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계 이야기
“요리의 신인가?”
“응?”
“몰랑이씨가 전쟁의 신 같은 신을 했을 성격으로는 보이지 않아.”
“그건 그래.”
“그래서 고대에도 음악의 신을 했나? 생각 중이었어.”
“에이, 설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악이 지겹다고 했는걸. 보통 음악의 신과 예술의 신 루트만 타도 사람들 음악 하기 귀찮아하잖아.”
“맞아. 좋아하지만. 자기가 갈갈되는 건 싫은 거지.”
원래 남이 떠먹여주는 게 맛있다. 그런고로 요리의 신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무튼, 레인 왈, 아폴론 이전의 중세에는 금성의 여신, 예술의 여신이었다고 한다. 왠지 여장을 하고 다니는 몰랑이씨도 웃길 것 같았다. 그는 그러고 보니 손재주가 상당했다. 지성의 신은 안 했을 거 같은데 은근 공예에도 조예가 있고, 미적 감각이 높은 걸 보면 그런가? 싶었다.
남신일 때보다 여신일 때의 몰랑이씨는 상당히 로맨틱하면서도 깐깐했다고 한다. 레인님은 중세에 만났을 때 이미 그가 여신의 신도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기사의 종자가 되었지만, 검술에 재능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꽃꽂이, 종이접기(종이학 천마리를 접어서 레인에게 주었다), 금속 공예 등등. 온갖 공예란 공예와 수예를 섭렵했다. 그 외에도 에이베르 가문을 떠나서 두 사람이서 오붓하게 살 때 미술과 예술까지 다 접했으니, 그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천재나 다름없었다.
사람을 대하는데 너무 어벙해서 아쉬운 점이 있어서 그랬지.
레인이 웃었다.
“한 번은 내게 결혼 반지를 직접 만들어서 줬어. 나는 그걸 지금까지도 계속 끼고 있어. 목걸이도, 귀걸이도. 다 그때 거야.”
“뭐?! 진짜야?”
“응. 그때에는 금이 더 귀했는데, 날 위해서 구해오더니 자기 손으로 뚱땅뚱땅 만든 거 있지? 꽤 재미있는 광경이었어.”
“와, 나도 다음에 직접 만들어줘봐야겠다.”
“안해봤어?”
“음, 우린 너도 알다시피 바깥에 나가는 것도 조심스럽잖아. 사라가 아토피가 항상 있어서.”
“그렇네. 원데이 클래스 같은 걸로 시작해서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
킥킥킥.
메마른 분위기에 평화가 찾아왔다. 투명 우산에 빗방울이 아름아름 맺힌다. 나나님은 무명씨를 생각했다.
“나나, 무명씨가 정말 미웠어. 그런데 이제는 그러려니 해.”
“왜? 나 같으면 다시는 다리를 못쓰라고 저주를 내릴텐데.”
“레인, 너도 불행과 불운을 곁에서 지켜봤다면 알 거야. 때 되면 알아서 내리막길을 간다는 걸. 그러니까 굳이 미워할 필요는 없어.”
“미친, 나 왜 그걸 못 떠올렸지?”
“넌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 좋아해줘서 고마워, 친구.”
두 인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씨는 잘못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그것에 대해서 더 의견을 낼 필요도, 덜 의견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녀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내리막길을 가더라도 오르막길을 가더라도 그것은 그녀 자신의 인생이었다. 매운 맛을 몇 번이나 봐서 두 인형도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중세의 마계는 훨씬 더 무서웠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몰랑이씨는 조금 안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미룽에 태어나지 말지. 천계 지향 국가에서 태어나지. 레인은 휠체어를 천천히 밀면서 산책길을 걸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왜 내 남편은 내게 모든 걸 말해주지 않은 걸까?
그녀는 항상 고대부터의 과거가 신경쓰였다. 그러나 그걸 말해달라고 할 때마다, 몰랑이씨는 이렇게 답했다.
“미안. 나 그 때의 너를 알아. 그래서 못말해줘.”
그는 베시시 미소를 지었다. 짜증난다. 레인님의 원이 또다시 솟구쳤다. 그녀는 몰랑이씨가 나나님의 어머니의 살해 혐의를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엑?! 제가요? 잠깐만요, 저 아니에요. 왜 그러세요. 조금만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어서 방에 가두거라!」
매정한 어머니는 가련한 몰랑이씨를 방에 가두고 심문 받게 만들었다. 그 이후, 기사 오웬이 방에 들어간 후로 조금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래도 수상해.’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어머니는 아무런 설명도 듣지 않고 몰랑이씨를 가뒀는지, 그 이후로 방에서 나온 몰랑이씨가 피눈물을 왜 흘렸는지. 그 모든 게 설명되지 않았다. 보통 피눈물은 영혼을 살해당한 인형이나 흘리는 거 아니던가?
