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부끄럽지만 어릴 때 나는 청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불결한 것을 보면 못 견뎌 했다. 굴러다니는 먼지를 보면 기겁을 했고, 집 대청소 날 엄마가 가져다 놓으라고 쥐어준 꽁꽁 싸맨 쓰레기봉투를 드는 것조차 싫어했다. 옷에 얼룩이 생기는 것이 정말 싫었지만 그를 처리하고 싶지 않아 했다. 놔두면 지우기가 더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해놓아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는 일이 허다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지금은 이와 같은 병적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숱한 자취경험으로 이제 일인분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휴일이 되면 밀린 집안 청소를 하곤 한다. 다른 것들은 능숙하게 해내지만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냉장고 청소일 것이다. 사실 아주 끔찍이 싫어할지도 모른다. 1인 가정이라 요리를 최소화하여 먹고살고 있는데,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나는 때 지난 음식들이 가끔 튀어나온다. 곰팡이를 달고 있는 정체 불명의 음식을 처리하는 것은 여간 고약한 게 아니다. 물론 싫다고 해서 방치해 놓지는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주기적으로 청소하는 편이다. '청소'라는 냉장고 상태를 직면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지 않으면 가끔 엄청난 괴물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인연을 함께 했었던 한 친구 a가 있다. 그 친구는 갈등 상황을 직면하는 것을 별로 좋아진 않았다. 그리고 '왜 굳이 불편함을 입 밖으로 꺼내서 일을 크게 만들어야 하냐'는 주장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는 종종 본인 스스로를 평화주의자, 혹은 회색론자나 중도자와 같은 모호한 포지션에 놓고 싶어 했는데, 하필 내가 지독한 entp(mbti가 요즘 핫하더라)였던 터라 그의 모토를 견디지 못했다. 덮어놓기 보다는 까놓고 이야기해야 해결되는 편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의견의 합의점을 찾아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친구가 참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고, 함께하기 위해 그를 상당부분 맞춰주게 되었다. 그 친구 또한 갈등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나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그 친구는 막연한 태도만 유지했고, 나는 더이상 관계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었다. 찝찝한 마음을 숨긴 채로 수박 겉핥기 식의 일상적인 대화만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인연은 오래가지 못했고 예상처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특별히 부딪히는 게 없었던, 착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의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마냥 덮어놓고 있었던 '우리는 맞지 않는다'는 진실이 오히려 서로를 밀어냈던 것 같다. 관계가 정체되고 혼탁해져 오는데도 우리가 막연하고 모호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던 피터슨은 모호한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호한 태도는 아마 두려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할 때 숨을 곳을 제공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두려운 진실을 신경 쓰지 않고 싶다고 해서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회피는 그를 받아들이고 실질적인 부족함을 파악해야 하는 책임을 막연한 가능성으로 남겨 두는 것에 불과하다.
많은 곳에서 인용되는 잭 켄트 작가의 <용 같은 건 없어> 동화책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아침, 빌리 빅스비라는 꼬마가 침대에 있는 용을 발견한다. 그때만 해도 용의 크기는 아주 작아서 고양이만 했다. 빌리는 엄마한테 달려가 용이 나타났다고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용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용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며 빌리의 팬케이크를 몽땅 먹어치우고 집 전체를 가득 차지할 정도로 거대해진다.
그때 용이 집을 통째로 들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데, 퇴근한 빌리의 아빠가 빈 공터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곧바로 우체부에게 집이 어디로 갔는지 수소문하여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도로에 있는 용을 발견하는데, 용의 머리 쪽으로 기어올라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게 된다. 엄마는 여전히 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빌리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용은 분명히 있어요, 엄마"
그러자 용은 작아져서 고양이만 한 크기로 변한다. 이제서야 가족 구성원들은 용은 존재하고 고양이만 한 용이 거대한 용보다 사랑스럽다는 데에 동의한다. 그 뒤로 왜 조금 전에는 용이 그처럼 커졌는지 묻는 엄마의 물음에 빌리는 작게 속삭인다. "주목받고 싶었겠죠"
이처럼 우리는 자주 어떤 상황과 관계에서의 갈등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를 직면하여 해결해 나갈 것인지, 다음으로 미룰 것인지, 피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만약 당신이 문제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다면 먼저 문제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그를 인정하려는 용기가 설령 없더라도 스카이 다이빙을 하듯이 내질러야 한다. 용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고양이만 한 작은 용이 더 이상 커지지 않고 사랑스럽게 당신을 쳐다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지금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목적지를 자연스럽게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목적지는 보통 스스로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빨리 냉장고에 썩어가고 있는 사과 두 개를 빨리 처리해야겠다고 목적을 설정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