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모든 처음을 사랑한다
2월 초, 아직 집 앞에 잠깐 나가기도 부담스러운 추운 날씨다. 특히 소율과 나가는 건 단단히 각오를 해야만 가능한 큰 일. 세탁소에 가려고 소율을 아기띠에 넣고 워머로 싸맨 후 집 앞을 나섰는데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머, 소율아, 눈이 온다!
우와, 우리 소율이 눈 처음보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하얀 게 눈이야.
너무 예쁘지 않아?"
언제나 내가 더 호들갑이다. 도로 집에 들어가야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왕 나온 거, 결국 소율을 더 꼭 안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나는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으려면 들으라지. 태어난 지 막 3개월이 된 나의 아기가 처음으로 눈을 본 날인걸. 그리 멀지 않은 세탁소에 남편 셔츠들을 맡기고 나왔더니 그 짧은 사이에 눈발이 많이 거세졌고 눈송이는 더 커져 있는 거다. 나는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나온 김에 카페에도 들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
"소율아, 눈이 더 많이많이 내리네.
우리 어서 집에 가야겠다."
참 이상하게도 나는 평소에 추위를 아주 많이 타는데 소율과 있으면 그리 춥지 않다. 아기와 체온을 나누어서인지, 아니면 아기의 추위를 걱정하느라 내 추위를 잊어서인지. 작은 아기띠 속에 들어있는 소율과 가슴을 맞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연약한 아기의 얼굴에 찬 눈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소율이 눈을 충분히 보고 만져봤으면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겨울이 주는 새하얀 색, 보석 같은 결정, 꽃잎 같은 움직임이 이 작은 아기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소율을 내려다보니, 아기는 어쩐지 무척 차분해진 채로 고개를 옆으로 하고 얌전히 눈오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신기한 광경 언제까지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 모습이 너무나 신비롭고 성스러워 울컥한다. 아무리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많아져도, 새로운 것을 처음 본 아기의 눈빛을 복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이것만큼은 마지막 신의 영역으로 남는 것이 맞다.
앞으로 있을 숱한 너의 처음은 매번 이렇게나 축복인 것일까. 소복소복 함박눈이 이만치 아름다웠던 게 언제였던지. 소율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 나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날 갑작스레 내린 눈에 마을은 잠자는 듯 고요했고 바람도 고요했다. 소율의 눈빛만이 이미 봄이었다. 생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