나나와의 산책을 마치고 헤어진 후,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급하게 휴대폰을 찾았다.
뚜르르-
딸깍하고 받는 걸 보니, 양심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만약 일대기 작업을 거절하고 도망쳤다면, 인형별 끝까지라도 추적할 생각이었다. 호박이 말했다.
“호오박~ 호박은 말야, 레인님이 싫다!”
“딸기, 맞다. 딸기. 아침인데 상당히 무례하다!”
아침이 아니었는데 아침이라고 대놓고 핑계를 댄다. 이것들이 장난하나. 레인님은 어디까지 작업이 되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들은 정보 공유를 할 수 없다고 뻗대지 않나. 레인은 자기가 아는 정보를 다 알려줄 의향은 없었다. 사람들 간의 정보를 다 캐내고 나서야, 본인들의 과거를 알려줄 생각이었다. 그게 복수니까.
그래서 인터뷰 일정을 물어봤다. 그러더니 두 사람이 눈치를 보며 답했다.
“호오~~박. 나는 밤밤이님을 만나러 갈 것이다!”
“딸기, 질 수 없다. 딸기. 난 별별이님이나 만나러 갈 것이다!”
“뭐?! 내 동생이잖아!”
레인은 그에 피식 웃고는 잘 해보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과연 저 부부 중 누가 이길지 궁금했다. 두 사람은 언제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듣기로는……마계의 타니엘이라는 국가 출신이던가? 유명했다. 중세부터 그들은 고아 출신의 검투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격이 저래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을 짓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저 두 사람은 너무도 못미더웠다. 그러니 자신도 움직여야 한다. 레인은 선/인님들을 만나기로 했다.
10. 밤밤이님과의 인터뷰
감감이님께 호박씨는 간밤에 연락을 받았다. 그녀의 동생 밤밤이님이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사람은 밤밤이님과 함께 저번에 만났던 카페 Morning에서 보기로 했다.
밤밤이님은 불행의 여신의 열혈 신도였다. 언니인 감감이와는 어떤 면에서 많이 다르긴 했다. 감감이님은 불운의 신도였으니 말이다. 사실 호박씨는 이 자매가 정말 무서웠다. 자신은 웬만한 불운이나 불행은 꽤 봐왔다고 할 정도로 하류 인생도 살아봤으나 하나만 전공으로 판 사람들은 명확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뭔가 감감이님이 태양과 불 같은 기질이 보인다면, 밤밤이님은 달과 물 같은 기질이 있었다. 그 정도로 인형의 외형은 사람 좋아보였지만, 본성은 단단해져서 그런지 베일 것 같은 면모가 있었다. 밤처럼 까만 흑발에 흑안은 뭐든 꿰뚫어 볼 것만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 무역학과에 전공 중이었는데 그 때문에 아는 사람도 무지 많다고 들었다. 호박씨가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호오박~! 좋은 아침입니다!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음, 사실 저번에 언니분과 함께 대화를 나눴었는데요.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어서 말입니다아.”
“앗, 그러고 보니 저도 들었어요. 몰랑이씨가 미룽 출신이었는지에 대한 의문 말이죠?”
“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입니다. 근대까지는 천계 출신인 줄 알았단 말이지요. 그런데 듣기로는 유구한 마계 지향 국가 출신이래요. 이전에 지성의 신이셨다던데요?”
“에엥?”
호박씨는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다가 이내 흐음, 하고 겨우 진정했다.
‘이 녀석 도대체 뭐야?’
벌써 신만 해도 3개는 해 먹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는 허허, 하다가 머릿속으로 할 말을 골랐다. 그러고 있었다.
“지성의 신님일 때의 몰랑이씨는 이미 중세 때 신을 하고 있었는데 행방이 묘연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고고학 석사신 제 아버지에게서 말씀을 들었어요.”
“아버지?”
“이래 보여도 저희 아버지는 사르타나 최고의 대학교 엘비른의 고고학 교수시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몰랑이씨가 중세 최고의 수학자이자 마법사셨던 마르티니였다고 주장하고 계세요.”
“엥, 에에에?!”
마르티니. 중세 수학자들의 모든 마음을 다 가본 자.
그 수학자들의 마음 속에서 연구를 해 평생 갈 수학을 다 해보고 중세의 환경을 압도적으로 발전시킨 이다. 그리하여 인간 세계와는 다르게, 인형계는 중세에 이미 마도 공학이 발달하고, 마법이 생겼다.
