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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 Nov 09. 2024

도토리 마을

식물채집

가을 숲 산책은 고요함을 깨우는 소리가 있다. 여기저기에서 밤송이와 도토리들이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밤송이들은 걸음을 빨리 걷던 사람들도 밤송이 앞에서는 멈춰 보지만 이미 밤들은 어디로 가고 빈 밤송이들만 남아있다. 밤 따러 산에 많이 다녔다며 산에서 놀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길 주고받으며 나뭇가지를 들고 이리저리 찾는 어르신들도 있다.


밤송이가 떨어진 곳의 위를 올려다보면 밤나무의 큰 덩치에 놀란다. 햇빛을 받기 위에 산책로까지 가지를 뻗은 탓에 산길에는 밤송이들이 가득하다. 산에서 아무 돌봄 없이도 스스로 열매를 맺혀가며 익은 열매를 떨어뜨리며 밤나무는 산책하는 이들을 한번 더 머물게 한다.

낙엽을 밟는 바르락 소리와 밤나무 아래에서 밤을 찾았다는 들뜬 목소리들이 어우러진다.     

 

숲에 떨어진 밤에 신이 난 건 어르신들 뿐 아니라 나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청설모도 분주하다.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는 청설모는 이젠 사람들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나무를 옮겨다니던 청설모는 알밤을 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이 찾아냈으면 큰 알밤을 찾았다고 좋아할 만한 크기인데 청설모가 먼저 찾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작은 두 손으로 꺼다란 알밤을 들고 먹는 모습을 보고 싶어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청설모는 땅에 덮인 나뭇잎들과 작은 나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더니 잽싸게 나뭇잎을 해치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큰 알밤을 땅속에 집어넣고 뒤돌아 가버리는 게 아닌가.


땅에 저장해 두고는 기억을 못 한다는 다람쥐와 청설모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니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었다. '그냥 먹지. 땅에 묻어두고 돌아서고 나면 못 찾을 거면서. 방금 떨어진 통통한 밤이었는데.그냥 배불리 먹지.'

너의 깜박깜박하는 습관 탓에 묻어놓은 도토리와 밤들이 봄에는 또 새순을 피워내겠지.

난 떨어진 밤들을 주워 사람들이 가져가지 못하게 숲 안으로 멀리 던져놓았다.


밤나무 옆에는 참나무과 나무들의 도토리들도 떨어져 있다. 떡갈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잎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아직도 헷갈리지만, 자주 들여다보니 차츰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아이가 어릴 적 좋아해서 모은 '도토리마을' 시리즈 그림책이 있다. 토토리 모양에 팔과 다리만 그린 간단한 형태인데도 그 안에 개성과 특징이 모두 드러나 있다. 도토리 뚜껑은 각자 다양한 헤어스타일이 연출되고 열매엔 눈, 코, 입을 그려서 토토리 한알 마을 한 명의 캐릭터를 그려 넣은 것이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그림책에서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 작은아이는 유독 일본작가 그림책의 세심한 시선들을 즐거워했다.

‘엄마 이거 봐’하고 손가락을 가리켜서 보면 구석 바닥에 작가가 그려 넣은 떨어진 안경이다. 누구의 안경일까 상상하며 찾는 재미도 숨겨져 있었다.      


산에서 주운 도토리들을 종류별로 하나씩 손에 들고 왔다. 집에 오자마자 자랑하고 싶어 아이방으로 들어가 호들갑을 떨며 도토리들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나를 불렀던 것처럼 ‘이것 좀 봐’하며 하나씩 보여줬다. 그림책을 꺼내서 비교해 보니, 똑같다.

머리가 덥수룩하고 파마를 한 것같이 컬링이 있는 도토리는 떡갈나무다. 흔히 보이는 작은 뚜껑을 한 토토리는 신갈나무와 갈참나무. 뚜껑을 모자처럼 올려 쓰고 얼굴이 길쭉한 도토리는 졸참나무. 배꼽처럼 둥근 얼굴은 갈참나무다. 도토리들도 이렇게 모양이 다양하다니.


다람쥐와 청설모의 깜박으로 더 많은 참나무들이 숲에 자랄걸 생각하니 땅에 떨어진 도토리와 밤들이 모두 귀중해 보였다. 우린 가져가면 그만이지만, 숲의 열매들은 산짐승들에게는 겨울을 나는 먹거리가 되고 숲을 이루는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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