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정말 언젠간 익숙해지는 거 맞나..
오전 7시 30분, 먼저 일어난 아기가 꼬물꼬물 침대로 올라와서 나를 깨운다. 안 떠지는 눈을 비비며 끔뻑 끔뻑, 눈을 떠 아기를 본다. 아 피곤해 죽겠는데 그래도 넌 너무 귀여워... 일어나서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먹인다. 그리고 아기 아침밥을 만든다. 오늘은 토마토 파스타를 처음으로 만들어 준다. 잘 먹으련지. 파스타 면이 익는 동안 쓰레기통을 비우고 이곳 저곳 늘어져 있는 작디작은 쓰레기들을 분리해서 갖다 놓는다. 비닐은 비닐통에, 플라스틱은 플라스틱통에, 종이는 종이함에. 그러는 동안 아기는 식탁 부근에서 혼자 서랍을 뒤지며 논다. '아 저거 이따가 또 치워야겠군..'하는 생각에 머리가 아프지만, 그래도 부엌 쪽으로 안 오는게 다행이다. 다 익은 파스타를 건져서 토마토와 파프리카, 소고기와 함께 팬에 볶고, 혹시 양이 적을까 봐 미니돈까스도 한 조각 꺼내 굽는다.
“맘마 먹자~”하니까 소율이는 신나게 기어와서 자기 의자에 앉는다. 식판을 놓아 주자 눈이 반짝 반짝, 역시나 돈까스부터 집는다. 고작 8개의 이로 돈까스를 오물오물 씹어 먹는다. 돈까스를 다 먹고 파스타를 먹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난장판이 시작되었다. 빨간 토마토 소스와 고기, 야채, 면이 여기저기 다 떨어진다. 나는 그걸 치우면서 동시에 아기가 먹는걸 도와준다. 중간에 아기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끄응 한다. 소율인 꼭 아침먹으면서 응가를 한다-; 화장실로 데려가 응가를 씻겨주고 새 기저귀를 채운 후 다시 식탁으로 와서 2차전 시작. 이 과정은 요즘 약 40분 쯤 걸린다.
밥을 다 먹이고 식탁 주변에 흘린 음식물들을 다 치우고 물티슈로 바닥을 닦은 후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자 오전 9시 30분. 이제 아기랑 놀아줘야 하나 싶긴 한데, 아침에 일어나 두시간 내내 빈 속으로 계속 일한 나는 너무나 허기지다. 허겁지겁 반찬을 꺼내고 달걀 프라이를 해서 밥과 함께 후루룩 먹는다. 냉장고의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한잔을 마신다. 설겆이는...? 모르겠다 나중에 하자. 지금은 도저히 못해.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집안일은 회사일과 너무나 다르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빨리 끝내면, 이제 일이 없어졌으니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오히려 그렇게 빨리 마무리할수록 다음 해야 할 일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생기는 것이다. 요리를 하면 씻을 그릇이 생기니 설겆이를 해야 하고, 설겆이를 하면 주변을 정리해야 하고, 정리하고 나면 빨래통에 빨래가 쌓이니 빨래를 해야 하고. 나는 지금 집안일을 하면 할수록 계속 다른 집안일이 생기는 이상한 순환고리에 갇혀 있다. 초보 엄마, 초보 주부, 초보 유부녀인 나는 아직 이 사이클을 전혀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끌려가듯 수행하고 있을 뿐. 밑 빠진 독이란 걸 알면서도 계속 물을 길어와서 붓는 느낌이다. 아아 정말이지 집안일이 이렇게나 힘든 거라니...!! 이렇게 지루한 거라니.. 게다가 이렇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 세상에 있을까...?
어쨌든 나의 아침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점심 즈음에는 아기와 한번쯤 외출을 한다. 드디어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다. 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는 유일한 시간이 ‘집에 없는 시간’이라니. 매우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 회사에 가면 회사일을 해야 하듯 집에 가면 집안일을 해야 한다. 언제쯤이면 예전처럼 집이 다시 ‘휴식공간’이 될 수 있을까? 영국에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이런건 또 영국..) '집안일 하는 남자의 성적 매력이 감소한다'고 했다. 단연코 사실이 아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안일 해주면 그렇게 멋지고 사랑이 퐁퐁 샘솟을 수가 없는데 무슨.
나는 내가 집안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막상 하면 잘 할거라 생각했었다.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먹고 집에 들어오던 시절의 집안일'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집안일은 이틀에 한 번 청소포와 소소한 그릇 씻기 정도로도 충분했다. 집에 24시간 살면서 집안일이 내 주된 과업이 되자 나 진짜 못한다. 청소를 30분 넘게 반짝반짝하게 해놔도 5분 후엔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고, 끊임없이 설겆이를 해도 한 시간 후엔 또 그릇이 나오고, 뭐 이런 일이 있어..!?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할수록 할일이 더 자주 많이 생기는 일이라니. 동기부여가 될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집안일 진짜 못하는 사람이다.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예전에 엄마한테 방 나중에 치우겠다고 짜증냈던 게 후회스럽다. 엄마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 가사도우미를 불렀다. 그런데 그분이 하루종일 계시는 게 아닌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매우 빠른 속도로 집안을 난장판 만드는 꼬맹이가 있기 때문에.. oTL... 이건 도저히 내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내려놓아 '완전 깨끗한 상태'를 포기하는 대신 '어느정도 지저분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야겠다..inner peace... 라며 다짐했는데 그것도 잠시 뿐, 나는 한시간 후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을 알면서도 또 주섬주섬 치우고 있다. 그래서! 요즘엔 장비에 의존하기로 했다. 일단 무선 청소기를 샀고, 무선 물걸레 청소기와 식기세척기를 들였다. 그랬더니 효율이 증가하면서 아주 눈꼽만큼이지만 자신감이 돌아왔다. 이제 미루고 미뤄 왔던 건조기를 살 차례인 것 같다. 돈이야 좀 들으라지. 이 개미지옥같은 집안일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살거다. 이 기나긴 고생과 고민의 끝이 고작 쇼핑이라니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집안일은 역시 템빨..!!!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