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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Dec 22. 2017

아는 것이 병인 육아

갓 엄마가 된 나는 생각보다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았다. 누군가의 아기와 잠깐 놀아주는 것과 내 아기를 키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주 사소한 것 까지도 몰라서 물어보아야 했다. 대가족과 공동육아 문화가 없어진 지금 인터넷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왠만한 정보는 검색해서 얻어낼 수 있고 육아 서적들도 볼 수 있어, 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찾아서 해결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론은 엄청 빠삭해졌다. 실제로 잘 하느냐는 다른 문제였지만.



왜 이렇게 안 되는게 많을까.

한 생명이 이렇게 나약하게 태어난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얼룩말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걷고 다음날이면 뛰어다니던데,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의 아기는 이렇게 혼자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다니. 난항을 겪은 첫 미션은 젖먹이기였다. 나는 젖이 흔했지만 뚝뚝 흐르는 젖에도 불구하고 소율이는 도무지 물려고 하지 않았다. 생후 3~4일째부터 빠르게 유두혼동이 시작된 아기는 젖병으로 먹일 때만 잘 먹었고 젖을 물려면 한바탕 전쟁을 치루곤 했다. 유두보호기도 소용이 없었고 모유수유 선생님이 도와주셔도 그 때 뿐이었다. 어찌저찌 물려 놓아도 그저 물고 있기만 하고 거의 안 빨았다. 그것은 내게 꽤나 큰 좌절감을 주었다.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다 봐 주고 내가 하는 일은 젖먹이기가 유일한데, 그것조차 제대로 못하는 형편없는 엄마가 된 느낌. 나는 유두혼동을 해결하기 위해 조리원 들어가서부턴 거의 모든 수유콜에 다 응하고(이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분유수유는 거의 하지 않았다. 제대로 못 먹은 소율은 잠들었다가도 배고파서 금새 일어났고, 또 젖을 잘 물지 못하고 울다가 잠이 드는 과정을 계속 반복했다.

조리원을 나온 이후에는 재우기가 항상 큰 도전이었다. 소율이는 집에 온 첫날 밤 세 시간 정도, 다음 날은 다섯시간 넘게 악을 쓰며 울다 목이 다 쉬어서 지쳐 잠을 잤다. 영아산통이니 배앓이니 잠투정이니 장꼬임이니 다양한 원인들을 찾고 유추해가면서 방법들을 시도했지만 결국 원인을 알 수는 없었고, 안다 해도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었다. 어르고 달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것은 정말 지루하고 고단한 일이었다. 유두혼동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었다. 아기 수면에 대한 블로그와 카페를 샅샅히 공부하고 수면교육 책을 사서 몇 번씩 정독했다. 배변도 문제였다. 집에 온 이튿날부터 아기가 아직 한 번도 변을 보지 않는 것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모유만 먹는 아기는 그럴 수 있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3일째가 지나고 4일째에도 변을 보지 않자 초보엄마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아기 변비약부터 관장까지, 할 수 있는 옵션을 다 알아보고 당장 내일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아기는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변을 선사했다.


결국, 다 되는 거였는데.
이 모든걸 해결해 준 것은 웹상의 방대한 정보들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사실 나의 초조함이 무색하게도 소율이는 항상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제 때에 잘 해내었다. 유두혼동은 점점 빠는 힘이 세질수록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지금은 가슴을 열기 무섭게 젖을 먹어댄다. 여전히 잠투정은 있지만 한번도 낮밤 바뀐 적 없이 밤잠을 잘 자 주고, 40일경에는 5시간, 50일경에는 6시간 통잠을 잤다. 그리고 언제나 매우 훌륭한 황금변을 보여준다. 나는 생후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벌써 다른 또래들과 비교하여 재촉한 것 같아 미안했다. 서투른 초보 엄마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성장하고 있는 이 꼬마 생명에게, 나는 무엇이 그렇게 급하고 초조해서 지금 당장 고치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굴었을까. 아직 힘도 별로 없는 아기에게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가슴을 들이대고, 한달도 채 안 된 아기에게 수면교육, 심지어 울려재우는 방법까지 고려했던 게 후회스럽다. 모유가 몸에 흡수가 잘 되어 며칠 동안 변이 없는 것을, 병원가서 억지로 관장을 시켰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철렁하기까지 하다.



나도 내가 좀더 좋은 엄마일 줄 알았어.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벌써부터 극성 엄마였다. 조금만 늦어도 늦다며 성화, 심지어 안 늦었는데도 빠르지 않다며 조기교육을 시키는 엄마. 돌이켜보면 나는 임신 기간부터도 조급했다. 아직 태동을 느낄 주수가 안 되었는데도 태동이 없다며 병원에 가기도 했고, 아기가 역아일 땐 돌아오지 않을까봐 초조해서 제왕절개 택일을 받았었고, 예정일을 넘긴지 하루만에 '왜 아직도 안나오냐'며 조급해했다. 아기는 얼마나 이런 엄마가 성가셨을까. 내 아이가 잘 컸으면 하는 마음이 앞서 남의 아이의 성공사례를 보며 적용시키려 하다니,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이제는 내 아기의 특성을 관찰하는 데 좀더 시간을 쓰기로 했다. 책에 나오는 '육아 팁' 보다는 소율이가 언제 배고파하는지, 졸릴 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변을 봤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를 더 궁금해하기로. 이전에는 아기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실험대상 같았다면, 아기에게 집중한 이후로는 좀더 친해지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기분이다. 아기가 50일이 막 지난 현재, 아직까지 육아는 즐거움과 보람보다는 하루하루 견디는 것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두운 터널일지라도 적어도 끝이 정해진 길이라는 것이다. 현재 내가 힘든 것은 내가 문제적 엄마여서 혹은 내 아기가 남들보다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은 원래 누구나 그럴 시기여서일 것이다. 지금 아기가 안 자고 울어대도 몇 시간 후에는 결국 잘 것이다. 통잠을 못 자고 금방 깨버리지만 언젠가는 아침에 매번 깨우는 게 일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힘들긴 해도 조급해하진 않기로 했다. 고작 한달 된 아기도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면서 커 나가는데, 서른 살 넘은 엄마가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에 연연하고 의존하지 않기로. 지금 핸드폰 화면보다 아기의 눈을 한번 더 맞추는 엄마가 되기로.


졸릴 때는 이렇게 아아악 아아악 운다.
응가 후에는 엷은 미소를 띈 채로 오랫동안 논다
속이 안 좋을 때는 입을 오물거리고 눈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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