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외로움’이라 말할 것 같다. 아기와 함께하며 나는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복합적인 외로움을 느꼈다. 마치 세상에 소율과 나 둘 뿐인 것 같았다.
인생 대부분을 좋든 싫든 학교나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갑자기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적응하기 힘든 일이었다. 멀리 외출도 쉽지 않아 항상 집과 집 근처에만 있어야 하다니, 아기가 없더라도 외로운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사실 진짜 문제는 이를 해소할 출구가 없는 것이었다.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흔히 해왔던 방법들,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꾸는 시간을 갖는다거나 가까운 친구들과 대화를 한다거나 여행을 가는 등의 옵션이 이제는 없었다. 밥 한끼 제대로 먹는 것도 사치이고 잠 한번 제대로 자본 지가 수개월 전인 상황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대체 어디서 빼낼 수 있을까. 문득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초췌한 내가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나의 정체성은 '젊고 예쁜 여자'였는데 한순간에 살찐 허리가 되어 매일 같은 옷과 질끈 묶은 머리와 맨얼굴로 지내고 있는 것도 정말 우울한 일이다. 너무도 낯선 모습의 나를 바라볼 때마다 더 외로워질 뿐이었다.
아기와 둘만 있다 보면 조금 다른 차원의 외로움이 또 있다. 아직 아기와 소통다운 소통을 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말 못하는 아기를 보다 보면 뭐랄까.. 배터리가 없는데 계속 움직여야 하는 기계가 되는 느낌에 도달하게 된다. 눈 앞의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동물이나 식물은 아니라서, 계속 눈을 맞추고 말을 걸어 주고 행동에 반응해 주면서 애착관계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 작은 아기가 놀랍게도 내 사소한 말투와 표정과 행동까지 다 알아챈다는 것은, 굳이 육아서적을 들춰보지 않더라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아기를 위해, 나는 억지로라도 수다쟁이가 되어야 했다.
나: 우리 소율이, 기저귀 좀 봐줄까?
아기: ...
나: 쉬야 많이 했으려나~ 어디 볼까요~
아기: ...
나: 어이쿠 쉬야 엄청 했구나. 많이 먹고 쉬야 많이 했어요?
아기: ...
나: 축축했겠다. 우리 소율 예쁜 엉덩이 축축했어?
아기: ...
나: 엄마가 얼른 갈아줄게. 여기 새 기저귀 있어요.
아기: ...
나: 엉덩이 들어보자~ 영차~ 옳지~
기저귀 새로 했다. 아 뽀송해 아 기분 좋아~
흔한 기저귀 가는 상황이다. (기저귀는 하루 8번정도 교체함)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는 하루 온종일이 완전한 독백극이다. 애정이 없으면 그냥 후다닥 기저귀만 갈고 말지 절대 저런 말들은 하지 않을 거다. 생각으로만 해도 되는 모든 걸 말로 꺼내서 하는 건 굉장한 노력을 요한다. 어색하고 피곤하다. 혼자 말하다보니 어느샌가 자연스레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요즘 아이들이 예전 대가족 시대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말 시작 시기가 늦다고 하는데 당연한 일이다. 나 혼자 묻고 대답하고 중얼거리고 웃고 노래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옆에서 말 한마디라도 거들어주면 낫겠다는 생각, 절로 든다.
아기가 특히나 울고 칭얼대는 날의 힘듦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 다 내려놓고 싶은 그런 느낌. 한번은 밤에 아기가 자꾸 깨는 통에 전날 밤에 거의 못 자서 낮에 종일 피곤했다. 게다가 소율이 첫 번째 낮잠을 유난히 안 자려고 칭얼대고 울고를 반복하자 짜증이 더해졌다. 급기야 아기에게 "니 맘대로 해! 자던지 말던지!” 라며 소리지르고야 말았다. 소율은 내가 무서웠는지 아니면 그냥 자길 안 달래줘서인지 아님 졸려서인지 엉엉 울었다. 나는 그래도 분이 안풀렸다. 나도 엉엉 울었다. “소율아, 엄마 힘들어.. 착하게 자자 응?” 아기에게 울며 하소연을 하고 불쌍한 척을 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바로 지금, 분노와 서러움이 폭발하는걸. 남편과의 카톡 따위로는 해소되지 않는 걸.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지금 내 슬픔을 나눌 사람이 이 아기밖에 없다니.. 홀로 육아를 할 때의 가장 불안한 점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의 분출구가 아기를 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해도 해도 계속 해야하는 집안일 더미들.. 아무래도 도우미 이모님이라도 모셔야 하는 걸까.
사실 그럼에도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예쁘고 사랑스럽다. 미치도록 귀엽기 때문에 그나마 이 생활이 유지된다. 그러나 이 아기가 성장하는 귀중한 순간순간을 바라보는 사람이 나 혼자라는 것엔 막중한 책임감이 더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율이 코끼리 모빌을 처음 잡았을 때, 처음 뒤집었을 때, 처음 공을 손으로 쥐었을 때, 발잡기를 시작했을 때.. 수없이 많은 첫 순간에 소율 옆에는 대부분 나 혼자만 있었다. 너무너무 잘했다며 대단하다며 한껏 칭찬해 주는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을 나 혼자 보고 있는 것 같은 답답함과 죄책감이 든다. 정말 누구라도 좋으니 함께 응원하고 싶고 함께 축하하고 싶다. 온 우주를 담아도 모자랄만큼 무한한 아기의 눈동자에 비친 세상이 오직 '나' 뿐이라니. 엄마들이 SNS에 자꾸 아기사진 올리게 되는 이유, 시부모님께라도 사진들을 보내게 되는 이유, 맘카페가 활성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육아로 인한 외로움은 단순하지 않다. 오랜만에 친구들 만나고 온다고 해소되는 일시적 답답함이 아니고, 도우미 이모님이 계시다고 덜어지는 짐도 아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데에서 오는 중압감, 나이먹는 여성으로서 감내해야 하는 쓸쓸함, 집에서 티 안나는 노동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서러움, 이 모든 것에 관심 없는 이웃과 사회에 대한 원망 등이 합쳐진 매우 복합적인 감정을 ‘외롭다’고 표현하게 된다. 왠지 이번만큼은 '어차피 모든 사람은 혼자이고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며 인정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나 혼자일 땐 얼마든지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우리 아기에게는 가족도 필요하고 이웃도 필요하다. 내가 외로워서 아기도 외로울까봐 걱정이 되어, 지역맘 커뮤니티에 친구찾기 글도 올리고 마트와 빵집 아주머니들에게도 소리내어 인사하고, 쇼핑하다가 다른 아기엄마에게 '몇개월이에요?'라며 자연스레 말을 걸게도 되었다. 일평생 없었던 친화력이 발현되는 걸 보면 이렇게 갑자기 아줌마가 되어가나 보다. 아아 내 모습 진짜 낯설다, 낯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