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안 했을
어렸을 때 엄마가 어딜 나갔다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왠지 불안하면서 무서운 생각이 들곤 했다. ‘혹시 날 버리고 도망간게 아닐까?’ 지금 생각하면 엄마가 진짜 심각하게 바람나지 않는 이상 멀쩡한 가족과 아파트를 두고 도망갈 리 없지만, 어쩌면 어린 나의 시선에서 엄마는 도망갈 이유가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젊고 돈도 잘버는데 이 누추한 집으로 들어와서 말도 잘 안 듣고 떼만 쓰는 나를 챙겨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그때의 나는 몰랐는지도. 퇴근하고서 내 밥을 차려주고 집을 청소하고 모인 빨래를 하는 엄마 모습이 내 눈엔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는지도. 그렇다고 아빠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고.
지금 돌이켜보면 새삼 그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 걱정이었는지. 아기를 맡기고 아무리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들 몇 시간만 지나도 보고싶어서 안달이 나는데. 내가 아무리 돈을 번들 자꾸만 내 필수품이 아닌 네 사치품을 사게 되는데. 나는 라면을 끓여 먹는 한이 있어도 너에겐 국과 반찬을 꼬박꼬박 차려주게 되는데. 설령 지금 있는 이곳이 지옥이라 한들 소율을 버리곤 한 발짝도 갈 수 없는 이 마음을 그때의 난 조금도 몰랐었다. 집안일 더미 따위야 얼마든지 있으라지. 네가 아무리 울고 보채 보라지. 나는 결국 잠든 네 보송한 이마를 쓰다듬으며 천상의 행복을 느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