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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Oct 26. 2024

개무섭다

마음채집

여름의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던 날.

난 레이스가 달린 양산을 들고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내 뒤로 강아지를 데리고 걷는 사람이 있었고, 내 앞으로도 강아지를 데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마주 오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를 먼저 보내고 피하기 위해 가운데 길로 비켜 걸어갔다. 갑자기 두 마리 강아지가 서로 마주치자 마주 오던 큰 강아지가 짖기 시작했다. 졸지에 강아지들 사이에 있다가 순간 놀래며 “깜작이야 아 씨~”하고 크게 발음이 쏟아져 나왔다.


개 짖는 소리로 갑자기 놀라는 바람에 '씨' 다음에 '발'자를 발음할 뻔했으나, 욕을 안 한지 오래되어서 그런지 나이에 걸맞게 다행히 '발'자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동네이고 중년여성의 품격을 지니고 있어야 했기에 차마 뒤에 오는' 발'을 발음하지 못하고 '씨'를 오래 끄는 것으로 '발'을 묵음처리 했다.

하지만 듣는 개주인 입장에서는 내가 '씨' 자만 발음했으나, 마치 '발'도 함께 발음한 것 같은 뉘앙스는 읽은 듯 자신의 강아지를 조용히 하라며 나무랐다. 워낙 '아 씨~'가 놀람, 화남, 욕 나옴의 감정이 섞인 함축적 의미를 내가 아주 강하게 뱉어냈기 때문에, 아마 개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요즘엔 집집마다 거리마다 강아지, 고양이를 안 키우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 혼자 있어 심심하지 말라고 키우기도 하고, 싱글인데 동물과 함께 지내거나, 아이는 없고 동물을 태운 유모차를 끄는 부부도 있다. 그렇다 보니 애들과 동물이 같이 있는 집과 대화를 하다 보면 아이 이야기를 하다가 동물 이야길 하다가 해서 누구? 개? 고양이? 애들? 이렇게 중간중간에 주어를 물어 사람인지 동물인지를 확인을 하고 말을 이어가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가족과도 같이 평등해진 동물 복지는 개 편한 세상, 개린이집, 동물병원등의 간판이 많은 것만 봐도 동물들이 가족의 일원이 된 지 오래다. 거리마다 강아지가 너무 많아 내가 거리를 두고 피해 다니는 수밖에 없다.  

 

이웃들 집에 놀러 가면 들어가기 전에 고양이, 강아지를 방에 넣어달라고 부탁한다. 테이블 밑으로 왔다 갔다 해서 발에 동물의 털이 느껴지면 난 소스라치게 놀라 '엄마야' 하고 자동적으로 의자 위로 올라간다.    

작은애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졸랐지만,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누군가의 돌봄이 있어야 하는데 네가 학교에 가거나 밖에 나가면 나머지 시간은 엄마가 신경을 써줘야 하기 때문에 , 엄마는 너희들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며 아이를 설득했지만, 사실 난 동물을 만지지 못한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는 개가 참 많았다.

집을 지키는 개 한 마리씩은 꼭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면 목줄의 쇠사슬이 팽팽해질 때까지 앞으로 나와서 나 좀 보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짖어대곤 했다. 주로 집을 지키고 키워지다가 밥상으로 올라오는 일은 시골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요즘처럼 집에서 키워지는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아니라, 집 밖에 따로 개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밥은 사람이 먹다 남은 걸 개밥그릇에 넣으면 게걸스럽고도 맛있게 먹었다. 개의 본능과 야생성을 지닌 동물로 짓는 소리 또한 우렁차고 까만 눈빛도 매서웠다. 개 있는 집 대문에 사람이 들어서면 개는 소리는 내서 집주인에게 알려준다. 그럼 주인은 문을 열면서 '누구 왔나' 하고 묻는 시골의 초인종, 보안 역할을 키우는 개가 했었다.    

 

내가 일곱 살 때 일이다. 사촌 언니, 동생과 산으로 밤을 주우러 가기로 했다.

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역시 커다란 개가 있었다. 대부분 개는 묶여 있으니 안심되었지만 우리가 지나가던 걸 본 개는 포효와 같이 짖어대는 바람에 산에 올라가면서도 내내 들렸다. 밤을 들고 산에서 내려오는 우리를 보고도 펄쩍펄쩍 뛰며 개는 짖고 있었다. 개가 꼬리를 흔들며 뛰는 것은 반가운 거라며 무심하게 지나갔다. 개의 검은 털이 햇빛에 반짝 윤기가 흘렀고 사냥개 같이 매서운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나는 무서워서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때, 개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언니는 내 손을 놓더니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가.

흩어져 도망가는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고 목줄 풀린 개는 짖으며 날뛰고 그야말로 골목에서 아이들과 개가 짖어대는 개판이 벌어졌다. 나는 개를 보고 너무 놀래 소리 지르고 도망가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내지를 수 있는 온갖 비명과 절규의 목소리로 울면서도 살기 위해 다시 일어나 앞으로 달렸다.


그 순간,  같은 개가 내 엉덩이를 물었다. 개소리와 아이들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어른들이 개를 잡았고 나는 그 이후로 기억이 없다.


자다가 일어났는데, 얼굴은 눈물 콧물이 말라 범벅이고 엄마가 엉덩이에 바셀린을 발라주고 있었다. 다행히 물린 자국은 크지 않았다. 심장이 계속 벌렁대고 있었지만, 엄마는 그 집 개가 그래도 순하다고 둘러댔다.

그 후로 그 집 개는 동네아이들에게 '미친개'로 불렸다.      


개한테 물린 일곱 살 아이에게 그 사건은, 이후로도 쭉 털 달린 것들은 보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는 동물기피 현상을 가져오게 된다. 강아지를 만질 때의 뼈 촉감은 밥상 위에서 보았던 개뼈가 연상되며, 털을 만질 때엔 개가 엉덩이를 물었을 때 저항했던 나의 손에 개의 털이 닿았던 촉감이 떠오른다.


그래서 지금도 난, 개 트라우마를 유지하고 있고 개가 갑자기 큰소리로 나를 향해 짖을 때면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린다. 목줄풀린 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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