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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ding Lady Apr 16. 2019

드디어, 나도 자유부인!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엄마의 사생활

소율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처음에는 나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불고 했지만, 자기의 하루 중 일부를 선생님과 친구들과 보내면 된다는 것을 곧 받아들인 소율이는 이제 나름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태어나 평생을 매일매일 24시간 꼬박 함께 붙어 있었던 게 무색하게도, 고작 한달 만에 내가 알지 못하는 놀이들과 관계들이 소율이의 일상으로 자리잡았고 그와 동시에 나의 삶 또한 나만의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침 10시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나는 드디어 "자유부인"이 된다. (유후~~!) 일단 필라테스를 간다.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린 내 몸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시간. 필라테스가 없는 날엔 마사지를 받거나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다. 예전부터 활동하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도 복귀했고 합주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들과 점심 약속을 잡고, 언제나 정신없이 만나 정신없이 헤어졌던 육아 동지 엄마들과도 우아한 모습으로 브런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왠지 나의 힐링만을 위해 이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자기계발을 위해 방통대에도 등록해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작성한다. 마트까지 아기 들쳐메고 다니기 힘들어 예전엔 거의 인터넷 배송으로 주문했던 식재료들도 이제는 거의 직접 가서 장을 봐 온다. 아기가 오기 전까지 청소, 빨래 등 소소한 집안일들을 하고 저녁을 만들어 놓는다. 아기가 하원하는 오후 3시 30분은 정말 빨리 돌아온다. 심지어 다음 달 부터는 더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관련 교육과정도 등록해서 수강할 예정이다.


바쁘다...! 아기 어린이집 보내게 되면 모자란 잠이나 더 잘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무척 가득차게 보내고 있다. 사실 17개월 소율이에게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는 것보다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쩌면 더 행복하고 편안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시간이 너무 금쪽같은 거다. 복직 전 아기와 함께하길 포기하고 얻은 시간에 그냥 퍼져 있을 수가 없다. 아주 조금이라도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아기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내 자식이 나를 자랑스럽게 느꼈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영원한 꿈임을 나 또한 이렇게 알게 된다.

필라테스 갔다가 장 보고 집에 돌아간다.

그렇다. 비록 나의 24시간의 하루 중 아기 없는 6시간의 일상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게 필요한 것들로 차곡차곡 채워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의 세상은 온통 너인 것이다. 그 작은 존재가 나를 움직이게 하고 동기부여를 한다. 복직한 후 널 저녁과 밤에만 만나게 된다 해도, 사정이 더 여의치 않아져서 널 일주일에 한 번만 보게 된다 해도 나의 세상은 여전히 너일 것이다. 상상조차 힘든 일이지만 혹시나 네가 먼저 나를 떠난다 해도 나의 세상은 여전히 네가 가득할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너는 이미 나의 우주인 걸.




우주를 잃어버렸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
2019.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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