호박이 물었다.
“그, 그럼 마르티니라는 증거는?”
“사실 그게…셀 수도 없이 많아요. 몰랑이씨가 다녀간 수학자들의 마음의 벽마다 ‘몰랑이씨 다녀감.’ 이라고 쓰여져 있거든요.”
“뭐ㅋㅋㅋㅋㅋㅋ그런ㅋㅋㅋㅋ”
이쯤되면 어이없다보다 어처구니 없다가 맞을 것 같다. 몰랑이씨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면 이런 인형이란 말인가. 그가 고대부터 살았다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형으로서 그가 이런 위대한 역대급 인형일 줄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러지도 못했다.
“혹시, 아르웬 피커 다녀감. 이라고도 쓰여 있던가요?”
“네. 그게 본명인 것 같더라고요.”
“바보네. 그 자식.”
“…….”
할 말이 없다.
업적 중 커다란 업적이 추가됐다. 이 녀석, 이 정도 되면 대통령은 안 해도 된다. 무려 문명의 아버지인데 대통령쯤이야. 이쯤 되면 신은 걍 껌일 지도? 호박씨는 허허, 거리며 웃었다.
“올마스터 타이틀을 깼네요. 그랜드 마스터네. 이야, 물리학 코스, 마도공학 코스, 제대로네.”
“수학도요. 아무튼 이거 말고도 자신의 제자들의 이름을 다 써놨다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다른 제자분들이 마도패스로 다 따라와서 수학자들의 마음 속에 다녀가서 연구를 도와줬다고 해요.”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인데요? 대박. 제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저도 좀 궁금해요. 도대체 몰랑이씨는 왜 강등 당한 거에요? 누굴 해치기라도 한 거에요?”
“으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아직 정보 수집이 미흡한지라. 죄송합니다.”
“음, 그럼 과거 얘기라도 해주세요.”
“그래요.”
호박씨는 딸기님과 지난밤 서로 알게된 정보를 공유하는 대신 알아내기 위해 눈치 싸움을 했다. 내기를 하면서 알아낸 핵심 정보는 2가지. 첫째, 몰랑이씨는 누군가에게 별 살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몰랑이씨는 누군가에게 복수를 해서 신좌에서 강등당한 전적이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를 알려줄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은근슬쩍 다른 방향으로 얘기를 꺼냈다.
「아주 옛날 옛적, 시바견 인형 한 마리가 마을에 살고 있었답니다.
그 시바견 인형은 마을의 아이돌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다정하고, 상냥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시바견 인형에게 시련이 닥쳤답니다. 바로 시대가 중세 판타지 시대인지라, 잠들어 있던 마왕이 일어나 마을에 역병을 내리고 저주를 해댔기 때문이지요. 운이 없었습니다. 시바견 인형이 살던 곳은 마왕군이 다스리는 구역과 맞붙어 있었습니다.」
“자, 이 때 시바견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어떤 행동을 했을까?”
그 때 감감이가 말했다.
“으음, 갑자기 이런 이야기는 왜 꺼내는 것인지? 의도가 궁금하네요. 하지만 굳이 대답을 하자면…시바견 인형은 마을의 아이돌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다정했으니 인기도 많고, 사람들을 위하는 성격이었겠죠?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 마왕군에게 반감을 가져서 왕국 군사에 자원하지 않았을까요?”
“…지극히 군인다운 대답이군 그래.”
“밤밤이의 의견은 달라요. 저라면 우선 도망친 후 마탑에 의뢰해서 마왕군의 저주에 대해 알아내고 대책을 세웠을 거에요.”
두 사람의 답변이 상극을 이루었다. 한명은 불운의 신을 따르는 군인, 한 명은 불행의 여신을 따르는 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은 같았다. 마왕을 물리치는 것. 마왕을 물리치는 것은 용사다. 호박씨가 말했다.
“맞아. 둘 다 시바견 인형이 용사가 되는 답을 내줬어. 딩동댕!”
“용사요?”
“응. 판타지 시대 말야. 우리는 그걸 마법의 시대라고 부르지만 말이지.”
그 마르티니가 몰랑이씨고, 그가 만약 기억 속의 시바견 인형이 맞다면 호박씨는 몰랑이씨의 업적을 몇십개, 몇백개는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마르티니=몰랑이씨인가이다. 그러나 호박씨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마르티니가 늘 하고 다니던 목걸이는 몰랑이씨의 목걸이와 똑같은 펜던트였다. 그게 어디서 나올 수도 없는 특이한 모양이었는데, 그래서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이제야 정체를 알게 될 줄은 몰랐다.