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해 버린 이야기
집 근처 카페에서 소율을 옆에 두고 적는다.
생후 7개월차에 접어든 소율은 이제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 조금 심심해한다. 하루 한 번 정도는 외출을 해야 짜증도 줄고 잠도 잘 잔다. 본인의 신체적 능력보다 호기심이 훨씬 큰 아기 때문에 내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우당탕탕 큰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신생아 때 보다는 나도 훨씬 나아졌다. 지금 소율은 내가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 사이 옆에 앉아서 본인의 간식을 먹는다. 앉는다니, 혼자 무언갈 먹는다니.. 이것이 얼마나 큰 진보인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다. 안을 때 목이 꺾일까봐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고, 맘마를 수시로 먹이지 않아도 되고, 카페나 식당에서 아이를 눕힐 곳이 없어도 된다는 뜻. 이제 조만간 걷게 되면 또 한번 우리 외출 패턴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소율의 세상도 또 한번 변화할 것이다.
아기와 함께
나의 모든 것도 함께 변했다
아기와 함께 나의 모든 것도 함께 변했다. 좋아하는 카페의 기준이 변했다. 예전엔 조용하고 모던한 곳이 좋았다면, 이제는 아기가 칭얼대거나 사운드북을 보아도 남들에게 크게 방해되지 않을만큼 적당히 시끄럽고, 비록 인테리어가 옛날 다방같을지언정 부드럽고 안전한 소파 자리가 있는 곳이 좋다. 공공장소에 갈 때에는 유아휴게실이 잘 마련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한다. 아기의 기저귀를 화장실에서 교체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민망한 일이다. 그래서 여느 엄마들처럼 나 또한 백화점과 복합쇼핑몰과 키즈카페를 자주 간다.
나는 평생 아기를 좋아하고 예뻐했던 적이 없다. 그런데 이제는 나의 아기만 예쁜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아기들도 너무나 예쁘다. 어째서 지금까지 나에게는 이 예쁨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어째서 이제는 친구의 아기들까지 못 견디게 귀여워서 이름을 기억하고 안아보고 싶고 선물까지 사주고 싶은 것일까. 전혀 관심 없었던 아기 옷이나 장난감들에도 자꾸만 시선이 가고, 아름다운 풍경에 아기가 추가되면 그제야 풍경이 살아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예쁜 것을 인지하는 내 마음 속 눈이 하나 더 뜨였나 보다. 세상에 예쁜 것이 한층 많다.
목표는 없어도 좋다.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예민하던 성격이 좀 느긋해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나는 지금껏 목표달성형 인간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러나 참 좌절스럽게도 최근 몇달간은 내가 더 많이 아는 것도, 더 치밀하게 계획하는 것도 아기가 잘 크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대신 중요한 것은 오직 시간, 시간, 시간 뿐이다. 아기는 정말 영원히 못할 것 같았던 행동들을 어느 순간 해내고, 평생 모를 것 같았던 말들을 알아듣는다. 젖도 못 빨던 아기가 눈을 맞추고 뒤집고 기어다니고 일어서고 웃고 옹알거리는 것은 내가 목표를 이루어서가 아니라 그럴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율이 가족과 건강한 애착을 형성하고 사회성을 갖추는 것 또한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학습목표의 달성이 아니라, 내가 소율과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에만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되면서 육아휴직 동안 나도 이것저것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접어두게 되었다. 내 평생 안고 살았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오직 우리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소율 못지않게 나에게도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기는 선생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무엇을 하던 기다려주고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뿐. 어쩌면 이것은 육아 뿐 아니라 나의 일과 생활에도 필요한 자세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올해는 육아일기를 꼼꼼히 기록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으로 나의 1년을 판단하려 하는 건 정말 고질병..)
그 밖에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많다.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게 되고, 흔히 뉴스에서 보는 교통사고 소식에도 그 가족은 어떨까 하며 마구 눈물이 나고,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만 '나'를 위한 소비가 줄어드는 것 등.. 정말이지 180도 달라져 버린 나의 세계. 이 세상이 뒤집힌 것인지, 내가 뒤집힌 것인지, 아니면 어쩌면 나는 여태껏 거꾸로 매달려 살았던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