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주간>에 대하여

by 신잔디


오 월.

무기력의 <력>이 나를 동그랗게 말아버리는 달

밤새 내린 비와 천둥을 머금고

더 무거워진 나무


찐한 초록 잎에 뜬 물기를 만져서

손으로 비빈다 동그랗게


걷지도 말하지도 않는 오 월

맑게 빈 침묵 미음 두 개의 안에서

다만 멍하게 살이 쪘다.


-


오늘은 나의 무기력에 관해 말해보겠다. 일 년의 몇 주 혹은 짧은 달 동안 나는 무기력의 상태에 처하는데, 증상으로는 <바닥에 붙어있는 것> <말하는 일을 피곤하게 여기는 것> <평소보다 많이 먹고 무료하면 또 먹는 것, 그래도 자꾸만 무료하고 싶어 하는 것> 정도가 있다. 나는 무기력 주간에 접어들면 게으른 벌레처럼 바닥에 바싹 붙어서 먹이만 상상한다. 억지로 일어나기라도 했다간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예외적으론 달밤. 달밤이 오면 나의 무기력은 매우 술을 요구한다. 달 모양에 따라 당기는 술도 다른데 오늘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톱 달이 뜨는 날에는 으럿쳐쳐쳐 하고 일어나서 안 먹던 소주도 막걸리도 반갑게 잘 마신다. 달이 잘 안 보이는 날은 포도주를 마신다.




나는 평소보다 두배로 잠을 많이 자고 수면의 질도 좋아진다. 나의 무기력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이 기간에 나는 꿈 조차 꾸지 않는다. 꿈을 땋기도 귀찮은 것이다. 나는 이 진절머리 나는, 하지만 그것에 완전하게 도취되어 아무런 불안감도 없는 강렬한 나른함을 떨쳐내고 다시 땅에 ‘서서’ 걸어 다니기 위하여 수첩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취침 전 후로 스트레칭 하기> <물 많이 마시기> <연습시간 엄수>와 같은 끝이 없는 결심을 적어보지만 글자는 살아나지 못하고 그저 글자일 뿐인 생을 맞이한 채 무기력의 운명을 함께 맞는다.


한 번은 해를 쪼이면 육신의 무기력이 좀 쫄아볼까 싶어 과도한 광합성을 시도하였더니 그만 몸살이 나고 말었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나는 두꺼운 구름 같고 보드란 여름 바람 같은 땅바닥에 계속 붙어서 또다시 머리 안으로만 전쟁을 치른다.




요즈음 나의 무기력메이트가 된 집 앞 카페 식구 '뽀나' 1)나처럼 무기력한 표정의 뽀나 2)나의 책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뽀나 3)나와 함께 무기력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뽀나





백만 대열을 이루는 양진의 꽉 찬 기세에 매 시를 거듭할수록 전쟁은 치열해진다. "무기력- 그것은 나를 망치려는 악의 무리, 생의 적이다!" 하여 <무적파> "무기력- 그것은 마땅해야만 하는 필요의 휴, 몸의 말이다!" 하여 <무말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의 치열한 혈투 말미로 험난해진 진영을 잠재우는 천둥번개 소리. 그것은 바로 나의 이빨에 끼어들어 씹혀지는 뺑글이 고구마 과자 소리...






1)무기력주간에는 낮과 밤이 개성있게 바뀌어서 아침에 맥주를 마시는 일도 빈번하다. 2)무기력주간의 포인트 중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챙겨먹는 것>







아 – 오 월!

그것이 좀 지나가야 나는 일어나려나.

이 참혹한 내면의 전쟁을 그만 끝내줄 간달프가 어디서 안 오시려나-

하면서 오늘은 맥주잔에 영근 물기나 떠서 비벼보는,

나의 무기력의 오 월.




<무기력 주간>에 대하여

글. 신잔디

사진. 신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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