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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an 26. 2018

50일의 기적; 패턴의 생성

천국이었던 조리원을 나와 친정으로 거처를 옮긴 날 소율은 생후 19일이었다. 앞으로 친정에서 한 달을 지낼 테니 소위 말하는 '50일의 기적'쯤은 비교적 쉽게 다가오겠구나 싶었던 것은 얼마나 큰 오산이었는지. 진짜 세상에서 가장 힘든 한 달이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나는 나가떨어졌고 엄마도 나가떨어졌고 엄마와 나는 대판 싸웠다. 엄마랑 나는 서로 '아직도 일주일밖에 안 지났냐'는 말을 하루에 열번은 했던 것 같다. 최소 한 달은 넘은 것 같이 느껴졌다. 아기 보기만 아니었더라면 아마 며칠이고 몸져누웠을 테지만 그 누구도 마음껏 아프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지, 최고조로 힘들었던 시기가 지난 후 그 때(고작 한달 전..)를 되돌아보니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그 시기의 아기사진을 보니 너무 작고 귀엽기만 하고, 지금 새로이 당면한 과제들이 더 중해 보이는 거다. 게다가 아무도 퀭한 눈과 떡진 머리의 나를 사진으로 찍어주지 않았고 나 또한 셀카 찍을 여유같은 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던 증거자료 따위는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 마치 살아있는 좀비 같았던 그 시기를 더 잊어버리기 전에 무엇을 하느라 그렇게 힘들었는지 기록해보려 한다.

 


아기의 신호 파악하기

처음 소율을 안고 집에 왔을 땐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하고 낯설기만 했다. 말이 통하기는커녕 초점도 잘 안 맞는 아기의 현재 기분이 어떠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니 아기가 얼마나 먹었는지 감이 없어서 울기만 하면 배고픈가 하여 젖을 물렸다. 또 조금만 칭얼대도 기저귀를 확인해보고, 졸린 것 같아 재워보고, 그것도 아니면 어디 아픈가 걱정하고. 소율이 하는 손짓 하나, 찡그림 한번, 아주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나는 크게 반응했다. 자칫하다 부서질 것 같은 작은 아기. 나의 무지로 인해 소율이 힘들어할까봐 두렵고 조심스러웠다. 상황별로 아기의 울음소리 구별을 알려주는 동영상을 찾아 몇 번이고 돌려보았고, 베이비 위스퍼 책을 정독했다. 처음엔 정말 헷갈리고 헛다리만 많이 짚었는데, 그렇게 노력과 관찰을 계속하며 50일이 가까워져 오자 소율이 보내는 신호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사실 24시간 내내 붙어 있는데, 지겨워질지언정 익숙해지지 않을 수는 없다. 나중에 하루 일과가 비교적 규칙적으로 잡히자 아기와의 소통은 한결 더 쉬워졌다.


너와 처음 집에 온 날. 나는 네가 많이 낯설었다.


하루 일과 만들기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하는 것처럼 신생아들도 일과를 만들어줘야 했다. 건전한 일과는 '먹기-놀기-잠자기'의 순서로 이루어져야 한다. 당연하고 쉬운 것처럼 보이는 이 순서는, 처음엔 그대로 따르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아기는 먹으면(특히 모유수유를 하면) 본능적으로 편안해지면서 그대로 자려고 했는데, 육아의 과정에서 양육자를 가장 못 견디게 만드는 부분이 바로 '재우기'인 점을 감안했을 때, 자는 아기를 일부러 깨워 놀게 한다는 것은 마치 자살행위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처음엔 굳이 깨우지 않거나, 심지어 일부러 젖을 물려서 재우기도 했다. 그것이 악순환의 시작인 것을 모르고.


먹다가 잠든 아기는 결국 토하면서 깨버리거나, 토하지 않더라도 소화가 안되는지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칭얼대거나 했다. 어쩌다 한 번쯤 깨지 않고 조금 오래 자더라도, 깨어난 이후 바로 배고파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수유까지 어느정도의 활동시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잠자기-놀기-먹기'로 다음 사이클까지도 바뀌어 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혹시 조금만 먹이고 재우면 잠은 빨리 들면서 속도 편하지 않을까, 깨어난 후에도 바로 수유할 수 있어 다음 사이클부터는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수유량을 줄여 보기도 했다. 그러나 수유텀을 어서 늘려야 할 시기에 더 조금씩 자주 먹인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실패로 가는 길. 한번 조금 먹으면 그 다음에 더 빨리 배고파할 뿐만 아니라 더 조금 먹었고 그러다보면 더 조금밖에 안 잤다..

24일차의 일과. 먹-놀-잠 패턴은 불규칙하고 밤잠은 너무 늦다. 빨강/연두색이 수유, 보라색이 잠.
첫 번째 낮잠시간이 길긴 하지만 그래도 꽤 성공적인 일과.



재우기

더 말이 필요 없다. 이게 제일 힘들다. '하루 일과 만들어주기'가 잘 안되는 이유는 99%가 제 때 자지 않아서다. 모체로부터 받은 멜라토닌은 생후 3주 후면 소진되어 이 때부터 아기들은 잠투정이 심해지고 재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스스로 멜라토닌을 생성하는 건 아기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8주는 넘어야 한다고. 조리원에서 딱 3주까지 있다 나왔는데.. 쿨럭..


