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도 눈이 하나 달려있다면
손에도 눈이 하나 달려있다면..
우리가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가장 가까운 것은 바로 스스로의 모습이다. 스스로를 보지 못하는 결여의 증상으로써 우리는 타인을 지나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윽고 타인에게 비추어진 내 모습을 진정한 내 모습으로 착각하는 것. 그것에 우리는 사사건건 히 관계라 핑계한다. 외면되는 속살은 으레 서럽다.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 말이 쉽지, 당최 쉽지가 않다. 나는 이렇다 싶으면 저렇고, 저렇다 싶으면 쩌-래지는 우주 최고의 변덕을 가졌다. 나는 별나지만 별나기만 하고 특별한 주관은 없으며 (결단코) 도덕적이지도 않다. 나는 게으르고 미련하며 어쩔 땐 가식적이다. 나는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제대로 아는 게 별로 없다. 그냥 생각은 많지만 질 좋은 생각은 부족하다. 나만이 알고 있는 내가 이토록 엉망진창이고나니 스스로 자신을 바라보기란 어렵다. 아무리 나 자신이래도 보기 싫은 것은 더 안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주 중 하나로서 나는 아주 못되고도 대단하게도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일랑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내는 능력'을 가졌다. 하. 맹새코 나는 잊었다. 잘 잊고 살았다.
남동생은 가족과 친지들이 몽땅 모인 자리에서 내가 완전히 잊어버린 과거에 관해 폭로했다. 때는 일천구백구십 년대 초. 땅 끝 바닷가에 이불가게를 하던 우리 가족은 매상이 훌륭하거나 축하할 거리라도 있을 때면 찾던 횟집이 있었다. 이름하야 돌고래 횟집. (물론 나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세상 물정도 모르던 그 주먹만 한 때에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게도 나와 남동생은 어느 날 돌고래 횟집 앞에서 돌 던지기 놀이를 했다. 내가 회심을 가하여 던진 돌은 가뜩이나 별도 많던 가을 밤하늘을 노옾히 날아 동생의 앙증맞은 눈 두 덩이로 떨어졌다. 타들어가는 엄마의 애간장처럼 뜨거운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간 그는 졸도 데시벨의 비명과 함께 바느질을 몇 방 당하고는 산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사건은 번개처럼 일어났고, 흔적은 번개모양 흉터로 남았다. 나는 그 당시 내가 동생을 죽였을까 봐 무서워서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서둘러 발뺌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돌을 던지고 혹은 피 흘리는 동생을 보면서 그 즉시 내 기억을 지워버린 것 일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최첨단이다. 나는 최첨단으로 기억을 지워버렸다. 다 큰 내 동생은 (왜 이제서야) 눈썹 끝을 가른 번개모양 흉터를 들이밀며 누나의 무정함을 폭로했지만 사실상 나는 무정한 짓 일랑 저지른 기억이 없는 무정한 누나인 것이다.
충격적 발언을 듣고 나는 며칠 동안 돌고래 횟집 앞 뜰을 상상했다. 그 안에 조무래기인 내 동생과 나를 놓고 돌 던지기 놀이를 시킨다. 그러다 큰 돌을 힘껏 던져 내 동생을 맞춘다. 그는 울고 나는 놀란다. 내 상상력은 며칠 새 점점 더 구체화된다. 처음에는 멀뚱한 회색 건물이던 횟집에 온갖 조경이 들어선다. 평평했던 길은 비탈길로 바뀌고 나와 동생의 선 위치도 여러 차례 바뀐다. 그러고 나니 짠! 모든 정황이 이토록 자연스럽다. 나는 기억을 만들어냈다. 최첨단으로.
최첨단인 나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은 단연 맥주의 맛이다. 오늘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새까만 맥주에 관하여 말하고 싶다. 가깝지만 먼 맥주. 부드럽지만 터프한 맥주. 아일랜드 기네스(Guinness).
1725년 아일랜드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s Gate) 양조장의 '아서 기네스'로부터 유래한 아일랜드 흑맥주 기네스(Guinness)는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맥주 브랜드 중 하나이다. 잘 녹인 마쉬멜로우처럼 쫀쫀하고 부드러운 거품과 스모키 한 향이 특징이며, 국내에서도 캔, 병으로 아주 다양하게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네스는 생맥주로 마셔야 그 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 아주 많은 펍에서 생맥주로 즐길 수 있다. 영화 <킹스맨>의 젠틀맨 '콜린 퍼스'가 심보 못 된 악당들을 한바탕 근사하게 무찌른 후 재킷을 탁탁 여미고 앉아 마시는 마지막 한 모금. 바로 그 장면을 흉내 내면서 마셔보자.
일단 잔에 따르면 금빛 기포가 유리잔을 파고 촤르르- 떨어진다. 기네스는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보다 한 번에 입안을 가득 채울 만큼 쭉 들이켰을 때 조금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잘 볶은 보리의 고소한 맛을 찾아 음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마셔보자. 스모키 한 향과 실크 같은 거품도 빠뜨리지 말고 면밀하게 느껴보자. 되도록 오래 두지 말고 빠르게 마셔보자.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자기 자신을 볼 줄을 알게 되는 것일까 고민하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냈다. 그것은 보기 싫은 나를 보고 싶은 나로 바꿔보는 것이다. 일단은 안 하던 짓을 해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타인을 대면할 때, 안 하던 짓을 감행하는 모습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흥미를 가져보기 위해 스스로에게 안 하던 짓을 좀 해봐야겠다고 결론했다. 오늘은 잘 안 쓰던 말을 새삼스럽게 뱉어 보는 것, 내일은 혼자서 좀 더 맛있는 것을 먹어보고 혼자서 좀 더 좋은 곳을 걸어보는 것. 남의 사연을 논하는 것만큼 내 사연에 대해 마음속 수다를 던지고, 늘 일어나는 별 것 아닌 일에도 쓸데없는 질문을 뿌리고 답을 키우는 것. (때때로 '답이 없는 질문'은 고민하는 시간 그 자체로 답이 되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간을 꼭 타인과의 약속처럼 때어놓는 것. 이 모든 성가신 노력을 스스로 습관처럼 칭찬해버리는 것.
물론 쉽지가 않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도 쉽지가 않다.
기억을 지우는 용기로,
나는 감히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칭찬이라 치부하고 싶다. 나는 지금껏 무수히 변해왔고 요즘 들어서는 매일을 다르게 극변 하는 나를 느낀다. 예전의 나를 기억할 수 없어져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손에 눈이 좀 달렸으면 좋겠고, 스스로 변해가는 나를 곧이 보는 것은 늘 그렇듯 어렵고도 어렵지만, 차라리 있는 눈도 질끈 감아버리고 아마도 내 이 모습 썩 괜찮을 거라고 정성 들여 믿어줘야 할 때가 있다. 엉망인 나에게는 다행히도 특별한 능력이 있다. 지우고 싶은 기억 일랑 지워버리는 용기가,
글. 신잔디
그림. AM327 (insta:am.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