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충청도에 살다가 전라도로 이사를 왔다. 온 지 며칠 안되었을 때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다. 시골에서 소도시로 오니 집 주변에 상가들이 많았다. 시골에는 슈퍼가 하나였고 과자, 과일, 야채 등 잡동사니등을 다 팔았다.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면 주로 두부 한모와 콩나물 300원어치. 달걀 2개 등을심부름 가곤 했었다. 이사 온 동네에는 다양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엄마는 슈퍼에 가서 '졸'을 사 오라고 했다. 난 가까운 슈퍼로 갔다.
“졸 주세요?”
“줄?”
“아니요. 졸이요”
주인은 빨간색 줄이 감겨있는 줄타래를 선반에서 꺼내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게 아냐? 줄 달라매.”
난 주인이 못 알아듣는듯해 다시 강하게 “쫄”이요 했다. 답답한 주인은 없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난 다시 집으로 갔다.
“엄마 졸 없데.”
“왜 없어 다른 슈퍼 가봐”
난 집에서 좀 더 떨어진 다른 슈퍼로 갔다.
“졸 있어요?”
“그게 뭔데?”
“잎이 길게 생겨서 파같이 생긴 거요.”
“파를 사려면 길 건너 야채가게로 가야지.”
시골슈퍼엔 온갖 것을 다 팔았기에 당연히 슈퍼로 갔다. 소도시는 상품들마다 분리된 가게들이 따로 있었다.
나는 길을 건너 한 블럭 넘어에 있는 야채가게로 들어갔다.
“졸 있어요?” 나는 이제 지쳐갔다.
“뭐 줄?”
“아니요. 잎이 길고 파같이 생긴 거요”
가게주인은 진열된 야채들을 보면서 이거? 하며 대파를 들어 올렸다. 내가 갸우뚱하자 이번엔 쪽파를 들어올렸다. "이거?" 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며 파종류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둘러보니 졸이 상자에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이거요?”
“앵? 부추?”
“부추가 뭐예요?"
”부추를 자꾸만 졸이라고 부르면 어떻게? “ 하며 봉지에 한주먹 넣어주었다.
나는 심부름하느라 진이 다 빠져서 신경질이 났다. 이름도 제대로 안 알려준 엄마에게 화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식탁에 내려놓으며 ”부추인데 왜 자꾸 졸이라고 해. 못 알아들어서 몇 군데 들렀는지 알아? “
”아니 그게 졸이지 왜 부추라고 부른다냐. “
그때 심부름을 호되게 겪고 나서 알았다. ’ 졸‘은 부추의 충청도 사투리였다는 것을. 나는 그때 슈퍼를 순회하며 배운 후로 절대로 부추를 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서울에 와서 지방출신들의 부추에 대한 에피소드가 펼쳐졌다. 비 오니깐 정구지 부침개랑 막걸리 한잔 하자며 대구가 고향인 친구가 말했다.
“정구지가 뭐냐?”
“정구지를 정구지라 하지 뭐라고 해”
“그니깐 정구지가 뭐냐고.”
“정구지? 몰라?”
우리의 답답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때 강원도가 고향인데 서울에서 우리보다 더 오래 지낸 친구가 말했다.
“부추 부추”
“앵? 부추는 또 뭐야?” 대구친구가 답답해했다.
“강원도는 '본추'라고 불러”
나야말로 부추에 대한 심부름 경험이 있어 바로 알아들었다.
“충남은 ’졸‘ 이라고 불러”
“뭐? 우리 진짜 표준어 쓰자. 얘들아. 우리 서울에 왔으니 앞으로는 서울말을 쓰도록 하자.”
국어사전을 찾아보고는 부추의 지역사투리가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졸‘도 그중 하나였다.
국어사전에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지역마다 ‘부추’를 부르는 말이 달라요.
‘푸초’는 평북 지역에서 ‘부추’를 부르는 방언입니다. 이처럼 지역마다 ‘부추’를 부르는 말들이 다양하게 있는데요. 강원 지역에서는 ‘본추, 불구’라고 부르고 경상 지역에서는 ‘정구지', 충청 지역에서는 ’쪼리, 쫄‘이라고 부릅니다. 그 외에도 제주 지역에서는 독특하게 ‘세우리’라고 부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