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미친 생각을 할 줄이야..
소율이를 가졌을 때, 낳았을 때, 첫 생일을 맞았을 때 까지도, 앞으로 결코 둘째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임신-출산-육아가 상상 이상으로 고단하고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고, 반면 소율이가 주는 행복이 넘치면 넘쳤지 전혀 모자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낯설고 정신없는 나날들, 그 와중에 소율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소율이는 참 다정한 성격을 가졌다. 어린이집 친구가 울고 있으면 가서 안아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각자 좋아하는 인형이나 장난감 등이 뭔지 알고 있다가 그 친구가 오면 그걸 가져다 준다. 본인도 겨우 아장아장 걷는 주제에 자기보다 조금 작은 친구들이 걸음마를 하면 손잡고 같이 걸어가 주는, 도대체 누굴 닮아 이렇게까지 다정한지 궁금할 정도인 18개월의 소율.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소율이 어린이집 친구와 그 친구의 형이 놀이터에 왔다. 한참 놀고 있던 소율이는 그 친구가 유모차에 놓고 간 애착베개를 발견하고, 그걸 가져다가 친구에게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그 친구의 형이 소율이에게 “우리 유모차야! 저리 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소율이는 머뭇거리며 잠시 멈춰섰다. “뺏으려는 게 아니었어요. 가져다 주려고 했는데..”라고 말하는 눈빛으로. 나는 친구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많고 잘 챙겨주는 소율이가 안쓰러웠다. 그리고는 집에서는 자기 것을 동생에게 안 뺏기려고 싸울 게 분명한 그 형아가 밖에 나오면 ‘내 거’가 아닌 ‘우리 거’라고 말하며 대신 누군가와 맞서줄 수 있는 그 형제애가 부러웠다. 그날 이후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다정한 소율이는 어쩌면 엄마, 아빠로는 조금 부족한 게 아닐까.'
'평소엔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놀이터에 나가서는 서로 의지하게 되는 그런 같은 편이 있다면 소율이의 마음은 얼마나 더 든든해질까. '
'이렇게 정 많은 아이가 외동인 우리 부부에게서 태어나 그 흔한 이모도 삼촌도 없고, 당연히 사촌도 없는데 시간이 갈수록 더 외로워지지 않을까.'
'앞으로 분명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가 있을 텐데, 혼자 자라면 그 상황이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껴져 힘들어하지 않을까.'
'나중에 우리가 나이가 들어 약해질 때 소율이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을 가지게 될까'
하는 생각들. 사실 막상 소율이는 내가 이런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 살아갈 테지만 그래도 사랑하기에 자꾸만 하게 되는 생각들.
이런 생각들과 함께 요즈음 우리 부부는 종종 둘째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만약 정말 둘째를 낳게 된다면 그것은 나 자신보다는 소율이를 생각한 결정이 될 것이다. 나는 당연히 더 힘들어질 것이다. 출산 후 이만큼 견딤으로서 편해진 것만큼의 시간을 또 견뎌야 할 것이다. 다시 일하러 가기도 어쩌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견딤이 다정한 소율이, 외롭지 않은 소율이, 울어도 금방 다시 웃는 소율이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야. 복직이야 조금 늦게 해도 크게 뭐 달라질까. 아아, 소율 앞에서 자꾸만 온데간데 없이 숨어 버리는 나의 이기심.
한편 처음에 아무 계획 없이 생겨 마음에 두려움만 가득했던 소율이가 이렇게 내 삶의 행복이 된 걸 생각하면, 모든 걸 알고 결정한 둘째가 있다면 우리가 더 행복하면 했지 덜하진 않으리라 하는 논리적인 추론을 해 본다. 다들 둘째는 훨씬 편하게 키운다고 하던데 둘다 외동으로 자란 우리 부부는 어쩌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 더 헤멜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지금도 욱해서 소율이한테 화낼 때 있는 인내심 부족하고 모난 성격인데 둘이 되어 배로 힘들어지면 날 통제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우리에겐 사랑이 있으니까, 한 명이 더 생기면 사랑을 쪼개어 나누는 게 아니라 사랑이 그만큼 더 커진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 그리고 시간은 언제나 정직하게 흘러가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