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빅마우스'에는 멋짐으로 무장한 이종석이 나온다. 그의 아내 김윤아 역시 멋진 모험심으로 몸도 아끼지 않아, 막판에는 암에 걸려 죽는다 (굳이 비밀을 알아내겠다며 보호장비 하나 없이 무너지는 동굴로 들어갈 때 왜 저렇게도 재는 무모할까 싶었는데, 죽는 명분이 필요했던 장면이었다는 걸 끝나고 알았다)
장면 중에는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버지보다는 이종석과의 시간을 보내는 씬이 많았다. 이종석의 흐르는 눈물의 절제된 슬픔보다 내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돌아서는 모습에 더 감정몰입이 되었다.
딸이 죽는다는데, 딸과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슬픈 와중에도 허옇고 잘생긴 이종석에게 마지막 시간을 할애하는 장면이 안타까웠다. 통곡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저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나 같으면 이종석의 멱살을 잡고 살려내라고 했을 텐데. 워낙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히어로물이었기 때문에 이종석이 통쾌하게 악당을 물리치는 거에만 집중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고생만 하다 떠나는 김윤아와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는지는 들어내지 못한 아버지의 심정을 표현하기에 러닝타임은 바빴다. 그저 나 같은 부모의 시선을 가진 시청자만이 아버지의 입장을 한번 돌아보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둘째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 드디어 관람연령이 되었으니 우리 가족도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아름다운 천상의 목소리 한번 들으러 가자며 '파리나무 십자가 합창단'의 공연에 갔다.
무대 위에는 오로지 피아노 한 대,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하는 어른 한 명이 있다. 뜨거운 박수소리와 함께 무대 위에 하나둘 아이들이 나와 줄을 선다. 앞줄은 키가 작은 어린 소년들부터 나오고 맨 뒷줄은 키가 큰 소년들이 차례대로 천천히 나와 줄을 선다.
피아노 연주와 오롯이 아이들의 목소리 하나만으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아이들 연령의 성장기에 따라 달라지는 음역대로 변성기 이전의 아이들만이 가진 귀한 목소리였다. 두 아이들도 노랫소리에 푹 빠져 듣고 있어서 난 속으로 ‘다행이다. 이참에 다른 음악공연도 보여줘야겠다’며 엄마욕심을 내고 있었다.
다음 곡은 합창단 중 가장 키가 작고 둘째 또래로 보이는 소년이 앞으로 한발 나와 솔로를 하고 있었다.
그때, 둘째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 엄마, 재는 엄마 어디 있어? ”
나는 빵 터지는 웃음을 참고 “아마도 파리에 있을걸, 공연할 때는 엄마 없이 합창단끼리만 비행기 타고 와. ”
엄마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둘째는 멀리서 온 저 아이가 과연 엄마랑 같이 왔는지 안 왔는지가 궁금했던 거였다. 걱정이 된거다. 일곱 살인 자기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엄마와 떨어져 다른 나라에 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둘째가 소년들이 엄마 없이 한국에 왔다는 걸 걱정하고 있을 때, 나는 소년들이 미동 없이 노래하는 것이 놀라웠다. 무대밖에서는 한창 뛰어놀고 재잘거리며 몸으로 노는 어린 소년들인데, 오래 서서 손을 옷 속에 넣고 한 자세로 저렇게 아름답게 노래를 하다니, 대견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합창단이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소년들을 훈련시키는지 교육의 비밀이 몹시도 궁금했다.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소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렇게 각자의 입장에 따라 내 마음 같이 느껴진다.
그 후로도 우리 가족은 소년들의 목소리에 반해 겨울이면 한 번씩 공연을 찾아갔다. 둘째가 초등학생이 되고 '빈소년 합창단' 공연을 보았을 때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더 이상 소년들을 걱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