 먹었나 싶으면 아깝게도 토해버리곤 했다. 나의 기분은 모유수유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했느냐에 좌지우지되었다. 아기가 잘 못 먹으면 나도 울적해졌고 잘 먹었을 땐 기뻐졌다. 가슴은 언제나 수난을 겪었다. 유선조직에 처음으로 액체가 들어가서인지 초기엔 가만히 있기도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다. 이후로도 몇 주간은 내내 유두에 상처가 나거나, 유선이 막혀 멍울이 져 있거나 유구염이 와 있거나 했다. 수유하면서 시선이 아기를 향하니 팔이며 목, 어깨도 너무 아파왔다. 도저히 오래는 못할 짓이라며 한 달만 먹이고 단유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몇 번씩 했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대단한 것
어느덧 소율이는 67일이 되었고 나는 아직 모유수유 중이다. 처음엔 그렇게 스트레스받았던 수유시간이, 이제는 나와 아기의 매우 일상적인, 그리고 약간은 애틋한 시간이 된 것 같다. 다른 누가 대체해줄 수 없는 오직 둘만의 교감의 시간. 우리가 하루 중 가장 오랫동안 몸을 맞대고 눈을 맞출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은 내가 소율이의 기분을 파악하기도 하고, 사야 할 육아용품들을 검색하기도 하고, 다 먹은 후에 어떻게 놀아줄까 얼마나 있다가 재울까 등등을 조용히 계획하기도 하고, 아기와 놀아주고 재우는 것(이게 진짜 전쟁..)에서 잠시나마 벗어난 평화의 시간이기도 하다. 아기는 기분에 따라 먹는 모습이 천차만별이다. 빨리 먹고 놀고 싶다는 듯 몸을 배배 꼬며 먹기도 하고, 온 몸에 힘을 다 뺀 채로 입만 오물거리며 먹기도 하고, 때로는 마치 나를 안아주듯이 양팔로 내 몸을 살포시 잡으며 먹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내려다볼때면 내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저 여린 생명에 대한 애정인지 안쓰러움인지 모를 묘한 감정이 차오르곤 한다. 이유를 모르고 계속 우는 것을 달래다 못하여 젖을 물렸을 때 잠시나마 안정을 찾는 소율을 보면서, 부족한 엄마인 내가 이 아기에게 이거라도 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춤도 잘 못추고 유연하지도 않고.. 몸으로 하는 건 정말 못하는 것 투성이인 내 몸으로 이 아기가 이렇게 토실해지고 각종 감각들이 발달하다니, 남들도 다 하는 것이겠지만 정말 내 운동신경 없는 몸이 할 수 있는 것으로는 가장 대단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난 요즈음 비로소 내 가슴이 좋다. 커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꽤 쓸모있게 느껴진다. 나의 아기가 본능적으로 위안을 찾는 나의 가슴. 우리가 서로에게 애착을 형성하게 해 주는 일등공신. 각종 영양소와 면역체계와 더불어 나의 지방까지도 아기에게로 이식하는 천연 지방흡입술을 가능케 하는 고마운 매개체. 혼자 아기 돌보고 집안일 하기도 버거운데 알코올도, 매운음식도, 카페인도 못 먹으며 지내고 있는, 게다가 간만의 외출조차 오랫동안 못하는 꽤나 금욕적인 시기이지만, 그럼에도 아마 나는 우리 둘이 서로 살을 맞대며 편안해했던 이 시간을 그리워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같았던 젖먹이기 시간이 고작 두 달 만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니 정말이지 세월이 무상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