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천국
떠나야만 했던 엄마
사실, 잠시라도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계속되는 수면 부족이 큰 원인이었다. 아기가 10시간 통잠을 잔다고 좋아했던 90일 무렵엔 '100일의 기적'이 정말 찾아왔다고, 앞으로 나의 삶의 질도 나아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때의 통잠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뒤집기, 이앓이와 함께 밤새 몇 번씩 깨는 수면 퇴행을 겪으며 통잠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출산 후 연속으로 4시간을 자본 것이 손에 꼽았다. 신생아 때 부터 계속되는 새벽 기상으로 잠귀가 예민해진 나는 아기가 깨서 울지 않더라도 그저 뒤척이는 소리에도 번쩍번쩍 깨버리곤 했다. 아기를 재운 후 나도 침대에 누워 바로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 또한 잘 못했다. '아기가 금방 깨면 어차피 나도 깨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편안하게 눈을 감지 못했다. 내 소리에 아기가 깨버릴까봐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도 없어서 항상 목석같은 자세로 가만히 자느라 자고 일어나면 등과 허리 여기저기가 결렸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소율을 낳은 지 6개월,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해외로 나가고도 싶었지만 빨리 돌아와야 하는 만약의 경우가 생길까 봐, 결국 타협하여 제주도를 가기로 했다. 사실 이 곳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어디를 가든 전혀 상관 없었다. 예전에 홑몸으로는 오전에 계획해서 오후에라도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고작 3박 4일간의 제주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많은 계획과 준비가 필요했다. 우선 어렵게 시부모님께 육아 부탁을 드려 승낙을 받았다. 아기침대를 시댁으로 배송했고, 몇 주 정도 시댁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소율의 낯가림을 완화하기 위한 작업을 했다. 그럼에도 걱정은 한가득이었다. 내가 정말 어렵게 만들어 놓은 '누워서 자는' 수면 습관이 깨어질까봐 걱정이 되었고, 한창 이유식을 연습하는 시기인 것도 마음에 걸렸고, 요즘 들어 부쩍 나를 알아보고 앵기는 것도 신경쓰였다. '그냥 데리고 갈까...?' 라고, 여행날이 다가올수록 고민했다. 내 한 몸 편하자고 너무나 작은 아기를 낯선 곳에 떨구고 가는 것 같은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 이럴거면 애당초 왜 가겠다고 했는지, 너무 벗어나고 싶지만 결코 그러고 싶지 않은 두 가지 마음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느낌이었다.
고작 편하게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다행히 제정신이었던 남편이 날 말려준 덕분에 결국 일정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막상 아기를 맡기고 시댁 문을 나서니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았다. 거짓말처럼 소율이 걱정이 하나도 안 되었다. 어머님이 어련히 잘 봐주시겠지~! 도착한 첫날 저녁으로 흑돼지구이를 먹으며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에 들떴다. “오빠, 나는 제주도에서 살이 이만큼 쪄서 돌아가도 좋아! 어차피 집에 가면 한끼 챙겨먹기도 힘든 걸.” 나는 깡총깡총 뛰어다녔다. 하필 우리가 있는 내내 제주는 비가 오고 날이 흐렸다. 돌아가는 날까지 푸른 바다는 결국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빗소리를 듣고 풀내음을 맡았고 미술관에 갔고 작은 우산 속에서 팔짱을 끼고 걸었다. 그것은 충분히 즐거웠다. 아기 없이 여행하면 천국일 줄 알았는데 이것이 웬걸, 생각보다 더욱 더 천국이었다. 둘만의 여행은 궂은 날씨 따위가 방해하기엔 너무나 오랜만이었고 지나치게 행복했다. 매 끼니마다 실컷 먹고 아무 걱정 없이 잠을 잤다. 딱 연인 시절로 돌아간 느낌. 고작 편하게 자고 먹는 것만으로도 금세 신혼이 되는구나 싶었다.
나중에 소율이랑 같이 오자.
그렇게 행복한 와중에 우리가 여행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다름아닌 “나중에 소율이랑 같이 오자”였다. 어딘가에 갔을 때 아기띠나 유모차에 있는 소율 또래의 아기들, 아장아장 걷는 좀더 큰 아기들을 만나면 우리는 눈을 못 떼고 바라보았다. 모든 아기들의 얼굴에서 소율이 보였다. 아기와 함께 온 부모들을 보며 나는 이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불편함이 부러웠다. 아기띠를 하고 걸을 때 아파오는 어깨와 더워지는 가슴팍이, 공공장소에서 아기가 칭얼댈 때의 눈치보임이, 식당에서 장난감으로 기분을 맞춰 주면서 정작 나는 밥을 후루룩 마시듯 먹어야 하는 정신없음도 그리웠다. 그 불편함을 피해 도망치듯 왔지만 사실은 그 불편함을 다 감수할만큼의 행복도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소율은 그저 내가 돌봐야 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소율은 이미 우리에게 가족이었다. 불편하다고 헤어질 수 없는, 미워도 돌아서면 애틋한, 아무리 서로 달라도 함께해야 하는, 정말 가족.
아기를 낳으면 부부의 행복이 사라질까요?
여행 후반부로 접어들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소율이 더 보고싶어졌다. 소율도 말은 못하지만 얼마나 내가 보고싶을까 생각을 하니 더욱 더. 나는 비로소 ‘아기를 낳으면 이 행복이 없어질까봐 고민이 된다’는 주변의 아기없는 부부들의 고민에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다면 아기를 낳는다고 해도 그 행복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지 어마어마한 육아의 과업에 둘만의 행복은 잠시 가려지게 될 뿐이다. 둘만 남겨지자마자 우리는 연인 시절과 똑같이 행복했다. 아니, 사실은 그보다 더 행복했다. 다른 종류의 행복이 추가되었으니까. 인생에서 ‘정말 사랑하는 누군가’가 한 명 더해지는 것만으로 사람은 한층 행복해진다. 언제나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쉽고 무료한 일이었는데, 이번엔 정말 즐거운 여행에도 불구하고 미치도록 돌아가고도 싶었다.
이제 함께 가, 우리 가족.
그렇게 우리는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토록 그리웠던 나의 일상은 여전히 피곤하고, 반복적이고, 하는 일 없이 바쁘고, 큰 인내심을 요한다. 하지만 아기를 사진으로만 보아야 했던 시기를 겪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조금이나마 체력을 회복해서인지, 눈 앞의 소율이 한층 예쁘다. 한번 여행을 다녀와 보니, 앞으로는 왠만하면 소율과 함께 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소율이 우리랑 같이 안 가겠다고 할 그날까지는. 이제 부부 여행은 아쉽지만 노후(?)를 기약해야겠다. 그 때가 어쩌면 우리의 두 번째 신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