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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Jun 07. 2018

너의 감기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


그런 날이 있다. 너에게 천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은 날. 내 일과 내 여가를 희생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도 행복한 것처럼 느껴지는 날.

네가 아픈 날은 특히 그렇다. 그러나 마음에 비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아무것도 없기에 나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네가 울면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찢어지고, 네가 웃으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나는 자꾸만 네가 아픈 것이 내 탓 같아서 몇 번이고 네게 말한다.

“엄마가 미안해..”

 
외출했다 돌아와서 손을 안 씻었던 것이 미안하고, 자꾸만 이것저것 입에 넣는 걸 보고도 그대로 뒀던 게 미안하고, 바닥 청소를 미뤘던 것도 미안하고, 네게 강행군일 것을 알면서도 이리저리 외출했던 것도. 온통 다 미안해.

오늘 태어나 처음으로 감기가 걸려 병원에 다녀온 소율은 하루종일 아주 모범적인 사이클로 낮잠을 두 번 잤고, 목욕하고 나서 8시에 천사처럼 잠들었다. 평소 이렇게 잘 자는 아기가 아닌데 아무래도 약기운을 받은 것 같다. 다행이면서도 안쓰럽다. 나의 아가, 나의 행복, 나의 보물, 빨리 나아서 나를 타넘고 당기고 매달리고 소리지르는 씩씩한 너로 돌아와 주렴. 내일 아침 최고의 컨디션이 되어 눈코입에 잔뜩 웃음을 담고 팔로 아기침대를 팡팡 두드리며 나를 깨워 주렴.


내일 아침에 부디 이 표정을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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