소율은 밤이 되면 악을 쓰며 울었다. 나와 남편, 친정 부모님이 모두 달라붙어 돌아가며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단순히 졸려서 잠투정하는 것이라 하기엔 너무 거세게 오래 울었기 때문에 매일 저녁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워졌다. 보통 2시간 정도는 울었고 5시간 내내 운 적도 있다. 심지어 수유를 해도 그때 뿐, 끝난 다음엔 또 울었다. 낮잠은 안 자면 조금 기다릴 여유가 있지만 밤잠은 피할 곳이 없다. 안고 흔들기, 포대기로 업기, 자장가 부르기, 공갈젖꼭지 물리기, 백색소음 틀기, 차에 태우기, 더 놀아주기 등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봤던 것 같다. 달래다 보면 풀어지는 속싸개를 몇 번을 다시 싸맸는지, 달래다가 기저귀를 몇 번을 갈았는지.. 심지어 그렇게 재워놔도 2~3시간이면 또 깬다는 거. 그러나 그 2~3시간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네가 잘 때 나도 자야 하는데, 잠든 네가 너무 예뻐서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걸.


낮잠이라고 쉬운 건 아니었다. 배고픈 것도 아니고 심심한 것도 아니고 타이밍상 졸린 게 분명한데도 소율은 전혀 잠자고 싶은 기색이 없었는데, 알아보니 원래 아기들은 졸릴수록 뇌파가 각성상태가 되어(대체 어째서..ㅠㅠ) 오히려 활발해 보이고 더 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뭔가 흥분한 기색이 보일 때 재우려고 했는데 어른들은 "잘 노는 애를 왜 재우려고 하냐"며 더 놀리라고 하는 바람에 몇 번 다투기도 했다. 신생아들은 낮잠을 하루에 서너 번을 두시간씩 잔다고 했는데 소율은 그 절반도 안 잤다. 겨우 잠든 듯 해도 아주 작은 소리에 금새 눈을 떠버리고, 안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또 깨버리고, 아무 이유 없이도 그냥 10분만에 깨버리고, 자는 둥 마는 둥 하길래 앉혀놓고 놀게 하면 또 칭얼대고. 그렇게 4~5시간가량 깨어 있다 보면 너무 지쳤는지 세시간씩 연속으로 자기도 했다.


재워놓으면 금방 또 재울 시간이 돌아오고, 하루종일 끊임없이 재우기만 했던, 그래서 나는 계속 깨야만 했던 시기. 그 때는 정말 정직하게 흘러가는 시간밖에는 기댈 곳이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멍한 상태로 낮을 숱하게 보낸 후, 소율은 50일이 되자 이틀에 한 번 정도는 5시간 정도를 잤다. 더 못 자는 아기들에 비하면 무척 감사한 일이었지만 사실 감사하다는 감정 별로 안 들었다. '이제 그정도는 잘 때도 됐지.' 라는 생각 뿐.

잠들면 부처



그 밖의 것들

'아기 보기' 외에도 아기를 키우기 위해 자질구레한 과업이 수반된다. 젖병과 유축기 씻기/살균하기, 아기 빨래 돌리기/널기/개기, 기저귀로 넘쳐나는 쓰레기봉투 버리기, 산모로서 밥 챙겨먹기/설겆이하기, 그리고 필요한 아기용품과 각종 소모품 사기 등등. 잠시나마 친정에 머물러서 저 대부분을 엄마가 해 주셨기 때문에 그나마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 씻는 시간은 정말 부족했는데, 씻을 바에는 잠을 자는 게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너 샤워좀 해'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친정을 떠나는 날이 다가올수록 두려움이 엄습했다. '어떻게 나 혼자 이 모든 것에 일상적인 집안일까지 하면서 아기까지 키우나..' 너무나 막막하니 오히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는데, 결국 어떻게든 되긴 된다. 포기하는 것이 생길 뿐.



50일의 기적; 패턴의 생성, 그리고..

흔히 아기 100일이 되면 '100일의 기적'이 일어나고 50일경에도 '세미기적'이 일어난다 하여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50일이 된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수면의 기적이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친구를 새로 사귀더라도 처음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기도 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소율과 나도 서로에 대해 그렇게 탐색하는 과정을 거쳤고 50일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친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정말 아기는 신기하리만치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한다. 낮과 밤도 모르고, 나와 남도 모르고, 어떻게 자는지도 모른다. 그런 백지 상태의 아기에게 먹고-놀고-자면서 하루 보내는 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해 준다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랄까. 참, 그리고 45일 즈음이었나, 소율이 확실히 웃기 시작했다. 밤잠 30분 더 자는 것보다 그것이 훨씬 경이로운 기적이다. 그 웃음 한 번으로 잠깐이나마 고단한 몸 따위는 싹 잊어버릴 수 있기에.


맘마 잘 먹고 벙실벙실 웃는 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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